모두의 숨결로 만드는 새로운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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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숨결로 만드는 새로운 학교
  • 채은영
  • 승인 2020.02.28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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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 속 인천]
(4) 최선의 주안초등학교 나비 프로젝트

<동시대 미술 속 인천>은 지금 그리고 여기, 현대미술 속 인천의 장소, 사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다양한 미술의 언어로 인천을 새롭게 바라보고, 우리 동네 이야기로 낯선 현대미술을 가깝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안초등학교 이전 공사장 가림막 공공미술 , 2016 (필자 제공)
주안초등학교 이전 공사장 가림막 공공미술 , 2016 (필자 제공)

 

원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학교가 이전하기 위해 공사가 시작된다. 거대한 덤프트럭이 분주히 들어갔다 나오며 땅이 울리고 먼지가 날린다. 가림막 넘어 공사장 소음이 퍼진다.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공사장 근처를 걷다 보니, 건설사나 구청 로고나 홍보 문구 정도일 가림막에 수없이 많은 파란 무엇인가가 여러 방향으로 날아다니듯 찍혀있다. 자세히 보니 물감 덩어리인거 같기도 하고, 새나 나비 같기도 하다. 호기심이 들어 하나 하나 쫓아가다 보니 공사장을 둘러싸고 있다. 마치 동네 사람들에게 공사장을 부정적으로 불편하고 외면하기 보단 한 번 들여다보며 기대하길 바라며 소중한 것을 품듯 공사장을 감싸 안으며 보호하고 있다.

 

주안초등학교 이전 공사장 가림막 공공미술, 2016 (출처. 작가 제공)
주안초등학교 이전 공사장 가림막 공공미술, 2016 (출처. 작가 제공)

 

회화를 공부한 최선 작가는 예술과 현실의 가치 사이에 벌어지는 아름다움과 추함의 아이러니와 복합적인 층위의 작업들을 페인팅과 설치 작업으로 풀어가고 있다. 특히 침, 소금, 숨, 털, 머리카락, 피, 폐유 등 선뜻 미술 재료로 사용하지 않을 재료를 사용한다. 그 중 <자홍색 족자>(2012)는 2010년과 2011년 사이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돼지 330만여 마리를 ‘돼지 354,231처럼 글자와 숫자로 기호화해 써내려간 22미터짜리 액자다. 구제역, 조류독감, 아프리카 돼지 열병 등 인간의 식욕과 경제적 이윤으로 열악한 공장 사육에 내몰리다 인간의 안전을 위해 희생당하는 동물들에 관한 미디어의 뉴스만 보다 이 작업 앞에 서면 엄청난 전율과 참혹함을 느낄 수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재난을 경험한 사람들이 물감에 자신들의 숨을 불어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나비>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따스한 작업을 경기도 안산, 인천 등 여러 지역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우리의 숨결로 만드는 우리 학교 워크숍 장면, 2016 (출처. 인천문화통신 3.0 )
우리의 숨결로 만드는 우리 학교 워크숍 장면, 2016 (출처. 인천문화통신 3.0 )

 

주안초등학교는 1934년 설립한 공립초등학교로 80여년간 운영하다 주안 2,4동 재정비 촉진으로 기존 지역이 의료복합단지로 재정비되면서 인천 기계공고 근처 미추5-1 지역으로 이전해야 했다. 이전 공사를 하면서 시행사와 홍보 대행사는 재개발과 학교 이전 공사에 좀 더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제안을 예술가에게 했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주안초등학교 이전 공사장 가림막 공공미술이다. 기존 학교 부지가 생명을 위한 의료 복합단지가 된다는 점과 이전 지역에 들어서는 학교가 동네의 일상에 새로운 활력이 되고, 무엇보다 어린이들의 각각의 생각과 삶이 의미있고 귀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비프로젝트를 상상했다.

 

주안초등학교 이전 공사장 가림막 공공미술, 2016 (출처. 작가 제공)
주안초등학교 이전 공사장 가림막 공공미술, 2016 (출처. 작가 제공)

 

작가는 어렸을 적 누구나 쉽게 해봤을 물감을 훅 부는 방식으로 특별한 기술이나 숙련 없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2016년 11월 1일 당시 전교생 726명이 참여한 워크숍에서 만들어진 700여개 나비를 일일이 디지털화한 후 작가의 상상력으로 배치하여 공사장 가림막 위에 각자 생명력으로 날아가는 수많은 나비들을 만들었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위생에 관해 예민한 분위기에선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건설사나 지자체 홍보 문구나 무지개 담요가 아닌 나비 가림막 너머 공사를 진행했고, 2018년 봄 학교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다. 여러 아쉬움이 있었지만, 공공 미술을 위해 참여자들의 기술이나 방법론 습득 과정을 최소화했다는 것과 벽화 방식이 아닌 공사장 가림막을 지역에서 시도했다는 것이 의미였다. 

 

신축 주안초등학교 전경, 2018 (출처. 브레이크 뉴스)
신축 주안초등학교 전경, 2018 (출처. 브레이크 뉴스)

 

공동체와 관계하는 많은 미술에서 참여, 협업, 개입 등에 관한 많은 문제제기가 있다. 도시 재개발이나 도시 재생과 연계하는 예술가와 작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과연 예술가가 순수한 중재자인가, 공동체의 참여와 협업은 어디까지인가. 일종의 착한 예술가와 착한 공동체가 만나 선한 영향력을 의도하며 공동체 미술이 지역에선 많은 편이다. 지역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관해서도 마찬가로 지역에 관한 자부심이나 책임감, 주민으로서 정주성과 이력을 강조하기도 한다. 불화와 소음을 의도한 공공 작업이나 프로젝트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하나의 공공성, 하나의 지역성, 하나의 장소성만 있을 수 없는 다중 시대에 그 사이에 관계하는 예술 작업과 행동 역시 좀 더 다양하고 섬세하고 전복적이어야 한다.

 채은영 (큐레이터, 임시공간 대표)

 

<글쓴이 채은영은>

통계학, 예술경영,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도시 공간에서 자본과 제도와 건강한 긴장관계를 갖는 시각예술의 상상과 실천과 관심이 많은 인터로컬 큐레이터로 2016년부터 시각예술과 로컬리티, 생태 정치 관련 리서치 베이스 큐레이팅을 하는 임시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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