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든든해지는 뜨끈함, 모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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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든든해지는 뜨끈함, 모모산
  • 유광식
  • 승인 2020.03.2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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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람일기]
(26) 도원동 주변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도원동 주택가 골목(전신주, 안테나, 적벽돌의 풍경이 있다.), 2019ⓒ유광식
도원동 주택가 골목(전신주, 안테나, 적벽돌의 풍경이 있다.), 2019ⓒ유광식

 

일요일 새벽부터 바깥바람이 심상치 않다. 조금 겁도 나는, 칼 품은 그 바람이었다. 짧게 이발한 나뭇가지가 꺾일 듯 흔들리고, 박스와 비닐은 하늘을 날고, 건물 외벽을 탁탁 치는 각종 전선 등이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데 신이 났다. 이런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슬며시 나가 보고 싶다. 멀리는 아니어도 탁 트인 공간이 우선순위다. 코로나19 여파로 사회적으로 갑갑한 생활이 길어진 이유가 한 몫 작용했지만, 봄맞이는커녕 꽃샘추위로 안면이 얼얼한 가운데 모모산 한 바퀴라는 리듬을 타 본다.

 

어느 주택에 걸린 현수막(재개발구역 해제를 알리고 있다.), 2019ⓒ유광식
어느 주택에 걸린 현수막(재개발구역 해제를 알리고 있다.), 2019ⓒ유광식
도원동 주택가 골목(한적함이 물씬 묻어난다.), 2020ⓒ유광식
도원동 주택가 골목(한적함이 물씬 묻어난다.), 2020ⓒ유광식

 

도원동 일대는 가운데 산 하나로 똘똘 뭉쳐 있다. 이 지역도 일본강점기의 영향이 컸다. 산 이름조차 복숭아를 뜻하는 모모산이 되었다. 이젠 지난 시절의 이야기로 남았지만, 복숭아 열매를 골목 벽화에서 간혹 마주치게 된다. 일본신사 자리에는 광성중·고교가 자리하고 그 아래로 인천체육의 요람인 시설이 우뚝 서 있어, 두 건물이 서로의 등을 기대며 자리한다. 코로나19 여파로 많은 공공시설 출입을 제한했어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 없다. 걷고 즐기기엔 마음 편했으나, 강풍의 탓으로 뭔가 날아 들것만 같아 주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했다. 바로 그때 잿빛 구름 사이를 비집고 산림청 헬기 한 대가 지나갔다. 도원동 주민자치센터에서 70계단을 통해 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계단이 한층 분위기 있다. 살아있다는 호흡을 느끼기엔 계단만큼 멋진 승강기가 없다. 

 

도원동 주민자치센터 옆 70계단(계곡폭포까지는 만들 필요가 없었는데. ㅠㅠ), 2020ⓒ유광식
도원동 주민자치센터 옆 70계단(계곡폭포까지는 만들 필요가 없었는데. ㅠㅠ), 2020ⓒ유광식
도원동 주민자치센터 앞 광장(나무에 괴물곤충, 나무에 시계), 2020ⓒ김주혜
도원동 주민자치센터 앞 광장(나무에 괴물곤충, 나무에 시계), 2020ⓒ김주혜

 

중턱에 오르니 건너편 신흥동, 율목동이 훤하다. 산 서쪽은 경사가 좀 급한 격인데 수직으로 심어진 집들이 다소 위태롭다. 그래 보여도 뚝심을 박았는지 늠름한 자태가 칼바람쯤이야 하는 분위기다. 강풍으로 인한 소음만 제거된다면 고즈넉한 일요일 휴일이다. 자동차로 꽉 찬 생활도로, 보각사, 도원교회를 거쳐 옛 부영주택 단지 골목으로 들어선다. 날이 추우니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모자를 쓰면 고막이 울려 ‘웅웅!’ 하는 와중인데도, 사회가 어쩌고 나의 상황이 어쩌고 하며 부모님을 스친 먼 미래 모습을 그려 본다. 산 중턱 길을 따라 어느덧 도원체육관까지 오게 된다. 도원체육관은 인천 여자농구팀의 훈련장이다. 그 아래편으로 도원축구장도 있는데 함성은 현재 일시 멈춤이다. 광성중·고 교문 안 테니스장은 강풍에 천막 천이 살풀이를 한다. 어찌 된 일인지 오늘 바람이 매섭다. 두 뺨이 얼얼하게 얼고 눈물, 콧물이 번갈아 나온다. 조금 더 걸으니 소주 공장 터에 세워진 불혹을 넘긴 도원 실내수영장 또한 휴업 중이다. 

 

산꼭대기 정상에 자리 잡은 광성중·고등학교, 2020ⓒ김주혜
산꼭대기 정상에 자리 잡은 광성중·고등학교, 2020ⓒ김주혜
인천 도원축구경기장(우측으로 도원체육관이 있다.), 2020ⓒ유광식
인천 도원축구경기장(우측으로 도원체육관이 있다.), 2020ⓒ유광식
뉴월드 아파트 입구에서 바라본 도원수영장, 2020ⓒ유광식
뉴월드 아파트 입구에서 바라본 도원수영장, 2020ⓒ유광식

 

도원동에는 덕생원(현 인천중앙여상)이라는 감염병 격리병원이 있었다. 온 세계가 코로나19 검역과 치료에 사투를 벌이고 있기에 잠시 곱씹게 된다. 언제까지 지속할까 싶다. 분명 극복하겠지만 말이다. 한편 차가운 기운에 저절로 분식집 떡볶이 향 따라 발걸음이 자동 조종되기도 한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손 마디가 얼었다. 잠시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핫초코에 기댈 타임이렷다. 창밖에 비닐이 살풀이하는 음산한 가운데 가지런히 주차된 차들의 무뚝뚝한 표정은 나만 몰래 재밌다. 

 

도원동과 금창동을 잇는 육교 위에서 바라본 도원역 방향, 2017ⓒ유광식
도원동과 금창동을 잇는 육교 위에서 바라본 도원역 방향, 2017ⓒ유광식

 

경인선에 인접한 길가에는 철공소가 많이 모여 있다. 쇠를 녹이고 때리며 모양을 짓는 뜨거운 시간이 중첩된다. 아울러 주변으로는 공구상가가 세 군데(숭의, 신흥, 그린)나 있다. 또한 깊은 맛이 우러나는 국밥집이 군데군데 눈에 많이 띈다. 차가워진 속을 달래고 가기엔 안성맞춤이다. 그래서인지 도원동은 마치 모모산 기슭을 부둥켜안고 보글보글 끓는 동네처럼 느껴졌다. 불교 의식의 하나로 탑돌이가 있다. 탑을 돌면서 공덕을 기리고 소원을 비는 행사 말이다. 나는 모모산을 큰 탑이라 생각하고 돌며 지금의 코로나 공포가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빌었다. 4월 개학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내내 잿빛 하늘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는데 뉴스 하나에 무릎을 탁 쳤다. 옥련동 연경산 부근에서 큰불이 났다는 것이다. 강풍에 불이 나 소화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란 생각과 동시에 산림청 헬기가 머리 위로 왜 지나갔던 것인지 의문이 풀렸다. 인명 피해가 없기를 바라면서 귓불과 두 뺨이 언 것들을 녹이고 오늘의 걸음을 정리한다는 핑계로 오래된 국밥집에 들러 육개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어느 주택가 골목(전선들이 거미줄 같다.), 2015ⓒ유광식
어느 주택가 골목(전선들이 거미줄 같다.), 2015ⓒ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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