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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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탁해
  • 양진채
  • 승인 2011.04.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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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양진채 / 소설가

신경숙 소설가의 소설『엄마를 부탁해』가 영문판으로 출간되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서 이미 170만부가 팔린 책으로 미국에서는 초판 10만부가 모두 팔리고 4쇄를 찍고 있다 하니 놀랄 만하다. 『엄마를 부탁해』는 전 세계인에게 공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말이자 영원한 주제인, 엄마를 주제로 한 책으로서 전 세계인의 공통된 관심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다.

어머니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한 여성으로서 어머니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을까. 엄마라는 말 뒤에 따라붙는 희생. 이 ‘희생’이라는 말이 새삼 가슴 아프다.

나 역시 엄마다. 아이 둘을 키웠고, 큰 아이는 올해 대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을 끔찍이는 아니어도 살뜰히 보살폈다. 엄마인 나는 1년 전쯤 조기 폐경 진단을 받았다. 여성의 생식기능이 없어지는 걸 말한다는 사전 전 의미를 떠나 폐경기에 겪는 여러 증상에 어쩔 줄을 몰랐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등에 땀이 솟았다. 잠을 자다가 수시로 깼다. 내 몸과 마음을 내 스스로 조절하기 힘들었다. 몸이 무거웠고, 자주 어지러웠고 짜증이 솟았고 우울해졌다. 산부인과 병원 담당의사가 폐경 진단을 내리고, 채혈, 초음파, 유방암 검사 등 여러 검사를 하러 들어갈 때마다 담당자는 이르게 폐경된 나를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나를 더 가라앉게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폐경 사실을 알렸다. 폐경으로 인해 겪는 여러 증상에 대해 알렸다. 나를 도와달라고 했다. 우울하거나, 짜증을 부리거나 힘들어 할 때, 엄마가 갱년기로 힘들어하는구나 이해해주고 더 잘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동안 내가 엄마로서 너희들에게 최선을 다했으니 너희들이 이젠 내게 잘 해줄 차례라고 당당히 말했다. 아이들은 잘 도와주었고, 힘든 과정을 큰 어려움 없이 극복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 호르몬 상 남성은 여성성이 강해지고 여성은 남성화가 된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이 사회는 4-50대 아줌마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뽀글뽀글 머리를 퍼머하고, 전철 안에서 빈자리만 생기면 달려가 앉고 등등. 조폭과 아줌마의 공통점을 짚어, 검은 색을 좋아하고, 밤에는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고, 문신을 하고, 떼지어 몰려다니고, 형님이라고 부르고, 칼을 잘 쓰고, 자기 가족만을 챙긴다고도 한다. 이 말 속에 들어 있는 시선 역시 결코 호의적이라 할 수 없다. 여성을 성을 중심으로만 본 왜곡된 시선도 있다. 직업과 육아를 병행하고 집안 살림을 하고, 이 사회 구석구석을 돌본 엄마들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조폭과 비교하며 도매금으로 넘기다니.

폐경을 겪으면서 이 사회의 여성에 대한 편견이 실은 여성 자신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자신의 존재를 남편에게, 아이에게 모두 바치는 게 아니라 아이와 남편도 ‘엄마’인 나를 수시로 바라보게 해야 한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신경숙의 소설『엄마를 부탁해』의 자식들과 남편이 뼈아프게 후회하는 것 역시 엄마를 몰랐다는 것이다. 늘 내 중심에서 필요한 것을 요구만 할 줄 알았지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몰랐다. 훗날 자식과 남편의 가슴을 치게 하지 말고, 당당하게 요구하자. 나를 더 많이 바라보고 사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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