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전쟁 - 격리실 자원봉사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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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전쟁 - 격리실 자원봉사 현장에서
  • 안태엽
  • 승인 2020.04.0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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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안태엽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글쓰기반 회원

요즘은 숨 막히는 전쟁을 치르고 산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될 수 있으면 사람도 피하고 공공장소나 모임에도 가지 않는다. 가족들은 예민해져 코로나 노이로제 확진자 같다. 전염병의 공포는 전쟁과 같다. 광주사태는 총으로 물리적인 전쟁을 했지만 대구는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백신을 못 만드는 의학과 과학이 바이러스에 무릎을 꿇었다. 이러다가 질병 바이러스가 인류의 멸망까지 몰고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의료진과 간호사들, 자원봉사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헌신적인 노력으로 환자들을 보살핀다.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제자리를 지켜내는 분들이 있어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만약 이들도 감염이 두려워 뛰쳐나갔다면 누가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 발벗고 뛰는 요즘 젊은 의료인들을 보면서 나약하고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여겨왔던 평소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자기 일에 충실하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나 또한 이번 의료 봉사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국가를 위해 일할지라도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왜 두렵지 않겠는가? 의료 전사들의 희생은 참으로 고귀하고 귀한 헌신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대학병원에 있는 후배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의과 대학에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의과대 병원에서는 봉사자를 차출하여 학생 생활관 한 개 층을 격리실로 정해 거기서 일을 보게 하였다. 많은 학생들이 의료 봉사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 중 경북과 대구에서 왔다는 이유로 14명의 학생이 격리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처음에 당황했지만 사회적 분위기를 이해하며 들어갔다.

나는 환자 보호를 위해 격리층을 담당했다. 자원봉사에 지원은 했지만 방호복을 입고, 엘리베이터를 타면서부터 한 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식사는 각 호실 문 앞, 바닥에 놓고 초인종을 누른다 그 뒤 멀리 떨어져 있으면 격리자가 가지고 들어간다. 며칠 동안 그렇게 식사를 바닥에 놓고 도망치듯 나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들은 짐승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와 같은 사람인데, 외계인 보는 듯이 하는 것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원봉사를 통해 혹시 내가 감염이 되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바이러스로 잃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우려가 문득 몰려와 무의식중에 손사래를 쳤다. 만약 가족을 바이러스로 잃는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다가 ‘페인티드 베일’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1925년도 콜레라가 창궐하던 시대 남편인 ‘월터’는 의학자이며 의사이고 세균을 연구하는 과학자였다. 반면에 부인 ‘키티’는 활달한 성격에 취향도 감정도 정반대의 여인이었다.

키티는 늦어지는 결혼에 부모의 재촉에 시달리다 도피처로 월터를 택했지만 외교관인 찰리와 바람을 피운다. 남편은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을 지원해 같이 가자고 말한다. 부인 키티는 안 가겠다고 하지만, 바람둥이 찰리는 키티와 가끔씩 즐기다 끝낼 생각을 한다. 이것을 알게 된 키티는 결국 남편을 따라가겠다고 나선다.

마을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수없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남편은 밤낮을 쉬지 않고 아픈 사람들을 돌본다. 현지인을 향한 남편의 초인적인 헌신과 희생에 부인은 감동을 받는다. 남편이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며 남편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매력 있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남편은 전염병에 걸린 환자들을 돌보다 결국 죽게 된다.

다음 날부터 나는 방호복을 벗고 마스크와 수술 장갑만을 끼고 식사를 제공하였다.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를 하고’ 직접 손으로 전해 주었다. 이들이 격리 기간 14일간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들은 의외로 잘 견뎌냈다. 다행히 이곳 격리자 중 확진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들은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스스로 더 조심하였다.

며칠 후 어떤 학생이 병원을 찾아와 “내 몸이 기침과 열이 나니 코로나 증상이 의심된다”고 떨면서 말했다. 나는 의료팀이 있는 본관 앞 선별 장소로 그를 안내했다. 검사를 받은 그는 두 시간 후 찾아와 결과는 12시간 후에 나온다고 말했다. 나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그를 바로 격리를 시키고 그가 사용하던 물건들과 층 전체를 소독했다. 그리고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다음 날 결과는 아무 이상 없이 음성으로 나왔고 격리가 끝난 학생들은 다시 찾아와 고마움을 표현하고 학업으로 복귀했다.

신종 바이러스 증상은 기침과 고열이 나타나지만 이보다 심각한 것은 사람들의 정신과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의심과 확진자들에 대한 경계심, 그것을 넘어 적개심이나 혐오에 이르기까지 인간으로서 가져서는 안 되는 위축된 심리가 보이지 않게 번지며 우리의 생활패턴을 이루고 있다.

생물학적 바이러스는 생명을 위협하지만 ‘사회적’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과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마음과 정신을 병들게 한다. 냄새도 없고, 형체도 없는 것에 우리는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를 포함한 무너지는 연약한 존재들에 연민을 느낀다. 우리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공동체 공감의 백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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