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가 먹고 싶다- 시로 읽는 국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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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가 먹고 싶다- 시로 읽는 국수 이야기
  • 최일화 시민기자
  • 승인 2020.05.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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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백석의 '국수'에서 문태준의 '국수집' 까지 - 최일화 / 시인

국수는 고려시대와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헌에 그 종류와 조리법이 소개되어 온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이다. 국수(Noodle)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한 세계인의 음식이다내가 어렸을 때는 초여름 첫 밀 수확 철이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 슬하 큰집 작은집 대가족이 마당에 둘러 앉아 칼국수를 먹곤 했다. 국수는 한 끼의 식사라기보다 가족공동체를 확인하는 방식이며 그 결속을 다지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국수는 재료에 따라 밀국수, 쌀국수, 막국수, 콩국수, 녹말국수 등 다양하고 형태에 따라 비빔냉면, 물냉면, 온면, 잔치국구, 비빔국수 등이 있다. 북쪽에선 냉면을 국수라 했다.

많은 시인들이 음식을 시의 소재로 삼고 미각 이미지를 시에 도입하고 있다. 오늘은 세 시인의 시를 통

하여 국수의 고유한 맛을 음미해 보고 국수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백석의 시 <국수>. “김남천의 글에 따르면 평안도 사람들은 냉면을 국수라고 불렀다. 메밀로 국수를 뽑아서 냉면으로 먹고 온면으로도 먹는다. ‘국수란 그 둘을 아우르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백석의 시에 자주 나오는 국수는 냉면임이 분명하다.”(김훈의 수필 <냉면을 먹으며>에서)

1941<문장>지에 발표된 백석의 시 <국수>는 눈 오는 날 국수를 함께 나눠 먹던 고향마을의 추억을 회고조로 노래하고 있다. 국수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 했던 음식이며 마을 공동체가 함께 모여 정을 나누는 음식이란 점을 나타내고 있다.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로 평안·함경도 방언을 통해 주제를 정감 있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국수(냉면)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고 가족 공동체에 대한 애틋한 향수이기도 하다. 읽으며 그 내용과 정서를 음미하면 좋을 것이다.

 

국수 /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
하룻밤 뽀오얀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어느 하룻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루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의 국수전문>

 

백석의 시를 읽을 때 제일 먼저 부딪치는 문제가 평안·함경도 사투리다. 사투리만 이해하면 시 자체는 읽기 쉽다. 다음과 같이 사투리를 현대어로 바꿔 보았다. 바꾸는 과정에서 작품의 묘미와 예술성이 많이 훼손되었음을 감안하여 읽기 바란다.

 

 

국수

 

눈이 많이 와서
산에 사는 새가 벌판으로 내려와 뛰어 다니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아이들은 어둡도록 꿩 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마는 밤중에 김칫독 묻혀 있는 곳으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바른 곳 혹은 응달쪽 외딴 산 옆 언저리 오래된 비탈 밭에서
하룻밤 뽀오얀 흰 김 속 접시에 밝힌 소기름불이 뿌우연 부엌에
이무기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 볕 속을 지나서 달콤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낳으며 죽으며 죽으며 낳으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흐릿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덕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어느 하룻밤
아비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비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담겨져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컸다는 먼 옛적 할머니가
또 그 짚으로 만든 자리에 서서 재채기를 하면 산 너머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끄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고춧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 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냄새 식초 냄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물 냄새 자욱한 더북한 갈대를 엮어 깐 방 쩔쩔 끓는 아랫목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의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현대어로 바꿔본 백석의 국수’>

다음엔 이상국 시인의 시 한 편 같이 읽는다. 이상국 시인은 강원도 양양 출신이며 금년 초 2년 임기의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시인의 시는 담백하고 소박하다. 담담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삶의 비의를 표현한 우리 시대 대표적 농경시인이다.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시 국수가 먹고 싶다전문>

 

시의 배경은 고향 장거리이며 나오는 사람들은 어머니 같은 국수집 여자, 소 팔고 돌아오는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이며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렇게 가난하고 눈물 많은 사람들과 국수를 먹고 싶다는 것은 곧 시인의 시정신이 소박한 서민 정신과 일치하는 것을 보여 준다.

한결같이 지방에 머무르며 시를 써온 시인은 2019년7월 문학의 집 초청 강연회에서 앞으로 10년을 더 시인으로 산다면 어떤 문학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답변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7권의 시집만 있고 산문집은 한 권도 없다. 전집 내는 일 가능치 않고, 관심도 없다. 윤동주는 시집 1 권으로 문학사에 남은 시인이다. 지금 우리나라 시인 인구가 5만 내지 6만 명이라고 한다. 돌아보면 다 시인이라는 얘기다. 나는 부지런한 시인이 아니어서 작업량이 적다. 10년 더 산다면 부드럽고 비시적이며 비 문단적인 작품을 쓰고 싶다.” ‘비시적이며 비문단적인 작품을 쓰고 싶다.’에 방점을 찍고 싶다. 오늘의 문단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 아닐까싶다.

국수에 대한 시 한 편 더 읽기로 한다. 문태준은 1970년 경북 김천 출생이다. 한 평론가에 의하면 우리나라 시인 중 현대의 시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시인은 백석과 김수영이다. 그리고 백석의 시풍을 잇고 있는 대표적 시인 중 한 사람이 문태준이다. 백석의 국수가 실은 냉면을 뜻한다면 문태준의 국수는 그냥 우리가 일상으로 먹는 서민들의 국수일 것이다.

 

평상이 있는 국수집

평상이 있는 국숫집에 갔다
붐비는 국숫집은 삼거리 슈퍼 같다
평상에 마주 앉은 사람들
세월 넘어온 친정 오빠를 서로 만난 것 같다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손이 손을 잡는 말
눈이 눈을 쓸어주는 말
병실에서 온 사람도 있다
식당 일을 손 놓고 온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평상에만 마주 앉아도
마주 앉은 사람보다 먼저 더 서럽다
세상에 이런 짧은 말이 있어서
세상에 이런 깊은 말이 있어서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큰 푸조나무 아래 우리는
모처럼 평상에 마주 앉아서
<문태준 시 평상이 있는 국수집전문>

 

허름한 국수집이 있고 문 앞 나무 아래 평상이 놓여 있다. 시의 배경이 되는 이 설정에 서민들의 정서가 드러나 있다.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끼니때가 되어 국수집 평상에 모여 앉은 모습이 정겹다. 쯧쯧쯧쯧하는 의성어는 국수가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이웃들이 모여 앉아 서로 딱한 사정을 들어주고 위로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의성어이기도 하다.

 

손이 손을 잡아주고 동정어린 눈으로 이웃의 딱한 사정을 위로해주는 모습을 눈이 눈을 쓸어준다고 했다. 모여 앉은 이웃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병실에서 잠깐 국수를 먹으러 온 사람, 식당 일을 손 놓고 잠시 들른 사람도 있다. 다 가난하고 서러운 사람들이다. 이렇듯 국수는 서민의 음식이고 함께 먹으며 친정 오빠를 만난 듯 정을 나누는 따뜻한 음식이다. 마을 공동체 결속을 나타내는 서민의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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