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속 큰 별 지던 날
- 고 민혜식 교장선생님을 기리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 가슴속 큰 별 하나 지던 날
문득 떠오른 이형기 시인의 ‘낙화’ 한 구절
미수(米壽)의 연세에도
찬 서리속 국화 향을 내 뿜으시던
당당하고 고우신 님이여!
20대에 장학사, 30대에 교장되어
30여년 세월동안 교장 역임하신 분
이 시대 교육계에 그런 분 또 있을까?
인천 최초 여성교육장 임명권유 받았을 때
존경할 수 없는 의원 앞의 굽실거림이 싫다고
주저없이 거절하신 꼿꼿한 자존심!
후진들 앞길 막는 걸림돌 될까 두려워
신앙과 절제의 모범으로 디딤돌 되어주시고
제자 없는 교직생활 외롭다 하시며
넉넉한 베품과 깊은 대화의 만남을 즐겨하신 분
거동 불편한 남편 곁 20여년간 지키시면서
사람 귀찮게 하지 않는 남편이 고맙고
복 많은 남편 만나 잘 살아온 세월이 고맙다며
감사와 사랑의 모습을 한결같이 보여 주신 분
구십 되기 전에 떠나고 싶다고 하시던 말씀대로
발병 후 두달 여에 잠든 듯 떠나신 모습 뵈며
생전의 고고한 자태 그대로 간직한 채
꽃비 되어 흩날리고 싶은 염원의 말씀인줄 깨닫는다.
국화 꽃송이 속에 묻혀 미소짓고 계신 선생님 영정 앞에
꽃 한송이 바치면서 무릎 꿇고 기도한다
당당한 교육자의 길 보여주신 선생님 뜻을 좆아
밝은 길 따라 걷다가 낙화처럼 지게 해 주소서!
2020. 4. 14 민혜식 교장선생님 영정에 바칩니다.
민 혜식 교장선생님은 인천 교육계의 전설이셨다.
5.16 직후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가정과 장학사를 뽑을 때 서울대 출신 가정과라는 조건이 맞아 29세에 장학사가 되셨다고 한다. 최초의 여성 전문직이 되신 이후 교감을 거쳐 30대에 교장이 되셨다. 1933년 닭띠인 동년배들이 겨우 교감 강습을 받을 무렵 그 분은 이미 교장이 되셨으므로 한 살 밑인 여 교감, 동갑내기 친구교사와 함께 근무하신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 분은 훤칠한 키에 균형 잡힌 몸매와 흰 피부의 미모이신데다가 패션 감각도 뛰어나신 분이셔서 우리 여성 교육자들에게 은근한 자부심을 안겨 주셨다. 민 교장선생님은 자신이 후배 여교사들의 앞길을 막는 존재가 될까 평생 자신의 언행을 조심하시고 신앙심으로 내적 성숙을 이루어 나가시어 함께 근무한 교감을 비롯한 교사와 학생들에게 인격자로서 존경을 받으셨으므로 우리 후배들의 롤 모델이 되셨다.
높은 자존감을 가지셔서 인천 최초로 여성 교육장이 되겠느냐는 교육감의 연락을 받았을 때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 없는 교육위원들 앞에서 굽신거리기 싫다고 거절하신 일화도 유명하다. 교단에 선 기간이 짧아 제자를 기르지 못하신 것을 늘 아쉬워 하시며 후배 동료들을 아끼시고 함께 하려고 애쓰셨다.
나의 모교인 인일여고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시던 날, 전 교직원과 학생들이 도열하여 장미 한 송이씩 바치며 떠나시는 선생님을 배웅하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요 몇 년간 그 분은 90이 되기 전에 떠나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곤 했다. 금년 2월 소화가 안 되신다며 병원에 가셨다가 담낭암 진단을 받으시고 완화 병동에 입원하셨을 때도 그리 빨리 세상을 떠나실 줄은 예상을 못 했었다. 입원 2개월 만에 홀연히 세상을 뜨시자 ‘분분히 흩어져 떨어지는 낙화’의 아름다움이 이런 것이구나 느낀다.
존경받는 여성교육자로서, 따뜻한 아내로서, 훌륭한 어머니로서 모범적인 삶을 사시고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신 채 소천하신 민혜식 교장선생님!
저희 후배들도 선배님처럼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다 낙화처럼 질 수 있게 이끌어 주소서!
허 회 숙
전 인일여고 교장, 인천시의원, 민주평통인천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