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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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 이권형
  • 승인 2020.05.2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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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권형 / 음악가

프랑스 영화감독 에릭 로메르의 1987년 영화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 4 aventures de Reinette et Mirabelle> 중에 평소 자주 떠오르는 대사가 하나 있다.

“현실에서, 그림 앞에서 취해야 할 단 한 가지 자세는 바로 침묵이에요.”

영화의 맥락과 연결지어서 봐도 재미있는 대사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문장이다.

일상에서 예술에 대한 이런저런 논쟁과 마주하곤 한다. 그림을 두고, 음악을 두고, 혹은 영화나 책 내용 따위를 두고 의견이 오간다. 그러다 보면, 의견이 달라서 한참을 논쟁했는데 알고 보니 같은 얘길 하고 있었다거나, 같은 얘길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서로 완전히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다든가 하는 갸우뚱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직접 음악을 만들다 보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인의 작업물이 대화의 도마 위에 오르는 상황을 종종 겪는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다. 음악이라는 것은 말로 명쾌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므로, 대화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간에 완전한 대답은 들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답 없는 괜한 논쟁이 오해와 불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유일한 자세가 침묵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말에는 한계가 있고, 언어로는 명쾌하게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명쾌한 사실만 말하고 받아들인다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행위가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을까? 말로 표현되긴 어렵지만, 삶에 분명히 존재하는 가치들에 대해 우린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림을 보고 온전히 침묵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 그림 앞에서 취해야 할 단 한 가지 자세는 바로 침묵이에요.”라는 말은 언어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 그를 통해 말할 수 있는 건 더 명료하게 하고, 그 너머 ‘침묵’의, 다시 말해 형이상학의 영역에 대한 각자의 생각 또한 존중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음반을 만들다 보면 음악 외 영역의 작업자들과 협업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음반 표지를 위한 미술 작업이나 디자인, 뮤직비디오 촬영 등이 그 예시가 되겠다. 최근 발매한 싱글 음원의 표지 역시 그러한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음악과 미술의 언어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척척 진행되진 않는다. 그러므로 협업을 위해 서로의 언어가 다름을 인식하는 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하늘색에 이 차가운 소리를 표현해주세요.” 따위의 요구를 했다가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적어도 “하늘은 코발트블루 색으로 칠해주세요.” 정도는 표현해줘야 하늘색에 대한 합의 정도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로의 영역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어느 정도는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소통이 전문적인 표현으로 진행되진 않는다. 심지어 위에 들어둔 예시처럼 명쾌하지 못한 표현을 더 자주 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언어가 가지고 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에서, 삶의 맥락 속에서 몸짓으로, 표정으로, 제스처로 결국엔 서로 만족스러운 결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참 신통한 일 아닌가. 내가 이 지면에 이렇게 장황하고 중언부언하는 글이라도 꾸준히 쓰려고 하는 이유도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음반을 만들기 위해 표지를 위한 미술 작업이나 디자인, 뮤직비디오 촬영 등 협업이 요구된다.
음반을 만들기 위해 표지를 위한 미술 작업이나 디자인, 뮤직비디오 촬영 등 협업이 요구된다. 서로의 언어가 다름을 인식하는 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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