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란 지붕 밑 오색 부화장, 산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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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란 지붕 밑 오색 부화장, 산곡동
  • 유광식
  • 승인 2020.06.12 07:3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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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람일기]
(32) 산곡1동(영단주택 단지) 일대/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산곡교회 뒤 철거된 주택가(현재 아파트 건설 중이다), 2018ⓒ유광식
산곡교회 뒤 철거된 주택가(현재 아파트 건설 중이다), 2018ⓒ유광식
원적산 아래 마장로 도로변 오밀조밀한 상가들, 2017ⓒ유광식
원적산 아래 마장로 도로변 오밀조밀한 상가들, 2017ⓒ유광식

 

바야흐로 여름이 온 것 같다. 여태까지도 아슬아슬한 등교와 갑갑한 마스크 착용, 거리 두기, 모임 자제 등 국민생활규칙들이 상존하는 가운데, 더운 여름은 불청객처럼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는 현 상황이 사회 취약계층에게는 더더욱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이는 공공의 슬픔으로, 분명한 것은 긴장하며 계속 직시하는 것밖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명신여고 입구 삼거리 건너편 옛 금산아파트 철거, 2018ⓒ유광식
명신여고 입구 삼거리 건너편 옛 금산아파트 철거, 2018ⓒ유광식
산곡로 사이로 남겨진 주거지와 공사 중인 새 주거지, 2019ⓒ유광식
산곡로 사이로 남겨진 주거지와 공사 중인 새 주거지, 2019ⓒ유광식

 

서구 석남동에서 버스를 타고 원적산터널을 지나면 부평구 산곡동이 양옆으로 펼쳐진다. 원적산 동쪽 산기슭은 온통 낮은 집들뿐이다. 산골짜기의 동네라는 저층 주거지의 특색이 가득한 곳이 틀림없다. 이곳엔 부평의 옛 과거가 깊이 밴 ‘영단주택’ 단지가 남아 있다. 현재 한 구역씩 돌아가며 개발이 이뤄지고 있고 예전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땅바닥을 굴러다닌다. 늘 그래 왔듯이 ‘역사’는 ‘건설’ 앞에만 서면 무릎을 꿇는다. 

 

동네 건축박사가 사는 집?, 2017ⓒ유광식
동네 건축박사가 사는 집?, 2017ⓒ유광식
기다란 지붕 하나에 매달린 빼곡한 주택들, 2020ⓒ유광식
기다란 지붕 하나에 매달린 빼곡한 주택들, 2020ⓒ유광식

 

산곡1동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는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그 아래편에는 산곡초교가 있다. 이 주변으로는 마치 시간이 머무는 것처럼 과거의 영광이 즐비하다. 극장으로 자리했을 법한 건물도 있고, 만물상, 다방, 회관(식당), 슈퍼, 금은방, 방앗간, 이·미용실, 목욕탕, 철학관, 여관, 쌀집, 전당포, 세탁소, 화원 등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그런데 세월은 막을 수 없어 변화된 도시환경에 맞춰 이미 이사를 나가고 비어 있거나 펜스로 막힌 공간이 많다. 동원아파트 앞쪽으로는 기존 주거지가 사라지고 새 아파트 단지가 둥지를 틀기 바쁘다. 

 

추운 겨울 날씨에 동백나무를 대하는 방법, 2019ⓒ유광식
추운 겨울 날씨에 동백나무를 대하는 방법, 2019ⓒ유광식
지난날의 영광 중에서, 2017ⓒ유광식
지난날의 영광 중에서, 2017ⓒ유광식

 

백마장사거리는 내년에 개통될 7호선 연장선 정차역(산곡역) 공간으로, 바로 위에는 초고층 빌딩이 지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어디를 가나 골목 사이사이 보이는 것이 ‘L’ 대형마트였는데 이제는 그보다도 큰 빌딩의 풍경을 제쳐둘 수 없게 되었다. 아마도 낮은 층은 복합상업공간이 될 가능성이 큰데, 핫플레이스로 등극하고 싶은 욕망을 애써 숨기지도 않는다. 규모가 원적산을 능가할 정도로 거대해 마치 드넓은 산곡동의 수평을 수직으로 일으켜 세워둔 것 같다. 두 개 동을 합해 100층 정도는 되는데, 대나무도 아니고 따스했을 주변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차갑고 무겁기만 해 씁쓸하다.     

 

동네 분위기는 집과 관련한 소식과 동행한다, 2020ⓒ유광식
동네 분위기는 집과 관련한 소식과 동행한다, 2020ⓒ유광식
어디서든 빨간 간판을 간과할 수 없다, 2017ⓒ유광식
어디서든 빨간 간판을 간과할 수 없다, 2017ⓒ유광식
새로운 녀석이 산곡역 위에 자리해 호령할 태세다(감시탑 같은 두 개 동 50층 규모다), 2020ⓒ유광식
새로운 녀석이 산곡역 위에 자리해 호령할 태세다(감시탑 같은 두 개 동 50층 규모다), 2020ⓒ유광식

 

산곡동은 산뜻하나 지붕 아래 작은 부화장 같은 따스함이 줄었다. 현재 커다란 넓이에 부족한 건 사람들뿐인데, 1동 구역은 아이들의 출현도 드물다. 자동차만이 일방통행 길을 고개 내밀며 달릴 뿐 적막감이 상당하다. 주변이 온통 개발 천국인지라 조만간 모조리 새 옷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고 문화는 만들어질 테지만 그때까지는 허허로운 벌판의 성격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맑은 날씨의 동네 아침(산곡1동 행정복지센터 후문), 2019ⓒ유광식
맑은 날씨의 동네 아침(산곡1동 행정복지센터 후문), 2019ⓒ유광식
좁은 골목을 점령한 나무꽃 터널, 2020ⓒ유광식
좁은 골목을 점령한 나무꽃 터널, 2020ⓒ유광식
‘노출창고’에 쌓인 생활의 작용점, 2018ⓒ유광식
‘노출창고’에 쌓인 생활의 작용점, 2018ⓒ유광식
주택가 골목 안쪽 오래된 집들(끝에 미군 부대 경비행장이었던 한양Ⓐ), 2017ⓒ유광식
주택가 골목 안쪽 오래된 집들(끝에 미군 부대 경비행장이었던 한양Ⓐ), 2017ⓒ유광식

 

마을도 나이가 들면서 음식도 나이가 들었다. 맛이야 오래되면 더 맛나다. 닭볶음탕과 간짜장, 만두, 백반, 매생잇국 등 몸 안에 넣어 둔 맛들이 있다. 그럼에도 오래된 동네를 거닐면서 아련한 생각만 는다. 흐린 날에는 흡사 영화세트장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과거의 영화로움은 썰물 빠지듯 사라지고, 허름하고 스산한 분위기만 가득하다는 이야기다. 부디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각박하지 않게 오색찬란한 새 산곡동으로 부화하길 기대한다. 

 

오늘도 원적산 능선과 평행으로 뻗은 생활도로를 걷는다, 2018ⓒ유광식
오늘도 원적산 능선과 평행으로 뻗은 생활도로를 걷는다, 2018ⓒ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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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2020-06-12 22:12:51
마지막사진이 너무 멋집니다. ㅎㅎㅎㅎ

이진우 2020-06-12 22:12:17
산곡동은 낮에는 그래도 견뎌볼만하지만 밤데는 쓸쓸함이 짙어지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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