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 한밤의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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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 한밤의 손님들
  • 홍지연
  • 승인 2020.06.12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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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12) 아이 손님과 어른 손님 - 홍지연 / ‘책방 산책’ 책방지기
한 밤의 손님들
책방산책, 한 밤의 손님들

한낮의 손님들

우리 책방의 평일 영업시간은 오후 2시~8시이다. (요즘은 코로나19 ‘물리적 거리두기’로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지만 원래는 그렇다.) 한 낮의 손님들은 주로 어린이들이다.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책 읽으러 왔어요.”하며 가만히 들어와 견본 책을 읽고 가는 한 소녀가 있었다. 처음에는 만화책으로 시작해서 이야기책, 지식책을 두루두루 읽더니 책방지기와 조금 친해진 뒤로는 어른들이 읽는 책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묻기도 했고 서로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가만히 책을 읽고 책방지기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님이 한 명 들어오면 자신이 읽은 책을 추천하고, 그 책을 왜 사봐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하며 책방지기보다 더 열심히 영업(?)을 하곤 했다. 그리고 집에 갈 때는 “용돈 모아서 다음엔 꼭 책을 살게요.”하고 돌아갔다. 아마도 그 소녀가 추천해서 책을 사간 손님들이 얼추 열 명은 넘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 그 소녀는 오지 않았다. 가끔 놀이터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요즘은 왜 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이 생겼어요! 저 요즘 바빠요.” 크게 대답했다. 알고 보니 그 소녀는 전학생이었고, 친구들이 생겨서 책방에 올 수 없다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잊을 만하면 우르르 친구들을 데려와 책방에서 책을 읽고 책수다를 떨다 간 그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오후 5시가 되면 가방에 책 두어 권을 담아와 책방에 앉아 책을 꺼내 책을 읽고 가는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이 어느 날 물었다. “선생님은 책을 언제 읽나요. 제가 며칠 봤는데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책 읽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책방지기 얼굴 빨개지게 만든 소년. 그 앞에 앉아 책방지기 하루 일과를 이야기해주었다.

매일 새로운 책이 뭐가 나왔는지 살펴보고 주문을 넣고 도착한 책을 정돈하고, 손님들이 SNS나 문자로 하는 주문에 응대하다보니 컴퓨터와 핸드폰 앞에 있게 된다고. “그러니까 선생님은 책을 언제 읽느냐고요.” 그것이 궁금했구나. “응,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어. 새벽에 책이 제일 잘 읽혀. 밤에도 읽어야지 하긴 하는데 피곤해서 책을 펼쳐놓고 잠 들 때가 많아.”

답을 했는데 몇 시에 일어나서 읽느냐, 몇 시간을 읽느냐 물었다. 4시에도 일어나고 어떤 날은 3시, 5시… 눈이 떠지는 시간부터 읽는데 몇 시간을 읽는지는 세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 소년의 질문 후로는 책방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업무 외에는 가능하면 컴퓨터나 핸드폰 앞에 있지 않고 책을 읽었다. 나를 깨우는 질문을 했던 그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안부를 묻고 싶은 한 낮의 손님들이 많지만 안부를 물을 수가 없다. 그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 하며 얼굴을 떠올릴 뿐이다. 소녀소년들에게 책방이 왜 좋으냐고 물었을 때 말했다. “말을 걸면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잖아요. 책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고, 책이야기를 끝없이 할 수 있어요. 어른들은 물어보면 글씨 아니까 알아서 읽으라고만 하고 책이야기 안 해 줘요.”

 

책방산책, 한 낮의 손님들
책방산책, 한 낮의 손님들

 

한밤의 손님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길에 책방에 들러도 괜찮으냐고 묻는 손님들이 있다. 혼자 하는 책방이다 보니 아이 저녁 먹이고 야근을 하는 일도 부지기수라 책방지기가 밤에 일을 할 때는 언제든 들르시라고 이야기 한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책방에 들러 숨 가쁘게 하루를 보내고 안도의 숨을 포옥 내쉬며 책 향기를 훅 맡으니 편안해진다고 말해주는 손님들을 볼 때면 야근의 피로는 사르륵 사라진다.

얼마 전엔 너무 미안하지만 밤 10시에 찾아와도 괜찮겠느냐고 한 아이 엄마가 있었다. 어린이들이 어린이집과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니 종일 아이들과 지내다 남편이 돌아오면 와서 차분히 책을 둘러보고 싶다 해서 흔쾌히 그러시라 했다. 아이들 책과 자신의 책을 여러 권 고르고 30분을 머물다 가시며 하루의 피곤을 여기에 내려놓고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고마운 마음에 흔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책방지기가 개인적인 일이 없다면 언제든 들르시라고 했다.

비가 오는 날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은 골목 안 책방에 찾아와 책이야기를 끝없이 펼치다 가신 분들도 있다. 한밤의 손님들은 영업시간도 지났을 텐데 미안하다는 말을 늘 앞서서 한다. 책방지기는 한밤에 찾아온 미안함 때문에 후다닥 책을 고르려는 손님들에게 충분히 여유를 가지시라고 말한다. 요즘 같은 때 늦은 시간 이 곳에 오고 싶다고 말해주는 진짜 동네책방 손님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그것 뿐일지도 모르니까.

한여름 밤에 열던 심야책방을 열고 함께 한 밤 독서를 즐기지 못해 애석한 마음뿐이다.

책방의 기쁨 중 가장 큰 기쁨은 책을 파는 일이겠지만 어쩌면 이곳이 좋다고, 여기에 오면 행복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책방의 기쁨과 바쁨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 책방의 존재 이유를 끝없이 깨워주는 손님들 안부를 물으며, 오늘도 고맙습니다!

책방산책, 한 낮의 손님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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