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책방을 찾는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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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책방을 찾는 손님들
  • 김시언
  • 승인 2020.06.19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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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 (13)
'강화 한계령'을 넘어 - 김시언 / '우공책방' 책방지기
강화 한계령 이라 불리는 고비고갯길

우공책방은 강화군 내가면 고려산 자락에 있다. 사람들은 우리 책방을 일컬어 ‘산골책방’이라고 부른다. 낙조대 적석사 가는 길에 있는 데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산골책방이라고 불리는 게 맞다. 마을에서 높은 건물은 띄엄띄엄 있는 2층집뿐이다. 한낮에도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고 오밤중에는 온통 캄캄하다. 보안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는데, 이는 논밭에 있는 작물이 불빛으로 방해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책방이 있는 고천4리 연꽃마을은 강화읍에서 차로 10분이면 오지만, 심리적 거리는 그보다 훨씬 멀다. 바로 고비고갯길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려산과 혈구산을 가르는 고비고갯길은 더없이 고즈넉하고 한가롭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그 길로 책방을 찾아오지만, 초보운전자나 초행길인 사람들에게는 그리 편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 고갯길을 ‘강화 한계령’이라 부르고 우리 연꽃마을 토박이분들은 ‘강화 진부령’이라고 부른다.

책방지기인 나는 이 길을 좋아한다. 옛날 옛적에 이 길은 틀림없이 산적이 득실댔을 것이다. 섬에도 호랑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뭍이라면 호랑이가 언제든지 나타났을 법한 고갯길이다. 주말 교통량이 웬만한 도시 뺨친다는 강화읍에서 내가면으로 방향을 틀어, 고갯길을 넘자마자 우리 책방이 있다. 읍내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우리 책방을 찾아오는 손님은 참 다양하다.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고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또 낙조대 적석사를 오르다 이정표를 보고 들어오기도 한다. 손님들이 들어오면서 하는 말은 거의 같다. “책방에 손님은 오긴 와요?” “아니요, 많지 않죠!” 그러고는 묻는 이와 대답하는 이가 함께 웃는다. 우리 산골책방은 일부러 와야 오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리 책방을 찾아온 손님들 이야기를 할까 한다.

오가는 길에 들른 반가운 이웃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도시 젊은이들

하나. 젊은이 손님은 무조건 반갑다. 젊은이들이 가끔 뻘쭘한 표정으로 들어서는데 이들이 책방을 찾는 이유는 갖가지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손님은 카페를 찾아 들어오는 경우다. 마을이 고즈넉해서 카페 하나는 있을 법해서 들어왔지만 그들이 찾는 카페는 그 어디에도 없고, 잠시 난감해할 때 책방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우리 책방은 북카페가 아니므로 커피나 대추계피차를 그냥 낸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대개 책을 무척 좋아한다.

젊은 직장인들은 한목소리로 책을 읽고 싶지만 일에 치여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일종의 책에 대한 부채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면서 휴가 때나 명절 때 이삼일 동안 죽도록 책만 읽으면서 쉬고 싶단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책을 읽고 싶은 열망이 있으니 언젠가 읽지 않겠나 싶다. 불과 나도 몇 년 전에 겪은 도시인들의 모습이다.

또 별러서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은 하룻밤을 묵으면서 작은책방에서의 고즈넉함을 제대로 만끽한다. 짐을 풀고는 주변에 있는 계룡돈대와 오상리 고인돌군을 한 바퀴 돌다가 들어와 저녁을 먹는다. 밤늦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찾아보는 그들을 보면 믿음직스럽다. 또 그들은 아침 일찍 낙조대 적석사를 다녀온다. 걸어서 왕복 한 시간 남짓 걸리니 아침 산책으로는 제격이다. 아침밥을 먹고 마당에 있는 데크에 앉아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면서 도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아파트 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한가로움을 맛본다.

 

책방을 내고 싶어 찾아오는 이들

둘. 책방에 관심이 있는 손님들이 일부러 온다. 이들의 절반 이상은 책방을 내고 싶은 분들인데, 이른바 벤치마킹 차원에서 책방을 찾아온다. 곧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을 할 분들이 의외로 많다. 이미 지방 어디에 땅을 사 놓은 분도 있고, 어떤 분들은 강화나 수도권 근교에 땅을 사서 책방을 하고 싶다고 했다. 더욱이 공방이 있으니 책방과 공방을 함께하고 싶은 이들의 질문은 구체적이고 절실하다.

우리는 이런 분들은 무조건 환영한다. 책방을 내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 자금 때문에 서두르느라 놓친 부분들을 가감 없이 이야기해 준다. 지금 책방을 낸다면 이런저런 보완할 점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어떤 분은 꼼꼼히 메모하고 나중에 전화로 다시 묻는다. 은퇴를 앞둔 분들이라 준비가 아주 현실적이고 철저하다.

간혹 어디에 책방을 내야 할지 모른다는 분들도 있다. 그러면 강화에서 내라고 권한다. 강화에 책방이 몇 군데 있지만, 더 많아도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강화섬 전체에 책방이 오십 군데 정도 있으면 강화는 살 만하지 않을까. ‘책방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지.’<섬에 있는 서점>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슬리퍼 신고 슬슬 걸어가 책을 고를 수 있는 책방이 마을마다 있으면 좋겠다.

 

강화에 사는 마음 좋은 이웃들

셋, 이웃들을 만나는 일도 즐겁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옆 마을에 사는 아저씨가 다녀갔다. 모처럼 쉬는 날이라 집에 있다가 우리 공방에서 필요할 것 같다며 나무판자를 가져왔다. 차를 마시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갔는데, 그분이 그만 휴대폰을 두고 갔다. 어차피 휴대폰이 없으니 당사자는 전화받을 수 없을 것이고, 그의 식구나 친구가 찾으러 올 것이다. 어쩌면 오늘 저녁식사는 그들과 함께할지도 모르겠다. 시골에 산다는 것, 시골에서 책방을 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나무를 깎는 단호, 단희, 단하

 

책방 아줌마라고 부르며 찾아오는 단호네

넷. 마을 사람이 찾아올 때는 더없이 반갑다. 특히 우리 책방 단골인 단호네가 오면 그저 즐겁다. 지난번에 단호가 외상으로 사 간 책값을 동전으로 갚으러 온 이야기를 했다. 격주로 주말에는 단호가 엄마, 형, 누나랑 함께 와서 반나절을 놀고 간다. 책을 읽기도 하고 공방 체험을 하기도 한다.

단호 삼 남매는 나무를 깎고 다듬고 사포질까지 하는, 이른바 ‘우드카빙’에 재미를 붙였다. 엄마 손을 잡고 슬리퍼를 신은 채 온 이들은 책방 마당에서 아주 진지하고 평화롭게 나무를 깎으면서 논다. 같은 마을에 사니 풍경이 비슷한 것 같아도 단호네 집에서 보는 마을 풍경과 책방에서 보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소풍 온 듯, 간식을 잔뜩 싸 와서 놀다가는 단호네가 있어서 즐겁다.

단호 누나 단희는 중1인데 손끝이 아주 야무지다. 나무토막을 잡고 한동안 씨름을 하면서 디자인이 독특한 숟가락을 만들고, 다음에는 어떤 걸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운다. 단호 형 중3 단하는 눈썰미가 어찌나 좋은지 아주 집중력 있게 나무토막을 깎고 다듬는다. 단호는 형과 누나 옆에서 나무토막을 들고 열심히 깎고 다듬는다.

어제도 산책하다가 단호를 만났다. 길 건너 멀찍이서 단호가 할머니랑 산책하다가 큰소리로 불렀다. “책방 아줌마!” 단호가 큰소리로 책방 아줌마라고 부르면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단호가 부르면 고려산과 혈구산이 메아리로 따라 부르는 소리, “책방 아줌마!” 책방을 열고 책임감을 느낄 만한 일이 더러더러 있었지만, 단호가 부를 때면 바짝 긴장한다. 고려산 산자락에서 작은책방을 꾸리면서 단호네 삼 남매가 이다음에 커서 간간이 떠올릴지도 모를 책방과 책방 아줌마, 부끄럽지 않은 우공책방을 꾸려야겠다고 새삼 다짐한다.

 

도끼로 나무 자르는 법을 배우는 단호네
산책하다가 만난 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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