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당혹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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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과 당혹감
  • 김선
  • 승인 2020.07.07 0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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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⑳판사와 관선변호사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니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Tout de suite aprés mon arrestation, j'ai été interrogé plusieurs fois.

체포되자 곧 나는 여러 번 심문을 받았다.

 

체포되자 뫼르소는 여러 번 심문을 받는다. 신원확인을 위한 심문이어서 계속되지는 않았지만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뫼르소는 담담한 듯하다. 처음에 경찰은 이 사건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일주일 후 예심판사는 뫼르소를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호기심의 의미는 아직은 모호하다. 판사는 처음에는 뫼르소의 이름, 주소, 직업, 생년월일, 출생지를 물었을 뿐이다. 그리고 변호사를 선임했는지 묻는다. 뫼르소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하고 변호사를 반드시 세워야 하는지 판사에게 되묻는다. 변호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몰라서 그런지 뫼르소는 자신의 사건이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판사는 그것도 하나의 의견이라고 말하고 관선변호사를 지정한다고 말한다. 뫼르소는 사법부가 그러한 자질구레한 일을 맡아 주니 매우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판사도 뫼르소에게 동의하고 법률이 잘 되어 있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김영란(2020), 판결과 정의. 창작과 비평사.
김영란(2020), 판결과 정의. 창작과 비평사.

 

  법률이 잘 되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김영란법으로 유명한 그녀의 <판결과 정의>의 제목처럼 판결이 정의를 담보하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사회의 사법부의 불신은 위험한 단계다.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국민처럼 뫼르소의 무덤덤함과 그 위에 군림하는 판사의 호기심이 불편해 보인다.

뫼르소는 판사를 처음에는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다. 커튼이 둘러친 방 책상 위에는 등불이 하나만 놓여 있었고 뫼르소가 앉은 안락의자를 비추고 있는 데 비해 판사는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분위기는 진지하지만 이러한 장면의 묘사를 뫼르소는 이미 책에서 읽은 일이 있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장난 같다고 느낀다. 이야기가 끝난 뒤에 판사를 보니 얼굴이 말쑥하고 움푹한 푸른 눈에 키가 크고 회색 수염을 길게 길렀으며 수북한 머리털이 백발에 가까운 남자라는 것을 뫼르소는 알 수 있었다. 진지하고 호기심 많은 얼굴이다. 뫼르소에게 그는 분별력이 있고 호감을 느낄 수 있을 듯이 보였다. 방을 나서면서 뫼르소는 그에게 손을 내밀려고까지 했지만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이튿날 변호사 한 사람이 형무소로 뫼르소를 만나러 온다. 키가 작고 통통한 사나이였는데 젊어 보이고 머리칼을 정성스럽게 빗어 올려붙이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도 검은 양복 차림이었다. 판사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가방을 뫼르소의 침대 위에 내려놓고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 서류를 검토해 보았다고 말한다. 이 사건은 어렵긴 하지만 자신을 믿어 준다면 재판에서 이길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변호사는 말한다. 뫼르소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그는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말한다.

변호사는 뫼르소의 사생활에 관해 수집했다고 말한다. 최근에 양로원에서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마랭고에 가서 조사를 했는데 엄마의 장례식 날 뫼르소가 무심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을 조사원들이 알아냈다고 말해 주었다. 검사 측에 중대한 논거가 될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고 이것에 대해 변호사가 답변할 것을 준비해야 하니 협조해 주기를 뫼르소에게 부탁한다.

 

정혜진(2019).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미래의 창.
정혜진(2019).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미래의 창.

 

  변방에 선 이들을 변호하면서 우리에게 삶의 자세와 가치를 호소하는 국선변호사 정혜진처럼 미리 변론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그날 마음이 아팠냐고 묻는다.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인데 오히려 이 질문은 뫼르소를 몹시 놀라게 했다. 자문해 보는 습관을 잃어버려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한다. 자문할 정도로 이 질문은 뫼르소에게 낯선 것인가?

  뫼르소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며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솔직해서 솔직하지 못한 이들을 당황케 하는 답변이다. 그러자 변호사는 뫼르소의 말을 가로막았는데 몹시 흥분한 듯이 보였다. 당황한 일반인의 모습이다. 그는 그런 말을 법정에서나 예심판사 방에서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뫼르소를 다그친다. 자신의 말의 파급력을 모르고 뫼르소는 육체적 욕구에 밀려 감정은 뒷전이 되는 천성이라고 변호사에게 설명한다. 엄마의 장례식이 있던 날 자신은 매우 피곤했고 졸려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모르는 상황에서 육체적 욕구가 감정을 전복해 그날의 기억이 제대로 상기되지 않고 있다. 다만 자신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죽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변호사는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뫼르소에게 말한다. 충분한 답을 기대하는 변호사가 힘들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제대로 된 변론을 위해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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