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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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산에 오르다
  • 엄동훈
  • 승인 2020.07.2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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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엄동훈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과 소통의 글쓰기반

등산 가방을 둘러매고 집을 나선다. 늘 다니는 익숙한 길, `oo`문화회관 가는 길이다. 간석동 성당 신축현장 옆길을 지나며 하느님께 아들의 학업 문제에 대한 어려움을 말씀 드리고 지혜를 구하였다. oo시장 한 복판을 가로 질러간다. 오전이라 시장 보러 나온 사람은 그다지 없고, 상인들이 손님맞이 준비를 하느라 부산해 보인다. 열심히 살아가는 상인들 모습에선 생기가 넘친다. 야채가게 아주머니는 도매시장에서 사온 야채박스를 열어 진열한다. 떡 가게 집에서는 연신 김이 뿜어저 나와 가게 내부가 안 보이도록 뿌옇다. 이런 시장의 활기찬 모습에는 날 것 그대로의 사람 냄새가 있다. 단골로 오시는 손님의 고향은 어디며 애들 이름쯤은 기본으로 알고 있는 이런 시장사람들의 삶의 냄새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시장 길을 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북적북적한 시장 안 상인들도 내일을 향한 소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말로 구하는 대신 몸으로 뛴다. 건강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생기는 저절로 그들의 염원을 들어 주는 하느님의 축복인 듯하다.

걷다 보니 조금 덥다. 하지만 얼굴에 스치는 바람은 산뜻하다. 얼마 전 석바위시장역 부근에서 모임을 끝내고 수산동 공원을 ‘oo’님과 걸은 적이 있었다. 그는 마주 오는 사람들을 향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인사를 한다. 처음엔 아시는 분인가 보다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 모두에게 인사를 한다. 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와 닿는 느낌이 새롭다. 세상살이에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가진 것도 없으면서, 꼭꼭 문단속만 하고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된다.

만월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나도 인사를 해본다. 신기하게도 그 때마다 저녁 식사 후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나온 것처럼 몸도 마음도 훨씬 가볍다. ‘잘 했어’ ‘이제부터 산행은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혼자 북도 치고 장고를 친다. 나중에 ‘oo’님을 만나면 일깨워 주신 것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겠다.

만월산 정상을 지나 산행자 쉼터 옆에 노란 비닐로 둘러친 나름 아늑하게 꾸며진 산정(山頂)다방이 있다. 오십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웃는 얼굴로 커피 한잔 하며 쉬었다 가란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아파서요. 웃으며 거절을 했다. 지나치고 나서야 커피 말고 다른 차는 없냐고 물어나 볼 걸 뒤늦은 후회를 한다. 다음 기회가 되면 여유를 갖고 다가가리라. 그분들의 사는 모습도 엿보고 나와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리라.

산에 오르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완만한 경사에 숨 한번 크게 내쉬면 오를 수 있다. 산등성이에 올라서면 뾰족한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걸음을 옮길 때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까 고민을 해가며 걸어야 한다는 게 조금 부자유스러울 뿐이다.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는 부평공원 묘원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인천에 중심시가지가 보인다. 멀리는 서창 신도시와 송도 신도시가 보이고, 가까이에는 인천시청이 보인다. 간석시장과 모래내시장이 보인다, 우리 집도 건물 사이에 묻혀 보이진 않지만 어렴풋이 저만치에 있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푸근하다.

오다가다 힘들면 쉬어가라고 중간중간 긴 의자가 평탄한 위치에 설치되어 있다. 시끌벅적한 곳에서 살다가 조용한 곳에 오면 사색할 여유가 생겨 좋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의자. 나는 항상 같은 자리로 앉아서 추억여행도 해보고, 느낌이 오면 글도 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웃과 어울려 사는 이 동네가 좋아졌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다. 주거의 편리함만 보고 선택하여 이곳에 터를 잡아 십여 년을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정이 들었다. 또 지근거리에 오를 수 있는 산이 있고, 시끌시끌한 재래시장도 있다. 골목골목엔 고만고만한 집들이 옹기종기 등을 맞대고 야트막한 담장 넘어 정감있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낯선 이가 온다고 짖어대는 강아지도 귀엽고, 축대 위에서 웅크리고 졸고 있는 고양이에게서도 삶에 향기가 느껴진다. 이렇게 정이 넘쳐나는 곳을 재개발이라는 중화기(重火器)를 들이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문득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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