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언, 어린이 책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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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언, 어린이 책 고르기
  • 위원석
  • 승인 2020.07.31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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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19) 위원석 /딸기책방 책방지기

쿨하지 못해 미안

책방을 찾아오는 손님이 각양각색이듯 책방을 지키는 책방지기들도 제각각입니다. 어떤 책방지기는 처음 찾은 손님과도 자연스레 깊은 이야기 나누며 딱 맞는 책을 소개해 주기도 하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대체로 책 소개에 소극적입니다.

“어서 오세요!” 인사를 나누고 나서 몇 마디 주고받기도 하지만, 손님이 먼저 물어오기 전에 책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시크한 유럽 서점원 컨셉’이 멋있어 보여서 나름 노력 중이거든요.

하지만 손님이 책을 고르는 동안 무심한 척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는 일은 무척 힘들어요. 손님이 어떤 책의 책장을 열어보는지, 어떤 책을 들었다 놓는지, 어떤 책을 데려가기 위해 슬쩍 테이블 옆에 올려놓는지… 선택의 순간, 순간의 장면에 시선을 빼앗기게 되지요. 책방지기라면 누구나 손님이 고르는 책에 관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딸기책방은 그림책방인 만큼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와서 책을 고를 때가 많은데요. 이럴 땐 책 고르는 과정이 대화로 생중계되기 때문에 훔쳐보지 않아도 소리로 듣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더러는 ‘아, 그 책보다 이 책이요.’라고. ‘책을 그렇게 말고 이렇게 고르시죠’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 때도 있지만 가능하면 독자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지켜보는 편입니다. ‘시크한 유럽 서점원 컨셉’이 멋있어 보여서 나름 노력 중이거든요.

그래도 이제 2년 넘도록 책방을 하고, 20년 넘도록 어린이 책을 만들었으니 사실 어린이 책 고르시는 독자들께 훈수 두고 싶은 마음도 참 간절합니다.

그래서 딱 오늘 하루, 특별히 ‘시크한 유럽 서점원 컨셉’을 포기하고 어린이 책 고르는 어른들께 몇 가지 조언을 좀 할까 합니다. 어린이 책 사실 때 한번쯤 제 조언을 기억해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책방에 오셨다면 절반은 성공

정보 과잉의 시대입니다. 디지털 문화, 영상 문화가 발달할수록 분별력과 해석력, 공감 능력 비판적 사고는 점점 더 좋은 사람으로 살기 위한 핵심 조건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을 키우기에 어린 시절의 책 읽기만 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야겠다고 생각하면 일단 좋은 어른입니다.

게다가 수십 권의 전집을 덜컥 사서 집에 비치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아이와 함께 읽으며 좋은 책을 골라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면 훌륭한 어른입니다.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사도 좋겠지만, 아이를 책방에 데려 오셨다면 정말 멋진 어른입니다. 책의 실물을 확인하고, 묵은 책의 종이 향을 맡으며, 책을 찾아 들어온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책을 고르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요. 책방의 경험이야말로 아이들이 책 읽기를 마음속 깊이 좋아하게 하는 원체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딸기책방 인근 유치원 어린이들이 즐거운 책방 체험을 하고 있다,
딸기책방 인근 유치원 어린이들이 즐거운 책방 체험을 하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책방에 오신 분들께 더 바랄 게 뭐 있을까 합니다만 어차피 ‘시크’를 포기했기에 질척대며 몇 마디 더 보태 봅니다.

 

어떤 책을 사줄까?

“그 책은 지금 읽었으니까 빨리 다른 책 골라서 사 가자.”

책방에서 가끔 듣게 되는 어른들 말 중 하나입니다. 이럴 때 아이는 계속 자기가 방금 읽은 책을 집에 데려가겠다고 고집을 피울 때가 많습니다. 어른은 아이가 많은 책을 읽기 원하지만 아이는 좋아하는 책을 반복적으로 읽기 원합니다.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롭고 매번 읽을 때마다 즐거우니까요. 어른들도 좋은 영화 몇 번이고 보잖아요? 좋은 음악은 몇천 번도 듣지요? 어린아이일수록 반복을 통해서 책을 배우고 세상을 배우는 과정이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건 너보다 어린애들이 읽는 책이잖아. 글 밥 많은 걸 골라봐.”

아이의 연령에 따라 권장되는 수준의 책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발달 수준에 따라 몇 세 이하는 보지 않는 게 좋을 책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몇 세 이상이 읽으면 안 될 책이란 건 없습니다. 일흔이 넘은 노학자도 글자가 단 하나 없는 그림책에서도 큰 감동과 깨우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어떤 책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건 자신의 경험과 포개지는 공감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책과 그 공감을 충분히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그 책보다 이 책이 좋겠다.”

아이가 책을 선택해서 가지고 오면 이렇게 말하는 어른도 없지 않습니다. 아이는 금세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기도 하고요. 세상엔 좋은 책이 참 많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고른 책보다 좋은 책도 당연히 있겠지요. 하지만 아이가 책을 살피고 마음을 정하고 원하는 책을 골라 사는 것, 그 책을 집에서 다시 읽는 즐거움보다 훌륭한 독서 체험을 줄 책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와 책방까지 오셨다면 아이가 온전히 자기 책을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어? 그건 만화책이네.”

아이가 만화책을 잡으면 살짝 경계하는 어른들의 모습도 자주 봅니다. 동네책방에 있는 어린이 만화가 어린이에게 해로운 만화일 리는 없습니다. 만화책만 읽고 글자 책을 안 읽을까 걱정도 있겠지만, 제가 지켜보기로 만화책을 읽는 어린이들은 글자 책도 읽습니다. 그보다는 책에 대한 관심이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가 나뉘어지는 것 같고요. 최근의 추세는 그림책과 만화책, 그래픽 노블 같은 장르의 경계들이 무너지는 추세입니다. 글과 그림이 함께 있는 책, 글만 있는 책은 어느 것이 낫고 못하고 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서로 다른 장점이 있겠지요. 우리 어린 시절 만화에 열광하지 않았나요? 그러면서 글자와 책과 친해졌지요. 아이들도 그 재미를 맘껏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딸기책방이 만든 만화책, 《금강산선 이야기》는 ‘2020년 세종도서’, ‘2020년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20종 중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상한 마을에 놀러 오세요》와 《우당탕탕 고양이 클럽》은 2020년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딸기책방의 책 뿐 아니라 좋은 만화들이 정말 많이 나와 있습니다.
딸기책방이 만든 만화책, 《금강산선 이야기》는 ‘2020년 세종도서’, ‘2020년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20종 중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상한 마을에 놀러 오세요》와 《우당탕탕 고양이 클럽》은 2020년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딸기책방의 책 뿐 아니라 좋은 만화들이 정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책이 좋은 책

어떤 책들은 어린이들이 보기에 적합하지 않을 수도, 어떤 책들은 굳이 볼 가치가 없을 수도, 어떤 책들은 잘못된 관점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책방지기들은 좋은 책들로 서가를 채우기 위해 늘 노력합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처럼 공신력 있는 단체의 추천리스트를 참고하여 자신의 책방에 알맞은 책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동네책방에서는 아이들이 더 자유롭게 자기 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셔도 좋겠습니다.

책 고를 때 어른과 아이의 대화를 듣다 보면 책방지기가 아이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가 꽤 자주 있습니다. 즐겁게 책방에 왔는데 뜻대로 책을 고를 수 없을 때, 화나거나, 체념하거나, 짜증내거나 하는 모습을 볼 때 그런데요. 오늘 꼭 인생 책 한 권을 고르자고 책방에 온 것이 아니라면, 책방에 온 것이 무엇보다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어른도 아이도 행복한 책방 체험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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