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십자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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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십자가의 의미
  • 김선
  • 승인 2020.08.0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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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 ㉒신념의 강요와 의미없는 수긍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니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 Est-ce que vous le connaissez, celui-là? » J’ai dit « Qui, naturellement. »

당신은 이것을, 이 사람을 압니까?” “물론 압니다하고 나는 말했다.

 

  갑자기 판사는 일어서서 사무실 한끝으로 걸어가더니 서류함의 서랍을 연다. 거기서 은 십자가 하나를 꺼내 가지고 그것을 휘두르며 뫼르소에게 돌아온다. 엑소시스트 영화처럼 악귀를 쫓아내기 위한 신부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여느 때와는 다른 떨리는 목소리로 이것을, 이 사람을 아냐고 묻는다. 특별한 현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뫼르소는 안다고 차분히 답한다. 그러자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판사가 흥분한다. 아주 빠른 어조로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하느님께 용서받지 못할 만큼 죄가 큰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용서를 받으려는 사람은 뉘우치는 마음으로 어린애처럼 되어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격정적으로 그것이 그의 신념이라고 레파토리처럼 말한다. 은 십자가가 평소해 잠잠하던 판사에게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판사는 온몸을 책상 너머로 기울이고 십자가를 거의 뫼르소 머리 위에서 휘두르고 있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영화, 마태복음(1964)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영화, 마태복음(1964)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영화, 마태복음(1964)의 십자가와는 다르게 판사는 본격적으로 의식을 거행한다. 뫼르소는 솔직히 그의 논리를 제대로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아직도 은 십자가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더위에 취약한 뫼르소는 정신이 다른 곳에 분산되고 있었다. 몹시 더운 데다 판사의 사무실에는 큼직한 파리들이 있어서 그것들이 얼굴에 달라붙었기 때문이고 그의 태도에 겁이 나기도 했다. 진지한 판사와 달리 뫼르소는 판사가 하는 짓이 우스워 보였다. 왜냐하면 죄를 지은 사람은 뫼르소 자신인데 판사가 더 흥분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판사는 계속 떠들어 댔다. 그가 생각할 때 뫼르소의 고백에 오직 한가지만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 모호함이 판사에게는 악귀인 것이다. 즉 둘째 발을 쏘기 전에 기다렸다는 사실 말이다. 그 밖에 다른 것들은 다 좋은데 오직 그 점이 그에게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해 할 수 없을 때 그것은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법이다.

  이런 판사의 고집 부리는 것 같은 행동은 잘못이고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마지막 그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뫼르소는 그에게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판사는 뫼르소의 말을 가로막고 다시 한 번 벌떡 일어서더니 뫼르소에게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으며 훈계한다. 뫼르소는 스의 훈계에 쉽게 넘어 갈 사람이 아니다. 뫼르소는 아니라고 답한다. 그는 분연히 주저앉았다. 반복될 행동이다. 그럴 수는 없다고 하며 누구나 비록 하느님을 외면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을 믿는 법이라고 말한다. 판사는 자신의 신념이 모두의 신념이라 생각하는 사림인 것 같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신념이었고 만약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심해야 한다면 그의 삶은 무의미해지고 말리라는 것이다. 판사는 뫼르소에게 자신의 삶이 무의미해지기를 바라냐고 외친다. 지금까지 과정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뫼르소에게 요구한다. 뫼르소가 볼 때 그것은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라고 판사에게도 말했다.

  그러나 벌써 판사는 책상 너머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을 뫼르소 눈앞에다 내밀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른다. 좀 더 노골적으로 자신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적극적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1844-1900)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1844-1900)

  “신념을 가진 사람이 가장 무섭다. 신념을 가진 사람은 진실을 알 생각이 없다. 강한 신념이야말로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신념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다.”라고 말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처럼 판사의 신념은 자신과 대상자 모두에게 감옥을 만드려 한다. 자신은 기독교 신자고 그리스도께 당신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있는데 어째서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고통 받으셨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고 묻는다. 판사에게는 중요한 논리가 뫼르소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뫼르소는 그가 자신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자기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뫼르소는 진절머리가 났다. 더위는 점점 더 심해져 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별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우리도 그렇듯이 뫼르소는 판사의 말을 수긍하는 체한다. 서로의 의도는 달랐으나 누군가는 자신의 의지가 관철됐음을 확인하지만 잠깐이다. 놀랍게도 판사는 의기양양해서 뫼르소 당신도 하느님을 믿고 있고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려고 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뫼르소는 아니라고 말한다. 판사는 다시금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반복된 행동이 또 나왔다. 그러니 판사가 매우 피곤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잠시 아무 말이 없었으나 그동안에도 대화를 뒤쫓으며 멈추지 않고 있던 타이프가 마지막 이야기를 계속해서 받아 치고 있었다. 아마도 같은 내용이 반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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