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75주년의 의미와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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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75주년의 의미와 성찰
  • 이민우
  • 승인 2020.08.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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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민우 / 남북정상합의이행·한미워킹그룹해체
인천비상시국회의 상임대표

일제의 패망, 그리고 해방. 모두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게 당연하건만, 일생을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김구는 탄식으로 이날을 맞았다.

 

'‘아! 왜적이 항복…’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 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서안훈련소와 부양훈련소에서 훈련받은 우리 청년들을 조직적, 계획적으로 각종 비밀 무기와 무전기를 휴대시켜 산동 반도에서 미국 잠수함에 태워 본국으로 침입하게 하여 국내 요소에서 각종 공작을 개시하여 인심을 선동하게 하고, 전신으로 통지하여 무기를 비행기로 운반하여 사용할 것을 미국 육군성과 긴밀히 합작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계획을 한번 실시해 보지도 못하고 왜적이 항복하였으니, 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다.' <백범일지>

 

우리 손으로 일제를 타도하고, 우리 손으로 이땅의 일본인들을 몰아내는 것은 일제의 침략으로 고통을 받았던, 우리 민족 모두의 소망이었다. 그리고 민족 운동에 나섰던 이들 모두는 바로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 날이 왔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 천황이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한다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느릿하고도 맥빠진 목소리였다. 제국주의 일본의 한국 지배는 이렇게 35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 믿기 어려운 소식에 한국민들은 일순간 멍해졌다. 결코 망할 것 같지 않던 일본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이야…

그 날 정오 이후 서울의 풍경은 어떠했을까? 한 외국인은 그 날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8월 15일. 서울은 마치 쥐죽은 듯 고요했다. 시민들은 일본의 항복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냥 기다렸다. 기쁨과 희망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나 다음날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환희에 가득찬 사람들의 거대한 물결이 온 시내, 온 나라를 뒤덮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텅 비고 조용하기만 했던 서울, 수많은 사람들이 파도처럼 광장과 거리와 골목을 가득 메웠다. 끝없는 흰 바다가 흔들리며 들끓는 듯 했다.

마치 한민족 전체가 하나 되어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해방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해방이 아니라 김구선생이 한탄한 것과 같이 연합국(미․소)에 의한 해방은 해방 후에 한반도의 분단으로 귀결되었다

한반도에는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자주 민주 통일 정부 수립에 대한 국민들의 바람은 무참하게 깨졌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공존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적대감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3년간의 참혹한 전쟁은 전국토를 황폐화시켰고, 그 땅 위의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남북의 적대감은 저주와 증오로 깊어갔고, 이 땅과 우리 민족의 마음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여기서 문제는 6.25한국전쟁이 끝이 난 것이 아니라 휴전상태라는 데에서 오는 많은 고통과 아픔이 현재 진행형이라는데 있다.

남북한의 정부는 6.25전쟁 후에도 전후 복구에 매진해서 하루빨리 민중들의 삶이 정상으로 되도록 노력해야함에도 그 후 서로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고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경쟁을 하며 독재체제를 구축해갔다.

남북한 정부는 지금도 군비확장을 통해 자기의 힘을 과시하고자 많은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이것은 아직도 우리가 휴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 전에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 미국의 트럼프가 만나 이러한 휴전 상태에서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체결을 하여 평화협정시대를 열것처럼 하여 엄청난 기대를 갖기도 하였으나 결국에는 모든 것이 중단되고 다시 6.15이전의 대결 시대로 돌아가는 듯하여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세계역사상 휴전상태로 70년을 가고 있는 것은 처음일 것이다. 대부분의 전쟁은 어느 한편이 항복하거나 승리하여 종전이 되어 어떤식으로든 평화를 맞게 되는데 우리나라 현실은 참으로 암담하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이념갈등으로 분단되어 동족상잔의 비극이 15년간 계속되었던 베트남의 경우에도 15년간의 참혹한 전쟁에서 많은 비극과 아픔을 겪었지만 1975년 종전이 되면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분단의 고통은 사라졌다.

우리가 흔히 예를 드는 독일의 경우에도 독일은 2차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독일의 나치정권의 무장해제를 위해 연합국 4개국이 분할 점령하여 동서로 나누어져서 체제분단의 비극을 엄청 겪고 나서 1989년 동서독간에 있었던 베를린 장벽을 민중들이 무너뜨리며 동서독이 하나의 통일국가로 다시 태어나서 오늘날 세계 5대 강대국으로 서게되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교류, 협력, 통일이라는 남북한의 통일을 위한 3단계 해법을 제시하였으나, 우리는 아직도 교류라는 첫 단계에 진입도 못하고 대결의 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최소한 교류와 협력의 단계는 갈 것처럼 보여 종전을 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통일을 향하여 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도 했으나 지난 몇 주간에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소리를 듣게 되니 참 암담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극복해야하고 노력해야하는 것은 전쟁 없는 평화일 것이다.

그동안 역대 보수정권은 끝임 없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북한에 대한 증오심를 키워왔다. 이제는 대결의 시대를 청산하고 평화공존의 시대로 진입하기 위하여 휴전 상태를 종식시키고, 평화협정으로 남북이 나아가 교류와 협력시대로 나가야 한다.

남북이 평화공존의 시대가 되어야 군비확장에 들어가는 재정과 인적 자원이 민중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쓰여 질 것이고 이는 곧 평화와 번영이 이루어 질 것이다.

해방은 남북한이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어야 비로소 완전한 해방일 것이다.

 

이민우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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