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책방지기의 행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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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책방지기의 행복은
  • 안병일
  • 승인 2020.08.2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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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21) 굳이 책방을 여는 이유 - 안병일 / 책방시점 책방지기

 

2015년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독립출판물만 다루는 곳, 음악 등 특정 분야의 책만 소개하는 곳 등, 작지만 특색 있는 책방들이 늘던 시기를요. 그런 곳들을 독립서점이라 부른다는 걸 알게 됐고 틈날 때마다 여행하듯 다니곤 했죠. 서울을 중심으로 조금씩 늘어나던 독립서점은 점차 전국으로 확대됐어요. 언젠가부터 어느 지역을 여행할 때 그곳에 작은 책방이 있는지부터 찾아볼 정도로 늘었죠. 그렇게 제주, 광주, 원주, 세종 등등 전국 각지의 보물 같은 책방을 발견하고 찾아가보는 게 가장 큰 취미가 됐습니다.

독립서점을 소개하는 플랫폼인 퍼니플랜의 자료에 따르면(2002년 2분기 독립서점 현황조사) 2015년 101곳에 불과했던 독립서점(동네책방)은 올해 5월 기준 650곳으로 불과 5년새 6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그 사이 문을 닫은 곳을 제외해도 551곳이 운영 중이라고 하니 눈에 띄는 증가세인 건 분명합니다. 그 사이 책을 좋아하고 책방 여행하는 걸 좋아하던 저도 책방을 열었으니 과연 무슨 일이 있긴 있었나 봅니다.

글을 쓰는 작가도 그 글을 편집해 책을 내는 출판사도, 그들이 낸 책을 판매하는 책방도 모두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죠. 오죽하면 최근 동네책방에 대해 책을 쓴 한미화 작가(동네책방 생존탐구, 혜화1117)는 책방 운영하는 걸 “돈 없는 정우성이랑 산다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왜 돈벌이 안 되는 책방을 여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요?

사실 제가 책방을 열기로 결심한 후부터 끊임없이 되묻고, 확인하고 성찰했던 지점입니다. “왜 책방을 하고 싶은가? 돈 벌기 어려운 일인데 왜 굳이 이 일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평소 다니던 책방 지기에게 염치없이 물어보기도 하고, 오랫동안 책방에 앉아 손님이 얼마나 오는지, 어떤 책들을 파는지 염탐하기도 했습니다.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면 책방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요.

 

 

그 결과 제가 내린 결론은 세 가지였습니다. 우선 세상엔 돈과 상관 없이 하고 싶은 해야 직성이 풀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책방 지기들은 책을 좋아하고 책이 있는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책 100권을 팔아 얼마의 수익을 남기는 것보다 ‘좋은 책을 발견하고 그 책을 소개할 때’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행복한 일이 매일 펼쳐지는데 돈 좀 못 번다고 그 즐거움을 마다할리 없는 사람들인 겁니다. 실제 책방 일을 하고 보니 하루에 스무 권 서른 권 책을 판 날보다(물론 아주 드물지만 이것도 좋지요), 좋은 책 한 권을 제대로 소개하고 그 책을 읽은 분이 잘 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책방하길 잘 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 결론은 여전히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저처럼 여행할 때 꼭 그 지역의 책방을 찾는 사람들, 새로운 책방이 생길 때마다 일부러 고생을 마다하고 찾는 사람들, 책방지기가 추천하는 책은 믿고 보는 사람들, 좋아하는 책을 곁에 쌓아두고 밤샐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곁엔 참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책방을 찾으면 책방지기는 절로 행복해지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먹고 살 순 있어야, 아니 적어도 손해를 봐선 안 되니까요. 책을 좋아할 땐 단순히 책값만 알았지, 어떻게 유통되고 수익구조는 어떤지 몰랐는데 다들 ‘도서 정가제’이야기를 했습니다. 도서 정가제는 온라인이건 오프라인 책방이건 출판사 정한 책값대로 받는 제도를 말합니다. 물론 지금의 정가제는 10% 할인, 5% 간접 할인(적립 등), 무료 배송, 굿즈 제공 등 다양한 예외 조항이 있긴 하지만 말이죠.

세 번째 결론은 ‘건강한 도서정가제가 있다면 책방을 해도 괜찮겠다’였습니다. 도서정가제는 단순히 저처럼 책방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먹고 살게 해주는 제도로만 볼 수 없습니다. 제도 자체의 목적도 아니죠. 사실 독자나 책방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건 ‘양질의 책’입니다. 책이 일반 제품처럼 가격 논리로만 가게 되면 좋은 책을 만들 궁리보단 어떻게든 싸게 ‘뽑아’ ‘많이’ 팔아치울 궁리만 하게 될 공산이 큽니다. 실제 우리가 2000년대 마주했던 암울했던 상황이기도 하구요.

저는 오랜 기간 생활협동조합에서 근무해 ‘최저가’가 아닌 ‘적정가’의 의미를 잘 압니다. 특정 농산물 값이 시장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싸다면 약을 많이 쳤거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수입산이거나 한 것처럼 말이죠. 결국 싼 값에 당장은 작은 이득을 취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손해인 것을요. 제대로 키워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가치를 알고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계속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생태계도 유지될 수 있는 법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죠. 책은 싼 책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각의 의미와 가치가 중요하죠. 그런 수고로움에 대해 제대로 값을 하는 것도 중요하구요.

그런 풍토가 갖춰진다면 책방 일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 그 기쁨을 손님과 나눌 수 있는 즐거움, 덕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봄직한 일인 셈이죠. 실제 많은 책방 지기들이 도서 정가제 이야기를 합니다. 덕분에 작은 동네 어귀에도 책방이 늘고 있고 그 책방마다 크고 작은 모임, 강좌 등 다양한 문화활동이 펼쳐지고 있구요.

도서정가제를 두고 최근 말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책도 하나의 상품인데, 왜 책만 할인하지 않느냐는 주장은 일견 일리 있어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어떤 책을 원하는 걸까요? 싼 책일까요? 아니면 좋은 책일까요? 부족함 투성이지만, 책방을 하고 있는 저는 앞으로도 손님들께 ‘좋은 책’을 찾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런 책방이 저뿐 아니라 동네마다 골목마다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결국 그 과실은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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