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모성애를 체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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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모성애를 체험하며
  • 문미정
  • 승인 2020.08.3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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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도에서 아이들과 생활하기]
(25) 닭에게 배우는 창조와 생명의 순리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부부가 인천 앞바다 장봉도로 이사하여 두 아이를 키웁니다. 이들 가족이 작은 섬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인천in]에 솔직하게 풀어 놓습니다. 섬마을 이야기와 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일상을 이야기로 만들어 갑니다. 아내 문미정은 장봉도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가끔 글을 쓰고, 남편 송석영은 사진을 찍습니다.

 

장마가 유난히 길었던 여름이었다. 그 긴 여름을 우리집 까만 청계 깜돌이는 오릇이 알을 품으며 닭장에서만 지냈다.

태어난지 이틀만에 함께 다니며 삶을 배우는 병아리들
태어난지 이틀만에 함께 다니며 삶을 배우는 병아리들

 

사실 우리집엔 수탉이 없다. 그런데 장마가 길어져서 여름이 덥지 않아서 였을까? 오픈도어로 키우는 우리집 닭들 중에서 깜돌이가 자꾸만 자리를 비워 닭장을 잠궜다. 그랬더니 깜돌이는 알을 꺼내가지도 못하게 알을 품고는 나오지 않기 시작한다.

우리 동네 닭전문가이신 옹암교회 목사님께 여쭈었더니 유정란을 몇 개 넣어보라 하신다. 나는 이틀에 걸쳐 옹암교회에서 유정란 8알을 얻어 알자리에 놓아주었다. 예정일은 815일 이었다.

 

알자리가 하나인지라 다른 닭들도 들어가 알을 낳아 무정란과 유정란이 섞일까 연필로 표시를 해서 넣어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매일 같이 알이 섞인데다가 연필자국이 지워져서 나중엔 유정란을 깨서 계란후라이를 하는 소동도 일어났다.

 

정말 꼼짝없이 21일 동안 연명할 정도로만 먹이를 먹고 물을 마시고 배설을 하며 하루 종일 알을 품고 알자리를 지키는 깜돌이를 보면서 우리집 식구는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남편은 내가 임신했을 때도 입덧이 심해지자 아이 낳지 말자고 하더니만 닭에게도 그만 품고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그만큼 옆에서 보기가 안쓰러웠다. 저렇게까지 먹지도 마시지고 싸지도 않고 알자리를 지킬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하루에 딱 한번 잠깐 나와 배설을 하고, 목만 축이고 먹이를 먹는 틈에 다른 닭들은 얼른 들어가 알을 낳고 나온다. 그나마 다른 닭이 알자리를 차지하는 동안이 깜돌이가 숨돌리며 쉴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어미닭을 온전히 신뢰하며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 닭과 병아리
어미닭을 온전히 신뢰하며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 닭과 병아리

 

살이 점점 말라가는걸 보는 가족 모두 병아리가 제대로 태어나기는 할까 조마조마하며 예정일을 기다렸다. 예정일 하루 전날 밤부터 한알씩 깨어나기 시작한 병아리는 17일까지 모두 7마리가 태어났다. 중간에 유정란과 무정란이 바뀌어 계란후라이가 되어 버린 알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 중 한 마리를 또 잃었다.

 

처음 병아리를 받아본 나는 어미가 다 알아서 한다는 말을 들어서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그냥 지켜만 봐주고 있었다. 하지만 태어난 병아리가 4마리가 되자 엄마는 갑자기 정신이 없어졌다. 태어난 애들 돌보랴, 알 품으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다. 나는 잠시 먼저 태어난 병아리 4마리를 분리시켜 방으로 들였다. 그동안 먹이를 주며 돌보다가 나머지 병아리가 다 태어나고 나서 합사해주었다. 하지만 결국 그 때 태어나면서 엄마와 형제들에게 밟혔던 병아리는 잘 먹지를 못하더니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죽고 말았다.

 

병아리는 태어나자마자 먹어야하기 때문에 꺼내서 바로 먹이를 줬어야 한다고 한다. 닭장이 평지였으면 애들이 알아서 둥지 밖으로 다니며 아무 거라도 먹으려 흩어지고 어미도 자연스레 알을 가만히 잘 품을 수 있었을 텐데 주인의 무지로 인해 잃은 아기 병아리가 아쉬웠다. 내년엔 알자리를 좀 더 잘 잡아주어야지 하며 배움을 얻었다.

병아리에게 먹는 법을 가르치는 어미닭
병아리에게 먹는 법을 가르치는 어미닭

그렇게 힘들게 알을 품으며 정성을 보여준 깜돌이의 모성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태어난 이후가 더 눈물이 나고 경이롭다. 21일 동안 살이 쪽쪽 빠지면서 알을 품었던 깜돌이는 병아리가 태어나고 나서도 잘 먹지를 못했다. 이제는 맘껏 먹으라고 나는 먹이를 잔뜩 갖다 주고 제일 좋아하는 지네를 잡아다 주며 즐겨먹는 과일을 갖다 바쳤지만 깜돌이는 먹지 않았다. 그 모든 먹이를 잘게 부수어 병아리들에게 주는 것이 아닌가!

 

마당에 먹이를 뿌려주면 안전한 지 정도만 먹어보고 잘게 부수어 새끼들을 부른다. 여치를 잡아주어도 한번 쪼아 기절만 시켜서 병아리에게 잡는 법을 가르친다. 땅을 파서 벌레를 찾는 방법도 가르치고 청계라 그런지 나무에 오르는 법도 가르친다.

나뭇가지에 나란히 앉아 쉬는 법, 피하는 법을 배운 병아리들
나뭇가지에 나란히 앉아 쉬는 법, 피하는 법을 배운 병아리들

 

2주가 지난 요즘, 이제는 깃털도 나고 어미보다 먼저 걸음으로 먹이를 찾는 애들이 되고나니, 이제야 깜돌이가 조금씩 더 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병아리 먼저 먹이고 나중에 자기 배를 채운다.

2주만에 어느새 중병아리가 되었지만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병아리는 어미닭을 떠나지 않는다.
2주만에 어느새 중병아리가 되었지만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병아리는 어미닭을 떠나지 않는다.

나도 두 아이를 뱃속에서 품으로 낳아 키워본 경험이 없었다면 초보맘 깜돌이의 고충을 이렇게까지 공감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심지어 자기 알도 아닌 입양한 알들을 어쩜 이리 살뜰히 보살피고 키워내는 창조주가 허락한 모성이라는 섭리가 더없이 가치 있고 귀하게 여겨졌다.

 

여기저기 아동학대와 친부의 성폭행 사건이 뉴스의 면면을 채우는 요즘. 인간은 모성을 닭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찬바람 부는 겨울이 와도 우리 병아리들은 끄떡없을 것이다. 어미닭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미닭이 가르쳐준 가르침 덕뿐이리라. 나는 오늘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엄마인가 곰곰이 생각하며 겸손해 지는 8월의 마지막 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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