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편견’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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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편견’이 되지 않도록
  • 송수연
  • 승인 2020.11.08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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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연의 인문학 산책]
-그림책 『이파라파 냐무냐무』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듣거나 볼 때,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가? 더 쉽게 말하자면, 당신은 두려움을 부정적 감정으로 보는가, 아니면 긍정적 감정으로 보는가. 보통 우리는 두려움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위협이나 위험을 느껴 마음이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느낌”이 두려움의 사전적 정의인데, 저 안에서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해 줄 만한 단어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위협, 위험, 불안함, 조심스러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설명하는 단어들은 온통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두려움은 정말 부정적이고 나쁘기만 한 것일까? 우리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그렇듯,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두려움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순위가 높은 감정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위협을 미리 감지하여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 두려움에 민감한 개체가 생존할 확률이 높았음을 보여주는 인류의 역사는 두려움의 긍정성을 보여준다. 그러니 핵심은 두려움이라는 감정 자체의 선악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일 것이다.

이지은의 그림책『이파라파 냐무냐무』(사계절 2020)는 두려움과 편견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담고 있다. 커버를 우선 보면, 검은 색의 커다란 동물이 눈에 띈다. 맛있는 것을 앞에 둔 것처럼 혀를 날름,하고 있는 녀석의 앞에는 코코아처럼 보이는 잔에 하얀 무엇이 떠있고, 녀석의 이마와 뺨에도 하얀 것들이 붙어 있다. 그런데 표지만으로는 검은 녀석도 하얀 아이들도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이파라파 냐무냐무”라는 제목도 마찬가지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그림책 안으로 들어가면, 하얀 녀석들의 정체가 마시멜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는 초코파이 속에 들어있는 하얀 것-으로 더 잘 알려진, 바로 그 마시멜로다. ‘마시멜롱 마을’에 사는 마시멜롱들의 하루하루는 행복하다. 하늘에는 토끼 구름이 떠있고, 합심하여 열매를 따먹는 마시멜롱들은 느~긋하다. 그림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시멜롱들의 여유와 행복함에 절로 미소 짓게 된다.

이들의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털숭숭이’ 때문에 위협을 받는다. 언덕 저쪽에서 “이파라파 냐뮤냐뮤”를 외치며 나타난 털숭숭이. 마시멜롱 마을은 혼돈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알아들을 수 없는 ‘냐뮤냐뮤’는 “우리 마시멜롱들을 냠냠 맛있게 먹겠다는 말이야!”로 해석되고, 마시멜롱들의 상상 속에서 털숭숭이는 점차 무시무한 괴물이 되어간다. 그림책은 낯선 자 혹은 이방인(Stranger)이 단박에 위협자로 전화하는 모습을 재미있고 실감나게 보여준다.

 

 

마시멜롱들은 이러저러한 털숭숭이 제거 작전을 세우지만, 그것들은 번번이 실패한다. 여기까지는 우리네 삶과 흡사하다. 우리도 수많은 이방인들을 찾아내, 그들에게 갖은 죄목을 씌우지 않았던가. 슬프게도 우리의 마녀사냥은 지금도 진행 중인데 비해, 그림책은 아주 그럴듯한 해결책을 찾아낸다. 서사 속 반전은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자신들의 상상과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 작은 마시멜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작은 마시멜롱이 타박타박, 털숭숭이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독자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아름답고 유쾌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그림책을 일로 만나게 되었다. 책을 읽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원하건 원하지 않건 많은 책들을 읽게 되는데 이 책은 어떤 정보도 없이 만났지만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책들 중 가장 큰 재미와 위로, 깨달음을 주었다. 내 머리맡에는 지금도 이 책이 있다. 내 안에 불쑥불쑥,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이 책을 펼친다. 그러면 그림책 속 털숭숭이와 마시멜롱들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내 편도체를, 내 두려움을 다독여준다. 그리고 속삭인다. ‘아니야, 천천히 다시 생각해봐. 지금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어.’라고.

그렇다. 우리의 두려움은 보통 무지에서 시작된다. 잘 모르는 상대(것)를 향한 무지가 두려움으로, 그것이 적개심과 분노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리고 이 분노에 적절한 기름이 부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모르겠으면 그냥 찾아가서 물어보면 되는데, 왜 우리들은 그걸 못하는지….

지나친 스포일러에 창작자인 작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같아서 책에 대한 것을 더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작은 마시멜롱이 타박타박 걸어가 만난 진실은 “이파라파 나뮤나뮤”가 “이빨아파 너무너무”라는 사실. 그렇다. '냐무냐무‘는 냠냠이 아니고, ‘너무너무’였다. 해결책은 여기서 나온다. 제대로 들으니, 오해가 이해로 바뀌고 전쟁 대신 평화가 온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두려움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언제나 두려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다. 잘 몰라서 시작된 것인데,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대신 잘못된 방향으로 상상하고 덧붙여서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것. 그러다보면 두려움은 분노가 되고, 편견으로 굳어진다. 그리고 편견으로 굳어진 두려움은 종종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그러니 이제 두려움이 찾아오면 먼저 부드럽게 물어보자. 누구인지, 왜 찾아왔는지.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해 소통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귀를 막고 눈을 감지 않는다면, 반드시 들릴 것이다. “이빨아파, 너무너무”라는 소리가. 두려움이 편견이 되지 않아야, 편견이 칼춤을 추는 사회가 아니어야 우리의 이웃도 우리도 안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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