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산업선교회 설립, 노동자 인권 일깨운 오글 목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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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산업선교회 설립, 노동자 인권 일깨운 오글 목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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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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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타계한 조지 오글 목사
지난 15일 타계한 조지 오글 목사

1961년 미국 선교사로 인천에 정착해 산업선교회를 개척하며 치열하게 노동자 인권운동을 펼쳐온 조지 오글 목사가 지난 15일 91세의 일기로 미국 콜로라도에서 타계했다.

1929년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오글 목사는 1954년 목사가 되고 나서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3년 뒤 미국으로 돌아간 오글 목사는 61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인천으로 파송됐다. 1962년 동구 화수동 초가집에 인천산업선교회를 차린 그는 길거리 전도로 교회에 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교회에 나올 틈도 없이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는 노동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과 같이 아파하고자 했다.

그는 산업화 시대를 맞아 전국에서 인천 공단으로 몰려드는 젊은 여성들에 주목했다. 그리고 산업선교회를 하려면 공장에 먼저 들어가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1966년 조승혁 목사와 시흥 달월교회 조화순 목사를 찾았고, 이해 조 목사는 동구 만석동 동일방직에 취업해 6개월 노동을 체험한다. 조승혁, 조화순 등은 인천산업선교회 1,2대 총무로 공장 취업활동과 함께 노동자들과 소그룹활동을 펼치며 노동자교회 개척했다.

오글 목사는 이로 인해 정권의 감시 대상이 됐으며, 결국 1974년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이들을 위한 공개기도회를 열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17시간 동안 심문을 받는 등 고초를 겪다 그해 12월 추방됐다.

그는 한국의 민주화 이후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됐으며, 올해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는 정부로부터 '민주주의 발전 유공 포상' 국민포장을 받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오글 목사는 외국인이자 종교인으로서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을 해외에 알릴 수 있었던 중요한 인물이었다.”며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목사의 업적과 뜻을 정리하고 기릴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 국민포장 받은 '인천'의 오글 목사와 시노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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