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등을 지형지물로 취급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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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등을 지형지물로 취급하다니
  • 박병상
  • 승인 2020.11.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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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
ⓒ홍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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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서 해안으로 완만한 산록을 펼치는 제주도는 369개의 오름과 더불어 곶자왈이 있기에 아름다운 명성을 천하에 자랑할 수 있는 지역이다. 아스피테 화산이 중산간 지대에 온화한 수분을 풍부하게 배출하면서 아한대에서 아열대를 아우르는 동식물이 곶자왈 주변을 다채롭게 머무르기에 바람과 돌이 많은 제주도에 사람도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골프장과 생수공장마다 다량의 물을 중산간에서 퍼내면서 곶자왈은 지금 위기에 빠졌다.

아프리카 사파리는 돈 많은 여행객에게 인기가 높다.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 시간에 단골로 등장하는 맹수들과 다양한 초식동물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지만 거리가 멀어서 여행자는 적지 않은 비용을 감수한다. 곶자왈에 기린과 하마, 그리고 사자와 표범 같은 동물을 풀어놓으면 돈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까? 제주도 곶자왈은 아프리카의 사파리 생태계와 전혀 다르다. 사파리에 터전을 잡는 동식물의 생태환경을 결코 유지할 수 없다. 돈과 에너지로 억지 조성한 공간에 엉거주춤 머무르는 동물을 보려고 거액을 지불할 바보는 드물 것이다.

제주도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선흘 곶자왈’에 골프장과 아프리카 동물 부려놓는 ‘사파리월드’를 만들겠다 고집 피우는 자본이 있다고 한다. 그런 자본을 은근히 옹호하는 고위 공직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는 소식이 들린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데, 비슷한 형국은 인천에서 벌어진다. 세계에 유례없는 풀등이 해군의 사격장으로 전락할 위기에 몰렸다는 게 아닌가. 막대한 해사채취가 지속되면서 이작도에서 덕적도 인근까지 펼쳐지던 풀등은 점점 초라해지는 상황인데, 보전대책은 커녕 사격장이라니. 풀등이 사격훈련을 위한 한낱 지형지물이란 말인가?

대이작도 주변 풀등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해양생물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군사 목적을 위해 필요할 때 예외로 정한 조항을 빌어 해군은 해마다 두 차례 정례적으로 훈련하는 모양이다. 군 당국에 묻고 싶다. 풀등이 예외 조항을 꼭 적용해 군사훈련을 해야 할 지형지물에 불과한가? 인천을 중심으로 서해안 어패류의 주요 산란터이자 터전이다. 그러므로 보전해야 옳지만, 풀등 경관 가치가 추종을 불허한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포말이 일어나더니 점으로 모습이 드러난 모래는 느닷없이 선으로 길어지면서 면으로 즉각 확장되는 신비를 하루 두 차례 연출한다. 오직 인천에서 체험할 수 있다. 사격장 적지인가?

우리 교과서에 등장하는 미 애리조나주의 그랜드캐니언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깊고 드넓은 협곡은 다가서기 두렵게 만들어, 준비 없는 관광객은 안전 공간에 잠시 머물다 발길을 돌려야 한다. 풀등은 다르다. 썰어서 나가는 바닷물 뒤에 드러나는 모래사장은 남녀노소 누구나 받으며 발등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바닷물이 밀며 들어오기 전까지 동심에 젖어 몸과 마음을 내맡기는 관광객은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을 추스를 수 없다. 그런 곳에 표적을 내걸어 총을 쏘겠다고? 예외 조항을 들먹이며 해마다 두 차례 훈련을 해왔다고? 대안이 없다고? 우리 군의 한심한 문화의식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4대강 사업으로 모래 유입이 원활치 않은 현실에서 해사채취는 풀등에 치명적이다. 풀등의 생태적 경관적 가치를 인식하는 인천을 비롯해 경기도와 충청도 당국은 풀등 보전을 위한 조처를 확실하게 마련해야 한다. 국토의 해안방어에 노력하는 군 당국은 풀등을 지키며 훈련해야 옳다. 우리 교과서는 풀등의 가치를 여전히 외면한다. 안타깝다. 인천시는 지역 문화예술인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풀등의 가치를 알릴 의무가 있다. 그를 위해 해사는 보전되어야 하며 강원도와 경기도 산악지대의 화강암 모래가 풀등에 모여야 한다. 한강 대형 보와 댐의 구조를 변경할 필요가 크다는 뜻이다.

 

ⓒ홍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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