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 오아시스, 서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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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 오아시스, 서담재
  • 강영희
  • 승인 2020.12.01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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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의 문화 오아시스 이야기]
(16) 책과 이야기가 있는 그 집 이야기

 

헉헉헉... ‘겨우 이런 언덕길에서 헉헉대다니... ''  의도치 않게 코로나19로 '확~찐자' 대열에 합류한 후 부쩍 무거워진 몸에 무릎도 아프기 시작했는데 겨우 자유공원 올라가는 길에 차오르는 숨소리를 들으니 살짝 짜증이 났다.

좀 일찍 나왔다고, 아는 공간이라고 집중하지 않고, 낯설어진 골목에서 셔터를 누르다가 성공회교회당 앞을 세 번째 보고서 숨을 가다듬으니 골목의 계단도 좀 변했고, 머릿속 공간과 가고자 했던 공간이 다르다는 걸 알아채니 조금 더 올라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가본 곳인 줄 알았는데 처음이었다. 카페 소호는 알았지만 그 옆 언덕을 더 올라 들어선 골목안 집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이런이런...

 

 

, 내가 처음 오는 곳이구나!’

서담재.

 

지난 일요일 다행인문학강좌5’에 오셔서 인사를 나눈 서담재 이애정 관장을 만나기로 한 목요일 아침은 차갑지만 빛이 좋은 가을이었다. 마침내 발견한 빨간 벽돌에 빨간 간판, 멋진 계단을 몇 개 오르니 이야기가 담긴 배너들이 인사를 하고, 발길을 이끄는 돌을 따라가니 멋진 창들이 햇살을 누리고 있었다.

그렇게 정원을 가로지르니 그 발걸음이 들렸는지 주인장이 문을 열고 맞아주었다. 숨을 고르며 인사를 하고 주인장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다녀갔던 곳인 양 익숙한 이 적산가옥. 다다미방 두 개를 터서 만들었다는 거실과 창고를 비우고 만들었다는 중정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장의 소개를 받으며 햇살이 앉은 작고 아름다운 공간들은 모두 정원을 향해 창이 나 있었고, 그 공간을 잇는 귀여운 복도와 멋진 문은 집을 다양하게 잇고 있었다.

온라인에서 다양한 전시를 통해 보았던 것이 너무 익숙해서 와본 곳이라고 착각했었 던 곳이다. 이 곳은 식민지가 되기 전 인천에 들어와 해방 때까지 있었던 부유한 일본인 고타니 마스지로에 의해서 1935년 지어져 경성전기 인천지사장의 사택으로 쓰였다고 한다.

인천상륙작전 와중에 거의 손상되지 않고 살아남은 몇 채 되지 않는 집이었고, 1951년부터 개인이 사용하다가 마침 아파트가 아닌 집을 찾고 있던 이애정 관장 내외와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적산가옥의 외양을 최대한 살리고, 내부는 사용하기에 좋게 새단장을 해 책과 이야기가 있는 집이란 뜻으로 서담재라 짓고 개관했다고 한다.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데 혼자 누리기가 아까웠어요!”

그야말로 .. 심쿵! 그의 말에 새삼 더 설레어버렸다. 거실과 중정만 독서모임(서담독서모임)과 전시에 활용하고 내부는 살림집으로 썼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 멋진 집의 시간과 공간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살림집을 옮겼다고 한다.

살림집을 옮기면서 2017-18년 인천문화재단의 생활문화동아리 지원 사업인 동네방네 사업을 통해 독서회 모임 뿐 아니라 보다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과 전시, 공연, 강좌 등을 진행했다.

 

김정미 작가와 함깨한 2019년 프로그램@서담재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9년에는 천개의 문화 오아시스를 통해 서담인문강독회 프로그램으로 깊이 있는 인문학 공부를 했고, ‘문화로 채우는 행복 충전소프로그램으로 나만의 책 만들기’, ‘맥주 인문학’, ‘규방공예를 진행했는데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2020화요문화힐링공방_수제맥주교실@서담재
2020화요문화힐링공방_그림공방@서담재
2020화요문화힐링공방_도예공방@서담재
2020화요문화힐링공방_원예공방@서담재
2020화요문화힐링공방_음악이 있는 그림토크@서담재
인문학강연@서담재

 

언덕 위 공간에 사람들이 자주 오고가요!”

오아시스를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니 이 높은 언덕까지 사람들이 계속 오고 가는 게 제일 좋더란다. 할 일도 많고, 몸도 피곤하지만 이 멋진 공간을 활용해 해보고 싶었던 프로그램들을 풍성하게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들러주니 좋고, 공간을 좀 더 알릴 수 있고, 이 공간에서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해 나가는 게 참 좋더란다.

지난 해 좋은 결과물이 있었지만 너무 소수의 인원만 누리는 것 같아 다양하게 마련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고 한다.

공방프로그램을 통해 만든 공예품도 전시하고, 맥주인문학을 통해 만든 맥주를 나누며 음악회도 열고자 했던 네트워크 프로그램이 남았는데, 코로나가 심해져 반환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하는 그에게 여전히 열정과 애정이 넘쳤다.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기도 한 그에게도 마지막 공식 질문을 던졌다.

천개의 문화 오아시스를 하며 시정부나 행정, 비슷한 활동을 하는 오아시스 운영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참여하시는 분들이 천개의 문화 오아시스를 몰라요. 참여 신청하실 때 다 설명을 해줘도 말이죠. 홍보가 너무 안되서 아쉬워요. 이런 활동을 운영하는 공간과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해주면 좋을 텐데요..

-또 정부를 대신해 시민들에게 공간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거잖아요. 상당히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최소한의 활동비나 공간 운영비는 좀 지원이 돼야 하지 않아요? 우리가 이런 거 하면서 돈 벌겠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지원하는 단체에선 뭐 하는 거예요? 작년도 올 해도 한 번도 안 왔어요. 컨설팅하고 도와준다는데 한 번 오지를 않으니 원래 그런 건지 어떤지 알 수가 없네요. 현장을 다니면서 필요한 정보도 나눠주고, 정산이나 이런 것도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참여자 분들도 공짜!무료!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귀한 세금 들여서 하는 사업에 책임감이 좀 있었으면 해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하는 마음은 좀 아닌 거 같아요. 신청하고 안 해버리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뺏는 건데 .. 이어지는 프로그램이라 다른 사람을 추가 모집할 수도 없거든요.

그래도 사람들이 이 언덕까지 올라와 오고가는 게, 이 공간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해볼 수 있다는 건 역시 좋아요. 힘들지만 ^^

알고나니 쉬워진 골목길.@강
서담재 담 넘어로 보이는 성공회교회를 기억하지 못했다면 나는 더 엉뚱한 곳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강

 

두서없이 수다처럼 시작된 오래된 동네와 오래된 집의 이야기, 그 집을 새롭게 단장하고 그 안에 담아내는 열정과 애정, 우리는 무엇에 이끌렸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내려오니 카페 소호, 성공회교회, 그리고 아까 헤맸던 골목이 한 눈에 들어왔다. 웬만하면 갔던 길은 다시 가지 않는데 내리막길로 아침의 그 길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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