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해야 할 점과 고려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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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해야 할 점과 고려된 사람
  • 김선
  • 승인 2020.12.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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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㉜셀레스트의 증언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Tout est vrai et rien n’est vrai !

모든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인 것은 하나도 없다 !

 

  뫼르소의 변호사는 호기가 등등해져 배심원들이 문지가가 말한 점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심원들이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일 때 기대할 수 있는 고려점이다. 고려 할 점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듯 검사가 머리 위로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배심원들은 문지기의 말을 고려하실 것이나 아무 관계도 없는 남이야 커피를 권할 수 있지만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아들로서는 모름지기 그것을 사양해야 할 것이었다고 결론을 내리실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배심원들이 무엇을 더 고려할지 궁금하다.

 

Lifeplaza(2019.5.13)
Lifeplaza(2019.5.13)

 

한 인간을 판단할 때 불충분한 시간이나 정보로 인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거나, 체계적이면서 합리적인 판단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빠르게 사용할 수 있게 보다 용이하게 구성된 간편 추론의 방법을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하는데 배심원들이 어림짐작으로 뫼르소를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문지기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토마 페레스의 차례가 되었을 때 서기가 그를 증인대까지 부축해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페레스는 어머니를 특별히 잘 알고 있었고 뫼르소를 한 번 만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 번 만났지만 뫼르소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런 건지 그는 그날 뫼르소가 어떻게 행동했는가 하는 질문에 자신은 그날 너무 슬퍼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질문을 회피하는 지혜로운 대답이다. 자신은 너무 슬퍼서 기절까지 했기 때문에 뫼르소를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한 발 더 나가 모른다는 자신의 답변에 쐐기를 박는다. 차석 검사는 뫼르소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검사의 의도를 간파하는 센스는 부족해 보인다. 페레스는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검사가 배심원들께서 이 점을 고려하실 거라고 말했다. 뫼르소를 위해서 배심원들은 그들이 고려할 또 다른 점들을 고려하길 바랄 뿐이다.

  변호사는 화를 냈다. 뫼르소에 대한 변론의 소임을 아직은 다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뫼르소가 보기에 과장되다 싶을 만큼 목청을 돋워서 페레스에게 뫼르소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중요한 지점이 눈물이라는 요소가 돼버렸기에 밀리지 않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다. 중요한 질문에 신중하게 답해야 하는 페레스는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방청객들이 웃었다. 웃음을 잠재울 묵직한 진리가 필요한 순간이다. 변호사는 한쪽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재판의 모습이 이런 것이라며 모든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인 것은 하나도 없다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무엇이 사실인지가 중요한 법정에서 사실인데 사실이 아닌 아이러니한 현실을 변호사는 토로한다. 그에 반해 검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기록문서의 제목을 연필로 찔러 대고 있었다. 여유가 있어 보인다.

  오 분 동안 휴식하는 사이에 변호사는 뫼르소에게 모든 게 잘되어 간다고 말했다. 진심인지 형식적인 말인지 구분이 안간다. 휴식이 끝나자 피고 측에서 요청한 셀레스트의 진술이 있었다. 피고 측이란 바로 뫼르소였다. 이미 뫼르소는 피의자인 것이다. 셀레스트는 때때로 뫼르소에게 시선을 던지며 두 손으로 모자를 돌리고 있었다. 시선을 던지는 것은 분명 뫼르소에게 긍정적인 신호인 것이다. 그는 새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은 가끔 일요일에 뫼르소와 함께 경마 구경 갈 때 입던 것이었다. 뫼르소가 그의 손님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말하며 친구이기도 했다고 대답했다. 손님인데 친구이기까지 했으니 셀레스트에게 뫼르소는 의미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뫼르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사나이라고 말했다. 사나이가 무슨 뜻이냐는 물음에 누구나 다 안다고 말했다. 누구에 해당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뫼르소를 사나이라고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셀레스트는 진짜 사나이다. 뫼르소가 내성적인 성격인 것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무의미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내성적인 성격과 무의미한 말을 하지 않는 것 사이의 연관성이 있는가? 셀레스트는 배심원들에게 되레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뫼르소가 식비는 어김없이 치렀느냐고 차석 검사가 묻자 셀레스트는 웃고 나서 그것은 둘만의 사사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법정에서 검사의 질문에 답변 여부를 검사에게 가르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시 뫼르소의 범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증언대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뭔가 할 말을 미리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그건 하나의 불운이라고 말하며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사건으로 종합평가를 내렸다. 그러고도 계속해서 불운이라고 말하고 또 말하려고 하자 재판장은 그만하면 됐다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셀레스트는 좀 머쓱해졌다. 그러나 그는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재판장은 이야기를 간단히 하도록 요청했다. 셀레스트는 또다시 그것은 하나의 불운이라고 되풀이 했다. 뫼르소의 법죄에 대한 강력한 이미지를 법정 안 모두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재판장은 그러한 불운을 재판하는 것이라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지혜와 성의를 다했으나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는 듯이 셀레스트는 뫼르소에게 고개를 돌렸다. 뫼르소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모습이다. 그 모습에서 눈은 번쩍이고 입술은 떨리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 뫼르소를 위해 자기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뫼르소에게 묻는 듯 했다. 뫼르소는 아무런 말도 몸짓도 하지 않았으나 한 인간을 껴안고 싶은 마음이 우러난 것은 그때가 생전 처음이었다. 인간 일반에게 담담했던 뫼르소가 벅찬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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