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걸음마 연습 - 이충하
황혼의 걸음마 연습
- 이충하
너와 나 손잡고 오르는 절벽에
허전해진 종아리가
보리 대처럼 속살이 보타지네
지난여름 다리가 휘청 넘어져 허리뼈 부러지니
걸음걸이 조심조심
첫돌 지난 아이 되어 걸음마를 다시 배운다
허리야! 다리야! 황혼 길 너와 나는 길동무
미운정도 곱게 보는 한 몸인데
이왕에 걸음마를 새로 배울 바에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무릎도 쭉쭉 펴서
근위병 의장대처럼 멋지게 걸어보자
오늘도 황혼길 걸음마 연습에
사관생도 제식훈련 똑바로 걸어보고
줄눈 따라 패션쇼 일자 걸음 중심 잡고
곡예사 줄타기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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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단풍은 굽이굽이 살아온 노년의 화자를 은유합니다. 봄에는 파랗게 벽을 따라 기어오르는 힘에 생기가 돋았는데 어느새 황혼길에 접어들어 “허전해진 종아리가/보리대처럼 속살이 보타”집니다. 담쟁이도 날씨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이파리가 흔들리거나 폭풍우에 줄기가 휘어지기도 합니다.
지난여름 휘청 넘어져 허리뼈가 부러진 화자는 첫돌 지난 아이처럼 걸음마를 다시 배우고, 줄기와 잎새가 처진 담쟁이 역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벽을 기어오릅니다.
“허리야! 다리야! 황혼길 너와 나는 길동무 / 미운 정도 곱게 보는 한 몸”이라고 하면서 시 속 화자는 자신의 부러진 다리와 허리를 다독입니다. 생이 꺾일 때마다 좌절하지 않는 화자의, 삶에 대한 태도는 언제든지 걸음마를 새롭게 배우는 담쟁이의 속성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물든 담쟁이가 사생관도 제식훈련처럼 똑바로 걸어가는 길이 보입니다. 줄눈 따라 패션쇼 일자 걸음으로 걸어가는 화자의 황혼길처럼 아름답습니다.
시인 정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