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해의 고통을 영광으로 바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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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해의 고통을 영광으로 바꾸며!
  • 허회숙
  • 승인 2021.01.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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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허회숙 / 전 인일여고 교장, 전 인일여고 총동창회장
1994년 인일여고 총동창회
1994년 인일여고 1회 졸업생 사제모임

 

2020년 1월 2일 나는 인천in에 실린 독자칼럼의 서두를 ‘고통과 영광은 세트 메뉴가 아니다. 신이 영광을 미리 안배해 놓고 고통을 주는 게 아니라 고통 후에 나락으로 떨어질지, 더 높이 치솟을 지를 고통 받는 자의 결단에 맡긴다는 거다. 그 고통이 걸림돌이 될지, 디딤돌이 될지는 돌을 마주한 자에게 달려 있다.’(동아일보 2019.12.07 이정향 컬럼 「고통과 영광」에서 발췌)로 시작하여 ‘나에게 고통과 영광을 안겨준 2019년이 지나고 이제 2020년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2020년에도 고통은 있겠지만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이 고통을 영광으로 바꾸는 한 해를 가꾸어 가겠노라고 다짐해 본다’고 끝을 맺었다.

이제 2021년 1월 1일 신축년 새 아침이 밝았다. 나는 작년 새해 벽두의 내 소망이 나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느낀다. 작년 한 해는 중국의 우한에서 시작된 폐렴이 전 세계를 휩쓸어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우리에게 겪게 했다. 많은 아픔과 고통이, 좌절과 분노가 따른 한 해였다. 그러나 한 해를 결산하는 12월에 들어서면서 작년 한 해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니 오히려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용기의 싹을 보고 잘 키워낸 한 해였음을 발견한다. 코로나의 광풍 속에서도 일년 동안 내가 속해있는 조그만 시 쓰기 동아리활동을 열정적으로 잘 해내 평균 75세라는 고연령층 회원들에게 보람과 기쁨을 안겨주고 건강을 지켜온 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가장 큰 영광이었다.

또한 12월 중순이 지나면서 매일 매일이 감동과 감사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나는 1964년 인일여고가 신설되면서 제1회 입학생이 되었다. 금년 4월이 되면 인일여고 개교 60주년이 된다. 작년 11월 개교 60주년 기념 모금운동을 시작하여 기수별로 2천만원씩을 내달라는 총동창회의 결정을 전해 듣는 내 마음은 무거웠다. 우리 1기는 모든 면에서 힘이 빠진 76세 할머니들이다. 졸업생 171명 중 연락이 가능한 친구가 50여명인데 1기 동문 모임을 가진 지도 10여년 전이다. 인일 동창회가 생긴 이래 가난한 집 맏이가 된 죄로 크고 작은 학교 행사에 솔선수범해 온 것이 우리 1기였다. 그러나 6년 전 1기의 졸업 50주년을 기념하여 천만원을 모금하여 학교 발전기금으로 기탁하면서 친구들에게 이제 마지막 봉사를 했다고 발표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2천만원을 향한 모금을 시작해야 한다니,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내 옆에서 나를 가장 크게 돕던 두 친구가 이번 모금은 무리라고, 자신들도 더 이상 돕지 못하겠노라고 해 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순간 마음을 비우고 가장 낮은 자세에서 친구들 곁에 서서 호소해 보리라 결심했다. 연락망을 재정비해 45명 친구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단톡방을 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단톡방에서 그동안 나누지 못한 옛정을 다시 일깨우고, 추억의 앨범을 넘기면서 감격스러워 했다. 한 달이 지난 12월 16일까지는 모금 사실도 전체 친구들에게 밝히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며 보내다가 드디어 17일 친구들에게 공지하고 12월 31일에 모금이 마감 된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랬는데 서서히 기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마감 시간에 보니 4,370만원의 거금이 모여 목표액의 두 배를 훌쩍 넘기는 경사스러운 일이 생겼다.

처음에 돕기가 어렵다고 말했던 두 친구가 앞장서서 친구들에게 전화로 호소를 해 준 덕도 컸고, 이제까지 조용히 동문 모임에도 나오지 않던 한 친구가 자기가 인일 다닐 때 어려워서 등록금을 못 냈을 때 학교에서 면제해 준 고마움을 갚아야 한다고 선뜻 400만원을 기탁하여 감동의 불씨를 지핀 영향도 컸다. 이번에 천만원을 기탁한 한 친구는 졸업 30주년에도 천만원을, 내가 인천여중 교장이 되자 모교인 인천여중에도 천만원을, 그리고 이번 모금에도 선뜻 천만원을 내 주었다. 그 친구는 학교 다닐 때 빛나는 존재로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받았던 친구도 아니고, 소위 명문대 나와 번쩍거리는 명함을 자랑하는 인사도 아니고, 명품에 골프 치며 해외 나들이 즐기는 유한마담도 아닌 소박하고 진실한 인간일 뿐이었다. 30년 전에 어떻게 천만원을 냈느냐는 우리들 질문에 “그냥 아침에 남편에게 나 일 저질렀어. 인일 동창회에 천만원 냈어”라는 말로 끝냈다고 하여 우리 모두를 놀라움에 젖게 만들었다.

이번 모금을 끝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우리는 교육을 통해 어떤 인간을 길러내야 하는가’에 대하여 한번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적은 액수일수도 있지만 이 어려운 시절에 오로지 인일 사랑이라는 한 목표로 마음을 모은 결과라는 데서 기적과 희망을 느낀다.

나는 신축년이 시작되는 이 아침에 다시 한번 작년의 다짐을 되풀이 한다.

나에게 고통과 영광을 안겨준 2020년이 지나고 이제 2021년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2021년에도 고통은 있겠지만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이 고통을 영광으로 바꾸는 한 해를 가꾸어 가겠노라고!

 

졸업 30주년 행사 후 올림포스호텔에서
월미도에서 1회 졸업생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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