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를 끊임없이 깨부수는 변수
상태바
상수를 끊임없이 깨부수는 변수
  • 정민나
  • 승인 2021.02.18 0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민나의 시 마을] 홍콩 정원 - 정우신
- 인간 같은 AI 인가? 혹은 AI 같은 인간인가?
AI 인간

 

홍콩 정원

                                      - 정우신

 

끈긴 꿈으로부터

재생되는 살점

      ✳

날개를 가지런히 접어놓고

결정하지 못했지

육교보단 모텔이

모텔보단 강물이 낫겠지

거기 예술가

너를 뭐라 불러야 하지?

장화 속 거머리들, 대형 비닐봉지, 라벤더 비누

중력을 두려워 마

시간과 속도의 문제일 뿐이야

음악이 잊게 해줄 거야

네가 피어난 자리

나는 약간 휘청거렸다

살을 만져봤다

분장을 하고

객실에 얌전히 있었는데

따뜻한 나라로 이동 중이었는데

진통제, 염주, 플렛슈즈, 기차표, 미술관 입장권

나를 찾는 데 도움이 될까요?

살아버렸습니다

빠르게 다 살아버렸어요

해부하고 마시는 것은 나의 취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한 날이 있어요

옷깃을 잡거나 사과를 떨어뜨려도

나는 알 수가 없는데

이슈가 필요한데

크리스마스트리와 폐전선

가죽표지 메모장과 보온병

좋은 꿈이 될까요?

네가 보고 싶다면

사람을 데리고 와요

 

AI

 

 

정우신의 『홍콩정원』(『현대문학 2021)은 2016년 첫 시집 『비금속 소년』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는 1번에서 6번까지 번호를 단 연작시 「러닝머신」과 무당, 비구니, 청소부, 가축, 소년, 연인, 예술가에 해당되는 리플리컨트(기계 인간)을 소재로 한 연작시, 그리고 그 외 ‘네온사인’이나 ‘액화질소탱크’처럼 ‘리플리컨트’의 부제(副題)를 달지 않았지만 리플리컨트의 목소리로 전하는 시. 이렇게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리플리컨트는 미국의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 1982」에서도 나왔던 AI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스콧 감독이 인간과 기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루었다면 정우신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기계 인간의 입장에서 삶과 사랑 그리고 비애나 우울을 다루고 있다. 인간이면서 인간이지 못하고 AI 이면서 AI 스럽지 못한 처지는 불안과 슬픔을 동반한다.

「블레이드 러너1982」에 등장하는 렉서스6 리플리컨트들은 애초에 수명이 3년으로 제한되어 탄생하였다. 인간의 기술에 대한 제안은 ‘기술의 역습’에 대비하기 위한 이성적 인간의 고심에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기계와 사람의 인간성이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의 어려운 일을 대신하면서 그 경험의 데이터가 쌓이게 된 기계인간들은 점차 사랑이나 슬픔까지도 느낄 수 있게 진화되는데 그것은 지구 과학자들이 제일 경계하는 일이다. 영화에서 기계인간들이 자신의 수명을 늘려달라고 반란을 일으키자 그에 맞서는 인간들은 그럴 수 없다고 답하며 그들을 제거하는 수순을 밟는다. 이때 냉혹해진 인간들은 오히려 기계 인간보다 더 비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기술의 기하급수적인 성장 속도를 예견한 학자 중 1년 6개월에 컴퓨터의 성능이 2배씩 성장한다는 ‘무어의 법칙’은 이미 폐기되었지만 2045년에는 AI가 인류를 넘어서 ‘특이점’을 맞는 해라고 주장하는 ‘레이 커즈와일’(『특이점이 온다』의 저자)같은 사람은 기술 혁명을 통한 인류와 우주의 대변화를 예견한다. 인간의 역사는 진보와 진화의 역사였으나 인공지능(AI)의 자율성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게 되고 급기야 AI 지적 능력이 인류 지능의 종합을 수억 배 이상 뛰어넘는다면 어찌 불안하지 않을까?

기계와 사람의 인간성이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 리플리컨트를 바라보는 인간의 차별적 시각을 확인하고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차원에서의 사유를 다루었다면 정우신 시인은 이 시집 『홍콩 정원』에서 기계화된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혹은 시인을 포함한 예술가들에 대한 어려움이나 불안감을 형상화 한다. 기계와 인간의 전도된 상황을 설정하고 이러한 시점에서도 시인은 “진화처럼 앞에/있는 척/뭔가 할 일이 /남아 있는 척” 하면서 버티면서 배회하고 도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알 수 없는 바람이 불고 // 사랑이라는 말은 미래를 속이기 좋았네”라는 ‘덧없는 세상’을 노래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정우신의 이 시집에서 리플리컨트화된 인간을 묘사하는 장면은 많은데 그 중에 구슬( )모양을 그대로 시 제목으로 삼은 그의 시에서는 내면화된 리플리컨트가 잘 형상화 되고 있다. 시의 전문은 아니지만 가령 그러한 시구가 드러난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작고 물컹한 구슬 / 머리부터 발끝까지 / 굴러다니며 뼈를 부식시키는데 / 편편하게 / 지름을 넓히는데 / 이러다간 터져버릴 것 같아 // 스스로 죽어가는 것들을 떠올려 보는데 // 구슬이 지나간 자리 / 거름 냄새가 나고 / 천천히 지푸라기가 식어가고 / 터전을 잃은 가금들은 밤새 울부짓고 //투명하고 질긴 / 그 눈망울 / 장대비로 찔러봐도 슬픔의 깊이를 알 수 없다

그리하여 이 시집 끝머리 정우신 에세이 「관류 실험」에서 시인은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내 육체에서 흘러내리는 진액이 금속성인지 생물성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우신은 끝내 그의 시 「변전소」에서 “우주에서 / 사랑으로 위치 변경”이라고 적고 있다. 이것은 ‘우주에서 / 사람으로 위치 변경’으로 바꿔 읽을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인간 같은 리플리컨트’가 나오고 정우신의 시에서는 ‘리플리컨트 같은 인간’이 나오는데 공통점도 있다. 그것은 바로 종말에는 모두 ‘리플리컨트’의 폐기를 의미하는 ‘사랑의 유전’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서 “나는 어디서든 느낄 수 있”고 이런 나를 “네가 보고 싶다면” 기계 인간이 아닌 “사람을 데리고”오라고 화룡정점 같은 기대와 제안을 한다.

시인 정민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