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장애’ 극복하며 떠난 제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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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장애’ 극복하며 떠난 제주 여행
  • 허회숙
  • 승인 2021.03.0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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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허회숙 / 전 인일여고 교장, 시의원
우도

코로나 사태로 1년 넘게 하늘 길이 막히자 공항에 나가지 못해 생기는 ‘공항장애’라는 병이 생겼다고 한다. 우스갯소리지만 나도 그 증세를 앓고 있었다.

작년 한 해 해외는 물론 제주도에도 못 가본 탓에 ‘공항장애’가 의심스러운 때에 제주도 여행을 함께 하겠느냐는 L선생의 제의를 받았다. 나는 두말없이 O.K 싸인을 보냈다. 그러나 여행 준비 품목에 반찬을 준비하라고 하고, 저녁과 아침은 숙소에서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까지 나의 여행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는 얘기였지만 궁한 김에 이 것 저것 따질 여유도 없어 무조건 가겠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꿍얼꿍얼 불평이 일었다. ‘반찬은 어떻게 해가라고...’

첫째 날(2/22), 12시30분발 비행기로 김포공항에서 출발하여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겨울에서 봄으로 날아온 듯 모든 것이 산뜻하다. 공항에서 렌터카에 짐을 옮겨 실은 후 제주시의 도두항길 ‘도두 해녀의 집’을 찾았으나 브레이크 타임이어서 옆집 ‘어부 횟집’에서 여행 첫 식사로 전복죽으로 즐겼다.

점심 후 서귀포시에 있는 ‘노리매 매화공원’으로 향한다. 금년 들어 매화를 실물로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입구부터 분홍, 꽃자주색으로 활짝 핀 매화들이 만발한 매화동산은 꿈속인 양 했다. 매화동산을 지나 ‘비밀의 정원’에 이르자 정열적인 붉은 동백꽃과 노란 감귤이 주렁주렁 달린 감귤나무가 늘어서 있는 길 가에 하얗고 노오란 수선화가 다소곳이 피어있다. 문득 거울 속 세계로 들어와 만난 동화 나라 같다. 차츰 어두워지면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 연못을 끼고 도는 야자수 산책로를 깊은 심호흡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한 바퀴 돈다. 카페에 앉아 마실 시간은 없어 따끈한 유자차를 한 잔씩 들고 나와 향긋한 유자 향으로 찬바람에 언 몸을 녹이며 걷는다.

매화와 동백과 수선화의 달콤함에 취한 마음으로 여행 첫날의 피곤한 몸을 달래러 삼방산 탄산온천으로 향한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이 탄산온천은 미네랄 등 건강한 성분이 많다고 한다. 미온탕에 한참 있으려니 온 몸에 탄산칼슘이 붙어 모래알같이 서걱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목욕을 즐기는 L선생이 약속 시간을 넘기고도 한 시간이 다되도록 나오지 않아 나처럼 후다닥 빨리 나온 일행과 사이에 가벼운 말씨름이 벌어졌다. 숙소에 도착하여 집에서 떠날 때의 걱정과 달리 여자 넷이 척척 분업하여 차린 저녁 밥상은 풍요로웠다.

둘째 날(2/23)의 시작은 유채꽃밭 이다. 노란 유채꽃이 내 허리 높이까지 자라 미풍에 살랑거리자 나도 모르게 안으로 들어가 포즈를 잡으며 사진을 찍는다. 나는 그동안 우리 동창회의 숙제였던 동영상 찍기를 유채꽃밭에서 찍을 수 있어 더욱 신이 났다. 다음 코스는 송악산 둘레길이다. 평탄하고 걷기 편하면서 눈길을 어디로 두어도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아름다운 길이어서 제주에 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걷는 길이다. 짙푸른 바닷물이 찬란한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너머로 삼방산의 늠름한 자태가 보인다. 그 뒤로 멀리 한라산 자락도 보이고 형제 섬의 모습도 다정하다. 시원스레 펼쳐진 푸른 들판에는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데 예술사진을 찍으며 연출을 즐기는 일행들은 말을 타고 사진을 찍으며 떠날 줄을 모른다. 이벤트 팀과 둘레길 산책 팀으로 갈라져 나는 송악산 둘레 길을 빠르게 걷는다. 역시 송악산 둘레 길의 아름다움과 쾌적함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다음으로 ‘바다다 카페’로 향하니 입구는 공사 중이어서 다소 어수선했지만 탁 트인 제주 남쪽 바다 뷰는 일품이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두 번 째로 탄산온천장에 들린다.

셋째 날(2/24)은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가는 날이다. 몇 년 전 우도 일주를한 적이 있는데 다시 가보고 싶었다. 지난번에는 우도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느라 우왕좌왕 했고 막배를 놓칠까 조바심도 했었는데, 오늘은 이른 시간에 간데다가 차를 배에 싣고 들어가 여유롭다. 우도에 도착한 후 등산 팀과 해변 길 산책 팀으로 갈라진다. 나는 등대 꼭대기까지 오르는 등산 팀에 속해 계단 길을 오르고 산길로 우도 전체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 까지 걸었다. 크게 힘 들지도 않으면서 기분 좋은 등산을 한 것이 여간 상쾌하지 않다. 예정 시간이 한 시간이었으나 등산 팀이 30분을 지체하자 어제 탄산온천에서 늦게 나왔다고 지청구를 들은 해변 산책 팀에서 강하게 어필을 해 온다. 옥신각신하며 서로를 코너에 몰며. 성게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자양도에 들러 해변에서 촬영을 위한 이벤트를 멋지게 펼친다.

넷째 날(2/25)은 ‘본태 박물관’에 가는 날이다. 가는 길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하는 정원’에 들른다. 우리 일행도 생각하며 정원을 걸어보자고 각자 흩어져 혼자 정원을 돌았다. 역사관에서 성범영 대표를 만나 사진도 찍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타다오가 지은 본태박물관이다. 본태박물관은 대리석을 연상시키는 노출콘크리트 건물이 빛과 물의 조화로 멋스럽고 세련된 외형을 보여준다. 총 다섯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카소, 달리, 백남준, 쿠사마야요이(무한 거울방, 호박), 제임스 티렐 등 세계적 예술 거장들의 작품과 우리나라 전통 공예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본태박물관 옆에 있는 방주교회는 이타미 준이라는 건축가가 노아의 방주 같은 형태로 지은 교회이다. 저절로 신심이 우러나올 것 같은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교회다. 들어가 잠시 눈을 감고 이번 여행에 감사기도를 드린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어서 간단한 평가회를 가진다. 심성수련 식의 평가회에 익숙치 않은 일행이 있었지만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다섯째 날(2/26), 여행의 마지막 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빛의 벙커’에 가는 날이다. 관람객이 많아 제2 주차장에 차를 대고 셔틀버스로 들어간다. 반 고흐와 고갱의 삶과 작품을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보는 것이다. 한 시간여 제주 비밀 벙커의 콘크리트 맨 바닥에 다리 쭉 뻗고 앉아 음악과 빛의 예술로 만나는 고흐와 고갱의 세계에 흠뻑 빠진다. 온 몸에 행복감이 충만하게 차오른다. 렌트카를 반환하러 가는 길에 제주시 바닷가를 돌다가 발견한 김만덕 기념관을 끝으로 4박5일간의 공식일정을 끝낸다.

이번 제주 여행은 비용 대비 가성비가 100% 이상인 행복한 여행이었다. 일행 모두가 서로 배려하고 베풀고자 하는 마음 밭의 소유자들이어서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 팀이 또 다시 뭉쳐 움직이자는 다짐들을 하며 늦은 밤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향한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제주 감귤 향기가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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