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안 챙겨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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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안 챙겨줬어요
  • 이정숙
  • 승인 2021.03.0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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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속 동그라미들]
(3) 부모의 챙김, 아이의 핑계- 이정숙 / 구산초교 교사, 인천교육연구소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우리 모두가 그 키워냄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일게다. 그런데 너무 돌본 탓일까. 아니면 어느 한 쪽에만 과한 영양분을 주어 무기력해지는 것일까. 어느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존재하는 연습을 잃어버리게 된다.

김샘은 코로나로 인해 등교수업과 원격수업이 교차되는 수업에 정신이 오락가락이다. 아이들이라 다르겠는가. 실험실도 가지 못할 형편이라 과학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만들거나 가볍게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원격수업에 제시하고 등교수업에 확인하고 설명하는 활동을 넣었다. 6학년 과학은 실험이 많음에도 동영상 수업밖에 제시할 수 없어 자칫 지루해 할까 미안했는데, 마침 조작활동이 있어 지난 원격수업 시간에 교과서 부록에 붙어 있는 ‘인체모형만들기’를 한 시간 활동으로 제시했다. 필요한 부품들은 이미 다 챙겨 보냈기에 아이들이 간단히 만들어서 등교하면 대면 수업시간에 각 장기나 뼈대 등을 설명하고 또 붙여가면서 이해 해 나가는 자료로서 좋을 듯했다.

김샘: 지난 시간 똑딱 단추 다 받았지요. 책 뒤에 있는 부록 뜯어서 인체모형 만들기 했을 거예요. 이번 시간 꼭 가져오라고 여러 번 얘기 했는데 다 가져왔나요? 꺼내 보세요.(안 가져 온 아이들이 많다.)

김샘: 어? 왜 이반만 안 가져 온 친구들이 많지? 선생님이 꼭 가져오라고 칠판에까지 써 놨잖아?

영훈: 선생님이 준비물에 안 써 줘서요.

김샘: 내가? 칠판에 써 놨잖아.

영훈: 아뇨, 우리 선생님이요. 담임선생님이요.

김샘: 그래? 오늘 과학 시간 들었는데 과학 준비물을 안 가져 온 게 담임선생님 탓이라고?

영훈: 네, 맞아요.

김샘: 좀 섭섭하네 네가 안 가져 온 게 모두 선생님 탓이란 말이지?

영훈: 다는 아니고 ... 뭐 저도 잘못했겠죠.

김샘: 그래? 얼만큼?

영훈: 네?

김샘: 네 잘못은 얼만큼이냐고. 혹시 선생님 잘못보다 많아?

영훈: 글쎄요.

김샘: 네가 잊은 게 (잘못이)더 많아 아니면 과학시간에 뭘 하는지 알지도 못하시는 담임선생님이 써 주시지지 않은 한 담임선생님 잘못이 더 많아?

영훈: 반반이네요.

김샘: 그래? 정확히 반반이야?

영훈: 제가 좀 더 많은 거 같기는 해요.

김샘: 흠, 그럼 챙기지 못한 네가 잘못한 거 맞네.

영훈: 그러네요.

김샘: 그런데 왜 담임선생님 잘못이라고 하지?

영훈: 글쎄요.

영훈이는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가 억울했나보다. 과학시간에는 아이디어가 많고 재치 있게 대답을 하지만 과제를 해오거나 실험관찰 책을 정리하는 데에는 늘 하기 싫어했다. 김샘은 습관처럼 핑계를 대는 게 버릇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촉박한 시간에도 기어이 아이 말을 파고 들고 말았다.

 

 

김샘은 작년 2학년 때 한 아이가 생각났다. 모든 학용품과 학교생활 용품을 다 떨어뜨리고 안 가져 오는 건 물론, 수업시간에도 늘 주변에 뭔가가 가득 떨어져 있는 아이였다. 주워줘도 몇 분 후에 보면 또 바닥 여기저기 어지럽게 책이며 연필이며 필통들이 떨어져 있다가 기어이 물통이며 겉옷이며 가방이며 책이며 다 떨구고 놓고 가는 민결이란 아이. 다음 날이면 아이 엄마는 새 필통에 새 연필을 깎아 넣어주고 새 지우게 까지 가지런히 챙겨 보냈다. 점퍼 옷도 아주 예쁘게 입혀 보낸 그 어머니의 모습에서 아이를 정성스럽게 키우는 모습과 함께 힘듦이 보였다.

하지만 그 정성? 덕분에 그 아이 책상 옆에는 가지고 가지 않은 물통들이 늘 서너 개 주렁주럭 걸려 있었고 책상 속에는 배울 책이 대신 무언가 잡다한 것들이 쓰레기가 되어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수업시간 학습활동에 필요한 물건들은 없었다. "민결아, 수학책이 없니? 익힘책은? 알림장은 안가져 왔니? 꺼내 보렴." 하고 말하면 어김없이 말한다. “엄마가 안 챙겨줬어요”라고.

부모 일일이 챙겨주는 그 정성스러움은 아이들의 핑곗거리가 되고 면죄부가 되어 이제 아이가 무기력해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버렸다. 2학년이 그렇게 자라면 6학년이 되어서도 자신이 챙겨야 할 준비물을 엄마나 선생님에게 미루는 아이가 되어 버릴 것 같다. 당시 같은 반 아이였던 현진이도 그랬다. 늘 잊어버리고 챙기지 못한 친구가 두 명 있었는데 한명은 늘 엉뚱한 행동을 하는 남자아이였고 똑 같이 잊고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잊어버리는 현진이란 여자아이였다. 덕분에 우리 반 아이들은 ‘아 맞다’가 두 명이라고 놀려대기도 했었다.

현진이는 좀 더 증세가 심했다. 선생님 질문에 대답하려고 손을 들었다가도 발표시키면 “??, 뭐지?”라고 해맑게 말해, “왜 손을 들고 있었지?”라고 하면 “네?”하고 되묻곤 한다. 현진이의 이런 어이없는 행동에 수업시간이 늘 지연되곤했다. "현진아, 책 꺼내야지. 국어책 꺼내봐" 라고 말하면 이리저리 찾다가 없자 일어나 뒤에 있는 사물함으로 간다. 그러다 엉뚱한 준비물을 가져 오곤 자리에서 이것저것 뒤적인다. 아직도 국어수업에 들어오지 못하는 현진이를 향해 현진아, 국어책이 없니? 매일 국어시간이 들었는데 집에 가져갔어? 라고 하면 어김없이 “아 맞다!” 하며 다시 일어나 책을 가지러 사물함으로 가서 찾아온다. 어쩌다 한 두 번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매일 매 시간은 좀 곤란하다. 반 아이들이 기특하게 챙겨주는 모습도 여러번이지만 항상 뭔가를 놓치니 늘 ‘아 맞다’가 반복된다.

김샘: 현진아, 연필 떨어져 있어.

김샘: 외투를 밟고 있네. 얼른 걸어놔야지.

김샘: 현진아, 나눠 준 도화지는 어쩌고 다시 받으러 왔니?

현진: 없어졌어요.

김샘: 종이가 발이 달렸나? 사라지기도 하는구나. 마술을 부렸나보다. 어? 저어기 떨어져 있네. 네 책상 뒤에....

김샘: 현진아 왜 다시왔니?

현진: 옷을 놓고 갔어요.

현진: 가방을 놓고 갔어요.

현진: 신발을 놓고 갔어요.

김샘: .......

현진이는 두 갈래로 예쁘게 묶고 온 머리가 한 시간 수업이 지나면 종종 산발이 되어 있었다. 머리에 단 핀과 리본, 고무줄도 어딘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아이가 자꾸 머리를 가지고 신경을 쓰고 있는 걸 보다 못한 김샘은 쉬는 시간에 머리를 묶어 주었다.

김샘: 누가 이렇게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시니? 매일?

현진: 아빠요.

김샘: 아 아빠가 묶어주시는 구나. 현진이는 아빠 엄마가 매일 머리를 빗겨주시니까 좋겠다.

현진: 엄마는 아빠처럼 못해요. 엄마는 바빠요. 집안 일은 아빠가 다 해요.

김샘: 그렇구나 아빠가 다 챙겨주시는구나. 이젠 현진이가 가방도 챙기고 해야지? 엄마도 바쁘신데.

현진: 그러려고 해요. 오늘도 제가 가방 챙겼어요.

김샘: 그래, 오늘 받아쓰기장은 가져왔니? 바구니에는 넣어두었고?

현진: 아 맞다! 가져왔어요!(냉큼 사물함에 가서 가져 옴)

김샘: 아침에 오자마자 과제물 바구니에 넣어두는 게 우리 반 규칙이지? 벌써 한 학기가 다 가는데... 그래도 요즘에는 받아쓰기장을 잊지 않고 가져오는 것 같아, 그치? 점점 발전하는 걸.

현진: 예 그래요.(해맑은 표정)

시대가 변하면서 아이들 생활도 점점 복잡해지고 하는 일도 많아진다. 생각하고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 뇌가 포화상태가 되다보니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선택적으로 기억하려는 지도 모른다. 더하여 부모들도 바쁘다보니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하는 데 익숙해져 아이들이 스스로 하도록 지켜보고 기다릴 시간들이 없나보다. 일일이 다 챙겨주다 보니 아이들은 선택하거나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의당 부모의 챙김을 당하게 된다. 상황이 만들어지고 습관이 되고 당연함이 쌓여간다. 그래서 영훈이 처럼 고학년이 되어도 핑계만 늘어간다.

김샘은 일년 후 훌쩍 자란 현진이를 3학년 교실에서 전담 수업시간에 만났다. 다행이 작년처럼 늘 주변에 수많은 물건들이 떨어져 있는 모습은 잦아들었다. 때때로 머리는 여전히 산발인 채로 풀어져 있었지만. 학년이 지나 아이도 달라졌나보다. 조금씩 더 나아지겠지! 김샘은 조심스럽지만 기대를 버리지 않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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