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서도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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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서도 바닷가
  • 이임순
  • 승인 2021.03.1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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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이임순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강화여고에 근무 할 때 일이다. 강화도 외딴섬 주문도에 자리 잡은 서도중학교에서 두 명이 강화여고에 입학했다. 공교롭게도 두 명 모두 내가 맡고 있는 반이 되었다. 강화에서 주문도까지는 배를 타고 가야한다. 부장선생님과 함께 두 학생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나는 학생이 결석을 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부모님을 찾아뵙고 상담을 했다. 그런데 두 학생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강화읍에 나와 자취를 하고 있어서 본가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고 싶어 가정방문을 하기로 한 것이다. 가정방문은 생활지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터라 주문도 구경도 할 겸 함께 가기로 했다.

외포항에서 배를 타야 하는데 버스가 늦는 바람에 배를 놓치고 말았다. 은빈(가명)이는 자기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다. 한참 만에 작은 고깃배 한척이 왔다. 나와 은빈이, 은숙(가명)이, 부장님 넷이 고깃배에 올랐다. 그때 가랑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바닷길을 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섬에 도착한 선창에서 비를 맞으며 나는 아이들과 자취생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면서 그들의 꿈 이야기를 나눴다. 두어 시간이 후딱 지났다. 어느새 주문도 선착장으로 은빈 아버지께서 경운기를 끌고 마중을 나오셨다.

우리는 그 마을에 있는 숙소로 데려다 달라고 말씀드렸다. 경운기는 울퉁부퉁한 길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얼마를 가자 “다 왔습니다, 내려주세요.”라고 은빈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부장님과 나는 여기가 “숙소인가요?”라고 물었더니 “네”라고 하시면서 “이곳은 따로 숙소가 없습니다.”라고 껄껄껄 웃으셨다. 호탕하시고 유머가 풍부하신 분 같았다. “이곳이 우리 집인데, 호텔보다 더 좋습니다.”라는 말에 우리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바닷가에 위치한 집이었는데 창문을 열면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식사 때 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운치 있는 곳이었다. 은빈이네는 할머니를 정성껏 모시는 부모님과 은빈이를 잘 따르는 동생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가족 모두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고 행복해 보였다. 우리가 가정방문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와 은빈엄마가 이불을 강화시장까지 가서 사다놓았다는 말을 듣고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분홍색 이불과 요를 두벌이나 사놓고 기다리며 반겨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은빈이는 강화읍에서 자취를 하고 한 달 만에 집에 간 것인데 우리가 갔을 때 그들은 강화여고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가정방문을 온 선생님들이라면서 온 가족이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다. 할머니는 절구에다 떡을 직접 찧어 우리를 위해 까만 깨 인절미를 만들어 주셨고, 금방 잡은 새우를 정성껏 쪄 반찬으로 주셨다.

 

주문도해변 (사진= 다음카페 '아름다운 인생과 자연')
주문도 해변 (사진= 다음카페 '아름다운 인생과 자연')

 

식사 후에 부모님과 은빈이 학교 생활에 대해 상담을 한 후, 은빈이 아버지 트랙터를 타고 바닷가에 갔다. 바닷가는 조용했으나 잔잔한 파도가 낮선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바닷가 입구에서 부터 조개껍질이 예뻐서 마구 줍기 시작했다.

“선생님 아마 나중엔 다 버리실 껄요?” 은빈 아버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왜요? 이렇게 이쁜 조개껍질을 버리다니요!” 하니 "이곳엔 그런 조개껍질이 천지거든요.” 하고 답하셨다.

바다에서 새우를 잡으면서 살아오신 은빈아버지는 이런 조개껍질이 별로 이뻐 보이지 않는 표정었다. 하지만 내게는 바닷물에 이리 씻기고, 저리 씻긴 하얀 조개껍데기가 너무 예뻤다. 하나하나 주울 때마다 “너무 예쁘다, 참 이쁘다!” 연신 소리를 질렀다.

은빈이 가족들은 나를 보시고 얼마나 철없는 선생이라고 생각하셨을까?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솟는다. 얼마가지 않아 내 양손엔 조개껍질이 하나 가득 되었다. 양쪽 호주머니에도 그득했다. 나는 더 이상 조개껍질을 담을 곳이 없었다. 은빈이와 아버지께서는 나를 보시고 소리 내어 웃으셨다. 그런데 아버지 예감이 들어맞았다. 바다기슭까지 가려면 한참을 더 가야하는데, 나는 조개껍질을 하나씩 버려야만했다. 갈수록 더 이쁘고 특이한 조개껍질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걸어가면서 예쁜 조깨껍질은 신기하게 생긴 조개껍질로 바꾸었다. 목적지에 도달 했을 때는 같은 듯 다른 조개껍질들이 내 양손과 호주머니에 가득했다. 다시 집으로 뒤돌아 오는 길에는 그것들도 너무 무거워서 버거웠다. 끝내 나는 아버지 말씀처럼 아주 예쁘고 신기하다고 생각한 두어 개 만 남기고 모두 버렸다. 돌아 올 무렵 뒤 돌아보니 내가 주웠던 조개껍질은 모두 같아 보였다. 내 손에 든 그 껍질도 똑 같아보였다. 끝내 나는 하나만 남기고 모두 그곳에 두고 왔다.

은빈 아버지 말이 맞았다. 나중에는 모두 버리게 될 꺼라는 말. 누군가 다음 사람도 나처럼 처음에는 신기해하면서 조개껍질을 마구 줍겠지. 너무 예쁘다고 신기해하겠지. 그러다 끝내는 다 남기고 오겠지. 나는 웃으며 돌아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그 바닷가에서 주어온 것은 조개껍질 대신 나 역시 언젠가는 다 버리고 갈 목숨이라는 깨달음이다. 지금도 그 바닷가엔 내가 남기고 온 조개껍질들이 하얗게 파도치고 있을까? 내가 욕심부리며 집으로 가지고 오고 싶어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모두 주어가 텅 빈 바다가 되었을까? 꿈 많던 두 제자를 생각하면 나는 오늘도 그 바닷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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