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을 오가는 길목, 용일사거리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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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을 오가는 길목, 용일사거리 일대
  • 유광식
  • 승인 2021.03.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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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람일기]
(51) 용일사거리(용남시장) 일대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제운사거리, 2021ⓒ유광식
제운사거리, 2021ⓒ유광식

 

봄날이 또다시 돌아왔다. 봄기운을 느끼며 두툼한 패딩점퍼를 세탁 맡기는 기분으로 작년 일들은 기억 보관함 속에 넣는다. 비워야 채울 수 있듯이 봄에는 청소가 중요한 것 같다. 산뜻하게 시작할 3월이지만, 시야를 조금만 둘러보면 우리 주변은 지금도 많은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직도 변종이라는 이름을 달고 훨훨 날아다니는 바이러스를 비롯하여,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마음을 찌르고 있다. 또한, LH 투기 사건을 목도하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두 곳의 시장 선거까지 어수선하다.   

 

용현1.4동 용일초등학교 축담길, 2021ⓒ유광식
용현1.4동 용일초등학교 축담길, 2021ⓒ유광식

 

마스크를 잘 착용한 뒤 <용일사거리-제운사거리> 일대를 거닐어 본다. 이 지역은 주안동과 용현동이 나뉘는 경계이자 시내버스가 인하대학교 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구간이다. 사거리 안쪽으로는 대학생들의 원룸이 즐비하다. 용일초등학교 옆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니 주택들 사이로 용남시장이 반짝 자리한다. 1975년생이니 조만간 쉰 살을 바라보게 되었다. 작년에 시장 공영주차장을 재정비한 덕에 깔끔한 분위기다. 시장 남쪽 입구에 조성된 공원에는 한낮의 햇볕을 훔치려는 동네 어르신들과 어린이들이 거리를 둔 채 뒤섞여 있었다. 

 

용남시장 남측 입구, 용남경로당이 있는 공원(휴식 중인 비둘기, 어르신, 아이들), 2021ⓒ유광식
용남시장 남측 입구, 용남경로당이 있는 공원(휴식 중인 비둘기, 어르신, 아이들), 2021ⓒ유광식
용남시장 중앙(북쪽으로), 2021ⓒ김주혜
용남시장 중앙(북쪽으로), 2021ⓒ김주혜
용남시장 중앙(남쪽으로), 2021ⓒ김주혜
용남시장 중앙(남쪽으로), 2021ⓒ김주혜

 

<용일사거리-제운사거리> 도로 양쪽은 일명 ‘방석집’으로 불리는 유흥업소가 밀집된 곳이었다. 지금도 몇 군데가 보이긴 하지만 현재 많은 업소가 사라진 뒤이고, 몇 해 전부터 미추홀구청은 청년창업공간으로 난 자리를 채우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청년’이라는 이름을 모든 상황에 만병통치약처럼 적용하는 게 어색해 보이긴 하나, 이곳은 인근 대학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작년 일제히 이발 조치된 가로수들과 길 옆 노포들, 빈 점포가 번갈아 반복된다.

 

한나루로(자전거 타는 사람), 2021ⓒ김주혜
한나루로(자전거 타는 사람), 2021ⓒ김주혜
한나루로(주안3동 대중 요리 전문점이 있다.), 2021ⓒ유광식
한나루로(주안3동 대중 요리 전문점이 있다.), 2021ⓒ유광식

 

제운사거리 앞 오래된 농협 창고는 동네의 어제를 말해 주고 있었다. 기와 창고가 이색적이었는데 주차장으로 임시 이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높고 넓은 문짝과 뒤로 이어지는 널찍한 건물이 멋스러워서 미래에 예술공간으로 활용되면 좋을 듯 했다. 주변 골목을 지그재그 오르며 오랜만에 평온하고 벅찬 기온을 만끽했다. 공원에는 으레 사람들이 많지만, 골목에는 코로나 탓이기도 한지 주민들의 출현이 드물긴 드물었다. 사람들의 온기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어도 건물로 모여들어 산책자의 걸음을 가볍게 밀쳐 주었다. 사회도 그런 것 같다. 좋고 싫은 관계가 많지만, 그저 모여 있으면 좋은 것 말이다. 함께하는 존재란 그런 것이다.

 

구 인천축산농협(신기점) 창고, 2021ⓒ유광식
구 인천축산농협(신기점) 창고, 2021ⓒ유광식
주안3동 어느 주택의 대문(범상치 않은 디자인), 2021ⓒ유광식
주안3동 어느 주택의 대문(범상치 않은 디자인), 2021ⓒ유광식
주안3동 주택가 골목(부목을 댄 감나무와 기와집들), 2021ⓒ유광식
주안3동 주택가 골목(부목을 댄 감나무와 기와집들), 2021ⓒ유광식

 

산책하면서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아니 대체로 그런 편이다. 장소만의 특별함도 중요하지만, 보통의 것에 대한 안도감이 더 크다. 풍경에 얹혀 생각하는 개인의 당면과제들이 걷는 내내 바싹하게 마르니 개운할 따름이다. 도로 안쪽은 고층 건물이 없기도 하거니와 이 주변에 볕이 잘 드리워짐을 알 수 있었다. 대신 도로 쪽은 택시로 늦은 귀가 시 빨간 불빛을 본 기억이 잦다. 이제 거의 소화되고 있으니 곧 봄다운 봄의 거리로 거듭날 것을 기대해 봐야겠다. 

 

용현1.4동 어느 주택 앞 폐지 더미(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채소 중 하나가 봄동), 2021ⓒ유광식
용현1.4동 어느 주택 앞 폐지 더미(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채소 중 하나가 봄동), 2021ⓒ유광식

 

코로나로 학생들의 자취도 요동치는 요즘이다. 와중에 어느 중동계로 보이는 가족(한국어 능통)이 공인중개사와 집을 보러 다니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과연 오늘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 계약이 성사될지 몹시도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얼마의 시간 후 그 가족을 공원 놀이터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새집을 구해 즐거운 마음인지 시끌벅적한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부부의 자녀들이 보였다. 문득 바로 옆 용남시장이 이 가족에게 맛있는 삶을 제공할 것이라 알리고픈 심정이었다. 따뜻한 봄날에. 

 

주안3동 주택가 골목(나무, 자동차, 코로나, 미세먼지, 마스크), 2021ⓒ유광식
주안3동 주택가 골목(나무, 자동차, 코로나, 미세먼지, 마스크), 2021ⓒ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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