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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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상상력
  • 김선
  • 승인 2021.03.30 0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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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 이방인- ㊴기요틴과 사형집행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명상활동가)’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Il n'y a rien de plus important que l'exécution de la peine de mort, et en bref, c'est la seule chose intéressante pour les gens, pourquoi ne l'a-t-il pas remarqué à ce moment-là !

사형 집행보다 더 중대한 일은 없으며 요컨대 그것이야말로 사람에게는 참으로 흥미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어째서 그때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일까!

 

  뫼르소는 자신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턱없는 확실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본인만이 받아들일 수 없는 확실성인 것이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 확실성에 근거를 제공한 판결과 판결이 언도된 순간부터의 가차 없는 전개 과정과의 사이에는 어처구니없는 불균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불균형은 균형자를 자처하는 이들과 대척점에 있는 당사자가 느끼는 감각일 뿐이다. 판결문이 전혀 다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속옷을 갈아입는 인간들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 그것이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라는 지극히 모호한 관념에 의거해 언도되었다는 사실, 그러한 모든 것은 그러한 결정의 진지성을 많이 깍아 내는 것 같았다. 진지한 결정의 속성은 늘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고가 내려진 순간부터 그 결과는 뫼르소가 몸뚱이를 비벼 대고 있던 그 벽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실하고 심각한 것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형 선고는 확실하고 진지한 결정이다.

  그럴 때면 뫼르소는 엄마가 아버지에 대해 자신에게 들려준 어떤 이야기가 생각났다. 자신은 아버지를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에 관해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엄마가 그때 이야기해 준 것뿐이었다. 이야기로 아버지에 대한 부재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아버지는 어느 살인범의 사형 집행을 보러 갔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또 다른 누군가의 호기심일 극도로 자극했을 것이다. 그것을 보러 갈 생각에 아버지는 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갔고 돌아오자 아침에 먹었던 조반의 일부분을 토했다는 것이었다. 죽음을 실감나게 목도했던 일이 기억나서 그랬을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뫼르소는 아버지가 좀 역겹게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가 되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다.

  사형 집행보다 더 중대한 일은 없으며 요컨대 그것이야말로 사람에게는 참으로 흥미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어째서 그때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일까! 타인의 사형 집행은 본인에게는 중대하지도 흥미 있지도 않은 사건일 뿐이기에 그렇다. 만약에 자신이 이 감옥으로부터 나가는 일이 있다면 자신은 모든 사형 집행을 빠짐없이 다 보러 가리라. 이제야 사형 집행이 흥미 있는 사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성을 꿈꾸어 보는 것은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느 날 이른 아침 비상경계선 밖에서 말하자면 저쪽 편에서 자유로운 몸이 된 자신을 생각만 해도, 사형 집행 장면을 구경하러 왔다가 나중에 토하게 되는 자신을 생각만 해도 독약 같은 기쁨의 물결이 가슴으로 북받쳐 올라왔기 때문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상상하기만 해도 한편으로는 큰 즐거움이 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에 더 큰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분별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가정에 휘말리는 것은 잘못이었다. 잠시 후에 뫼르소는 어찌나 끔직하게 추운지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몸을 웅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걷잡을 수 없도록 턱이 덜덜 떨렸다. 현실은 냉혹하게 피부로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분별 있는 생각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컨대 또 어떤 때는 법률의 초안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형법체제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형법의 대상이 직접 되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도 드는 법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형선고를 받은 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임을 자신은 알아차렸다.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기에 조건 설정이 필요하다. 천 번에 단 한 번, 그것이면 수많은 일들을 해결하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수형자가 그것을 먹으면 열 번에 아홉 번만 죽는 그런 화학약품의 배합을 고안해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한다. 그것이 조건이었다. 기회가 기회로써 인지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침착하게 곰곰이 생각해 볼 때 뫼르소는 단두대의 칼날을 사용할 경우 결함은 그것이 아무런 기회도, 절대 아무런 기회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수형자의 죽음은 결정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처리가 끝난 일이며 확정된 배합이요 성립된 합의여서 취소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취소의 기회가 없기에 결함이 있는 형법체계인 것이다. 만에 하나 어쩌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있으면 다시 할 뿐이다. 그러므로 난처한 일은 수형자로서는 기계가 아무 고장 없이 작동해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뫼르소는 그것이 바로 결함이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로는 그 훌륭한 조직의 모든 비결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뫼르소는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컨대 수형자는 정신적으로 협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탈 없이 진행되는 것이 그에게 이로운 것이다. 탈없이 진행된 사형집행은 수많은 사연이 묻혀 당장에는 집행자에게 유리한 결과만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기요틴(guillotine) 출처: 시사상식사전
기요틴(guillotine) 출처: 시사상식사전

 

  뫼르소는 또한 그러한 문제들에 관해서 여태까지 정확하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뫼르소는 기요틴으로 걸어가려면 그것이 설치된 단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고, 층계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1789년의 대혁명 때문이라고, 다시 말해서 그러한 문제에 관해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르쳐 주고 또 보여 주고 한 모든 것들 때문이라고 여겨진다광기의 상징이었던 단두대는 지금 뫼르소에게는 명확하게 알아야 하는, 알고 싶은 대상이 된 것이다.

  그 동안 사형 집행의 절차와 진행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역사와 풍문이 전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소문이 자자했던 어떤 사형 집행이 있었을 때 신문에 실렸던 사진 한 장이 생각났다. 사진이 사실을 증명하듯 생각을 가능케 한다. 사실인즉 기계는 그냥 땅바닥에 지극히 간단하게 놓여 있었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좁았다. 좀 더 일찍이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스러웠다. 사진에서 본 그 기계는 무엇보다도 정밀한 제품답게 말끔하고 번쩍이는 모양이 뫼르소에게는 퍽 인상적이었다. 사람이란 알지 못하는 것에 관해서는 항상 과장된 생각을 품는 법이다. 그 과장이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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