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봉 아이들의 편견 없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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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 아이들의 편견 없는 시선
  • 문미정
  • 승인 2021.04.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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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도에서 생활하기]
(28)장애인의 날, 똑같이 살아가기

 

긴긴 겨울이 가고 봄이 벌써 왔지만, 겨울을 핑계로 미뤄왔던 글 쓰기는 봄이 되어도 다시 시작할 줄 몰랐다. 이제는 천지에 꽃이 피어나고 여기저기 나물들도 올라오며, 새도 지저귀기 시작한다. 더 이상은 웅크리고 있을 수 없는 봄이 온 것이다.

 

결혼한 지 10, 장봉에 온지는 4년째에 들어섰다.

장봉의 삶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여전히 치열하고 고단하다. 그 고단함이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잔소리로 향하는 요즘이다.

 

 

첫아이 지인이가 3학년이 되더니 마을 지도를 그렸다며 보여준다. 지인이가 그린 마을 그림에는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은 다름 아닌 내가 일하는 곳 혜림원이다. 혜림원 곳곳이 자세히 표현되었을 뿐 아니라, 설립자의 묘소까지 그려져 있고, 꽃누리 정원에 비닐하우스가 3개인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지인이의 유일한 친구이자 단짝인 수연이의 그림이 궁금했다. 수연이 엄마에게 바로 그림을 사진 찍어 보내 달라 부탁했다. 수연이 엄마도 혜림원에서 근무하는 생활지도원인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이곳 혜림원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근무를 하고 있다. 수연이의 그림을 보니 수연이의 그림에도 절반 이상이 혜림원이다. 수연이의 그림에는 보건실이 어디인지, 운동실이 어디인지도 자세히 표현되어 있다.

 

아이들의 마을 그림에 혜림원이 아주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감동이 되었다. 이곳 장봉으로 온 가족을 이끌고 이사 온 목적의 일부를 달성한 것만 같아 기뻤다. 장애인과 시설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는 것은 장애 시설에서 같이 살아보는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수연이 엄마도 수연이의 그림을 바로 찍어서 보내준 것 보니 아마 나처럼 감동이 되었나보다.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서 나를 잠시 되돌아보았다.

나는 과연 혜림원과 이곳에서 사는 장애인들을 이웃과 가족으로 여기고 있나?’

설립자의 가치를 존중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는 마음으로 근무하고 있나?’

인권 시작은 존중이다.

존중이란 그 존재를 위해 내 인생의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아이들도 이렇게 아이들 인생의 한자리를 혜림원과 장애인들을 위해 내어주는데 어른인 나는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나 되돌아보았다.

 

장봉에서의 생활은 로멘스가 아니다. 사택 생활은 좁고. 인천에도 집이 있는지라 두 집 살림을 살아야 하는 것도 힘들고, 공동체 생활인지라 보는 눈이 많다보니 눈치를 봐야 하는 일도 자주 생긴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는 더 힘든 곳이 이곳 장봉의 삶이다.

 

그래도 그 고단함을 버티고 넘기게 해주는 힘은 아이들에게서 나온다.

아이들이 자연을 맘껏 누리며 뛰어 노는 모습,

장애인 이모 삼촌들과 간식이나 용돈을 받으며 좋아하는 모습,

나와는 조금 다른 모양의 삶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사는 모습,

새소리를 듣고 꽃이 피는 시기를 알며 먹을 수 있는 나물을 구별하는 모습...

그 모습이 나와 남편에겐 백신이 되고 치료제가 된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이곳에서의 삶이 평생 살아가는데 백신이 되고 치료제가 되기를 바라며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여 2021년도 연재를 다시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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