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를 요구하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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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
  • 승인 2021.05.0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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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 ㊶사제의 믿음 강요와 뫼르소의 무관심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명상활동가)’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Même si c'était la personne la plus misérable, j'ai vu le visage de Dieu apparaître dans l'obscurité de toutes les pierres.

가장 비참한 사람일지라도 모든 돌들의 어둠으로부터 하느님의 얼굴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뫼르소가 또다시 부속 사제의 면회를 거절한 것은 바로 아무도 보고 싶지 않을 때이다. 뫼르소는 누워서 하늘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 여름 저녁이 가까워 옴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의 상고를 거부하고 난 직후였는데 뫼르소는 혈액의 파동이 규칙적으로 자신의 몸속을 순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만히 자신을 느끼는 순간이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을 때는 지난 순간이다. 뫼르소는 구태여 사제를 만날 필요가 없었다.

오랜만에 처음으로 뫼르소는 마리를 생각했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생각일 것이다. 그녀가 자신에게 편지를 하지 않은 지 퍽 오래되었다. 그날 저녁 뫼르소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아마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의 애인 놀음에 그녀가 그만 지쳐 버린 것이리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마리의 생각을 자신이 상상하고 있다. 어쩌면 병이 났거나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계속 이유를 찾고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서로 떨어져 있는 그들의 두 육체 이외에는 이제 아무것도 그들을 서로 이어 주고 서로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 없었으니 어찌 자신이 그러한 사정을 알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엿보인다. 게다가 그렇다면 그 순간부터 이미 마리의 추억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었다. 추억은 그렇게 지워지는 법이 없다. 죽었다면 마리는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의 대상이 못 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당연한데 왜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 뫼르소는 정말 외로운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죽은 뒤에 사람들이 자신을 잊어버린다는 사실도 뫼르소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든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당연한 사실을 너무 당연하듯 의식하고 있는 뫼르소가 안쓰럽다.

부속 사제가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를 보자 뫼르소는 몸이 약간 떨렸다. 사제는 그것을 보고 겁내지 말라고 했다. 겁나게 하는 사람이 겁내지 말라고 하니 더 겁난다. 뫼르소는 그에게 보통은 다른 시간에 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변칙적인 방문은 사람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이번 면회는 뫼르소의 상고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순전히 친구로서의 면회이며 상고에 관해서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뫼르소를 배려한 사제의 면회는 이유불문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는 뫼르소의 침상 위에 앉은 다음 뫼르소더러 가까이 와 앉으라고 권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응대하는 사제에 대해 뫼르소는 거절했다. 그래도 사제는 매우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늘 그런 표정일 것이다.

사제는 잠시 동안 두 팔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머리를 숙인 채 앉아서 자기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이 깊은 것인지 늘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 손은 가냘프고 힘줄이 드러나 보였는데 날렵한 짐승을 연상케 했다. 그 손으로 기도하고 위로했을 것이다. 사제는 천천히 그 두 손을 비볐다. 그러고는 여전히 머리를 숙이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하도 오랫동안 그러고 있어서 뫼르소는 잠시 그를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사제도 뫼르소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갑자기 그는 머리를 쳐들어 뫼르소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자신의 면회를 거절하냐고 물었다. 거절의 이유가 궁금해서 묻는 것인가? 뫼르소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 점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묻기에 뫼르소는 자신은 그러한 것을 자문해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제는 몸을 뒤로 젖히고 손을 펴 넓적다리 위에 얹은 채 등을 뒤로 젖혀 벽에 기댔다. 그는 거의 뫼르소를 향해 말하는 것 같지도 않게 사람이란 가끔 스스로 확신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적했다.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다. 그러니 뫼르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뫼르소를 쳐다보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뫼르소는 대답했다. 어쨌든 뫼르소는 실제로 자신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을는지도 모르겠으나 무엇에 관심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관심이 없는 것이었다. 둘의 대화는 믿음의 문제는 누군가에게는 중요하지만 누군가에는 무관심의 영역일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제는 눈을 돌렸으나 여전히 그 자세는 고치지 않은 채 너무나 절망한 나머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뫼르소에게 물었다. 아직 뫼르소를 모르고 하는 질문이다. 뫼르소는 절망한 것이 아니라고 그에게 설명했다. 다만 뫼르소는 두려울 뿐이었고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절망과 두려움은 다른 감정인가?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거라고 사제는 지적했다. 당신과 같은 경우에 처했던 사람으로서 자신이 만난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께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사제는 이미 정해진 답과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그건 그 사람들의 권리라고 뫼르소는 인정했다. 그것은 또한 그들에게 그럴 만한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으로 말하면 도움을 받기가 싫었고 무엇보다도 아무 흥미도 없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자신에게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믿음을 생각할 마음의 시간조차 없는 뫼르소를 사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사제는 손으로 역정이 난다는 듯한 시늉을 했으나 곧 몸을 세우고 옷 주름을 바로잡았다. 본 감정을 숨기고 본분을 갖추는 추임새다. 그러고 나서 뫼르소를 친구라고 부르며 말을 걸었다. 뫼르소가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뫼르소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친구의 본뜻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제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들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뫼르소는 그의 이야기를 가로막고 그건 경우가 다르며 또 어쨌든 그게 위안이 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긴 하다고 사제는 동의했다. 그러나 당신이 당장 죽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장차는 죽을 것이고 그때 가서도 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며 그 무서운 시련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 묻자 뫼르소는 지금 맞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 시련을 맞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각자의 입장이 팽팽하다

그 말을 듣자 사제는 일어서서 뫼르소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뫼르소가 익히 잘 아는 놀음이었다. 뫼르소는 흔히 에마뉘엘이나 셀레스트와 그 놀음을 했는데 대개는 그들이 눈을 돌려 버리는 것이었다. 사제도 그 놀음을 할 줄 안다는 것을 뫼르소는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그의 눈길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제가 뫼르소에게 아무 희망 없이 죽으면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는 생각으로 사느냐고 말했을 때 그 목소리 또한 떨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뫼르소는 대답했다. 긴장감 있게 놀고 있다.

사제는 머리를 숙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뫼르소를 불쌍히 여긴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뫼르소는 다만 그가 귀찮아지기 시작한다는 느낌뿐이었다. 사제의 역할은 이미 끝난 것 같다. 이번에는 뫼르소가 돌아서서 천장 밑으로 갔다. 뫼르소는 어깨를 벽에 기대고 있었다. 귀담아 듣지는 않았으나 그가 또다시 뫼르소에게 뭐라고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불안스럽고 절박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흥분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뫼르소는 좀 더 귀를 기울였다. 이제는 뫼르소가 사제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사제는 뫼르소의 상고가 수락될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뫼르소는 죄의 짐을 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벗어야 한다고 말했다. 근원적인 원죄를 말하고 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인간들의 심판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심판이 전부라는 것이었다. 뫼르소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인간의 심판이라고 뫼르소가 지적했더니 그렇지만 그것으로 뫼르소의 죄가 씻긴 것은 아니라고 그는 대답했다. 죄의 현실성과 이론성이 혼재해 있다. 뫼르소는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은 모른다고 말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남들이 자신에게 가르쳐 주었을 뿐이었다. 자신은 죄인이고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 그 이상 더 자신에게 요구할 수 없을 것이었다. 사제는 더 많은 죄성을 말하고 있으니 뫼르소는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뫼르소는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제는 한 걸음 뫼르소에게로 다가서더니 더 앞으로 나설 염두가 안 난다는 듯이 멈춰 섰다. 그러고는 쇠창살 너머로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뫼르소의 생각은 잘못이라고 말하며 그 이상을 요구할 수 있고 실제로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뭉스런 말이다. 무엇을 요구하는지 뫼르소가 묻자 보기를 요구한다고 답했다. 무얼 보는지 다시 뫼르소는 물었다. 사제의 말은 계속 묻게 만든다.

사제는 주위를 둘러보고 갑자기 지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든 돌들은 고통의 땀을 흘리고 있고 자신은 그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돌들을 바라볼 때마다 고통을 느끼나 자신은 마음속 깊이 가장 비참한 사람일지라도 돌들의 어둠으로부터 하느님의 얼굴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뫼르소에게 보기를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 얼굴이라고 한다. 사제는 끝까지 자신의 얘기만 하고 있는 얼굴이다. 지금 예수님이 온다면 우리의 얼굴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아니면 사제가 원하는 얼굴일지 궁금하다.

 

제임스 앙소르,1889년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 ,1888
제임스 앙소르,1889년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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