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책방을 내게한 주말 책방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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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책방을 내게한 주말 책방 여행
  • 김보름
  • 승인 2021.05.07 0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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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54) 연꽃빌라가 탄생하기까지 - 김보름 / 연꽃빌라 책방지기

 

- 쉬는 날마다 책방에 간다면

우리 부부는 연꽃빌라를 열기 전에 다른 동네에서 나름 오랜 기간 동안 카페를 운영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쩌다 책방까지 함께 열게 되었는지, 책은 어떻게 입고했는지 그리고 열기까지 어떤 고민을 했었을까요.

독립출판물을 처음 접했던 건 8년 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형 서점에서는 접할 수 없는 책들을 보고 멋진 풍경을 본 것처럼 마음이 간질간질했던 느낌이 첫 시작입니다. 당시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왜 책방들은 찾아가기 어려운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지, 꼭 골목 사이에 숨어있거나 건물 위층에 자리하고 있었는지요. 책방은 큰 월세를 감당하기가 버겁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위층에 자리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을텐데, 당시에는 그걸 몰랐고 딱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이죠. 길치에 방향치인 저는 여기저기 헤매다. 꼭꼭 숨겨둔 보물 같은 서점을 발견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면 독서중 이거나, 개인적인 작업을 하고 있던 사장님의 “어서 오세요.”라는 나긋한 인사가 혼자만의 시간을 알리는 소리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정한 눈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꾸려낸 책들 사이에 가만히 서서 조심스레 책장을 넘겨봅니다. 따뜻한 그림책, 개인적인 생각이 담긴 에세이, 혼자 떠난 여행의 일기를 엮어 만든 유쾌한 여행기 등 사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독립출판물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그리고, 나도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습니다. 저로서는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그렇게 주말마다 새로운 책방들을 여행하며 시간을 보냈고, 언젠가 책방을 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운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알아보니 책방을 운영하는 지기들은 대부분 투잡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책 판매로만 수입을 내는 사람들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모두 책에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들만 책방을 여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출판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닌데, 책방을 열어도 되는 건지, 그렇게 자신 없이 2년 정도를 고민만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말에 실행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쉬는 날마다 책방을 찾아다니고, 몇 년 동안 계속하고 싶은 일이라면 꼭 해봐야 하는 일이 아닐까? 당신은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커피를 팔아 수익을 내고, 좋아하는 책도 팔면 어떨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해보자. 열어보고 안되면 과감히 접으면 돼.” 그렇게 다음날부터 공간을 찾아다녔습니다.

 

- 20평의 행복, 연꽃빌라

공간은 생각보다 빨리 정해졌습니다. 카페와 책방을 같이 운영하려면 최소 30평은 필요해 보였지만 누구나 지금의 연꽃빌라 자리에 찾아왔다면 홀리듯 계약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초겨울 꽤 추웠던 날, 남향의 연꽃빌라는 난방기를 틀어 놓은 듯 따뜻했고, 통창 너머 보이는 마른 풀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생각보다 10평이나 작은 공간에 대한 단점들을 무시하고, 혼자 운영할 거니까 이 정도가 딱 좋다며 합리화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잠들지 못했습니다. ‘누가 내 자리를 채가면 어떡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리가 딱 좋아.’ 안절부절못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오전,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한 번 더 자리를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찾아간 공간은 역시 꼭 알맞았다고 확신을 심어주었지요.

이곳에 책장을 놓고, 저곳에 커피 바를 놓자며 벌써 계약을 마친 듯 인테리어를 생각했습니다. 가계약 후에 집으로 돌아와 종일 책방이름을 생각했습니다. ‘OO책방’이라고 하기에는 우리는 카페 반 서점 반인데, 같은 맥락으로 당연히 ‘OO카페’라고 할 수도 없으니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일본 소설 <세 평의 행복, 연꽃빌라>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주인공 교코의 ‘마음만은 편한 곳이 연꽃빌라’라는 대목이 좋게 느껴졌습니다. 나에게도,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에게도 머무는 동안 마음만은 편안한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름을 빌렸습니다. 처음 공간에 들어와 느꼈던 따뜻함과 편안함을 다른 이도 느끼리라 장담했습니다. 우리는 공간이 주는 힘을 믿습니다.

 

- 다들 어디서 책을 입고하는 걸까

다른 서점들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쉽니다. 다들 저 많은 책들을 어디서 가져오는 걸까요? 대화도 해본 적 없는 책방 사장님들에게 직접 물어보기에는 실례되는 것 같고, 인터넷을 뒤져도 책방 꾸리는 법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다른 책방에서 구매했던 책들에서 정보를 얻었습니다. 책에는 지은이의 메일 주소나 sns주소가 적혀있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입고 문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책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과 혹시 책을 위탁으로 입고할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걱정이 무색하게 대부분 따뜻하게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아직 공간이 없다 하니 집으로 책을 보내준 사람도 있고, 공간을 열고나면 방문 입고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겨우 모은 적은 양의 책을 최대한 많아 보이게 진열한 채, 책방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상태로 2017년 12월 12일 가오픈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책방을 준비하는 ‘예비 책방 지기’의 연락을 받으면 의욕을 가지고, 성심성의껏 답변을 합니다. 지방에서 작은 공간을 운영하는 우리에게까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여러 번 고민 끝에 연락을 취했을지,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때문에 최대한 아는 대로 답변을 하고는 합니다. 얼굴은 모르지만 같은 마음을 가진 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해서 답을 적고, 응원의 말도 듬뿍 담아 보냅니다. 책을 곁에 두고, 책방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결국 자신의 책방을 꾸리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마음인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많은 책방들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닮은 사람들과 좋은 책들을 전파하는 닮은 일을 하며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동그란 달처럼 차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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