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연이 사라진 인천의 해안선, 그리고 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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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이 사라진 인천의 해안선, 그리고 섬들
  • 편집부
  • 승인 2021.05.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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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 시민로드 역사를 거닐다]
(2) 매립 전 인천과 미추홀구 - 김용하 / 인천도시연구소 소장
인천in은 미추홀학산문화원이 진행하는 지역인문강좌 ‘미추홀 시민로드 역사를 거닐다’를 10회에 걸쳐 요약해 싣습니다. 미추홀 근·현대 역사를 개괄하는 한편 ‘공간과 사람이 만든 미추홀의 생태’를 주제로 지역에 대한 인문지리적 접근을 통해 실제적인 이론과 담론을 학습합니다. 5월6일부터 7월8일까지 매주 목요일 10강이 이어집니다. 두번째 강좌는 '매립 전 인천과 미추홀구'를 주제로 김용하 인천도시연구소 소장이 진행합니다.

 

1929년 일본인 요시다가 그린 인천항 일대 해안가
1929년 일본인 요시다가 그린 인천항 일대 해안가

 

- 항만 건설과 임해공업단지

인천의 해안 매립은 개항에 이어 청일전쟁 후 본격화되었다. 1899년 5월 일본인에 의해 준공된 현 중구청 앞 해안동 해안가 매립이 그것이었다. 길이 258m, 폭 57m의 4천여평 규모로 물량장, 창고 등으로 이용됐다.

이 후 120년이 지난 현재, 인천 중구 면적의 81%가 매립지가 될 만큼 해안 매립은 꾸준히 계속돼 왔다. 1966~1974년에는 인천항 시설 현대화 사업으로 도크 건설공사가 대규모로 진행돼 현재의 인천항 모습을 갖게되었고, 남항 (준설토)투기장까지 조성됐다. 굴곡진 이 일대 해안선이 단 기간에 직선화된 것이다. 월미도는 1924년 콘크리트 제방으로 인천역과 연결됐는데, 6.25전쟁 직후 제방 옆으로 북성동 공장부지가 조성되면서 육지화됐다.

인천 동구 화수부두 일대는 일제 강점기와 1970년대 초 갯벌을 매립해 임해공업단지가 조성됐다. 현재의 현대제철, 두산인프라코어, 일진전기 자리다.

북성·만석·화수동 해안가 공장부지 매립 과정은 1883년 개항 후 1995년까지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개항 후 1900년까지 초기에 매립한 곳은 인천역 일대 차량기지와 배다리 습지지역, 중구청 앞 해안동 등이다.

1900년부터 1910 한일합방 때까지는 동일방직, 조선목재(현 만석비치타운) 등의 자리가, 1911~1931년에는 인천항 1부두, 대한제분 일대, 그리고 신흥동 옛 옐로하우스 일대가 매립됐다.

일제가 군수공장을 본격적으로 짓던 1940년대는 동국제강, 일진중공업(일진전기), 대주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한국유리, 월미도 앞 대성목재, 선창산업, 대한제당, 대한사료 자리 등지가 매립됐다. 1950년 이후 현대제철, 두산인프라코어, 삼미물류창고, GS탱크, 대한사이로, 월미도 주변과 소월미도 사이 등지가 매립됐다.

 

북성동 공업단지_인천 지도 포털 자료
북성동 공업단지_인천 지도 포털 자료

 

- 주안염전과 공업단지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 생산지인 염전은 1907년 주안염전에서 시작됐다. 이후 남동염전(1925년), 조선염업(1929년, 토지금고(낙섬) 앞), 소래염전(1935년)이 조성됐다.

주안염전은 1965년부터 1974년까지 주안공단, 공구상가로 매립됐다. 또 남동염전은 남동공단으로, 소래염전은 소래습지공원과 아파트단지로 변모했다.

 

주안염전 구역. 1954년. 인천광역시 지도 포털

 

- 송도유원지와 인공해수욕장

1970년대까지 송도유원지는 국내 유일한 유료 해수욕장으로 수도권 주민의 인기가 높았다. 임해 관광지이자 전국 유명 해수욕장 중 한 곳으로 이름을 떨쳤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해수욕장을 조성한 송도유원지는 2011년 8월 폐장됐다. 유원지 앞 바다에 떠있던 아암도는 이때 개설된 해안도로와 맞붙어 육지화됐다. 이듬해 9월 송도유원지 해수욕장이 매립되고 유원지 일대는 중고자동차 매매단지가 되었다. 현재 이곳은 관광단지 및 택지로 개발중이다. 

 

- 용현·학익 공업지역 및주택지 조성

수인선이 지나던 미추홀구 용현·학익동 염전 '조선염업 2지구'는 1937년 인천부로 매각돼 조선총독부로부터 매립이 허가되었다. 이 일대는 매립돼 동양제철화학, 자동차정비단지, SK저유소, 대우전자 등이 들어섰다. 인하대 건너편 홈플러스 자리도 이 매립지다.

인하대 앞 도로(소성로)를 경계로 이때부터 인하대 정문 남쪽으로 매립된 지역은 공업지대(학익동)가 됐다. 일제 강점기 경성화학, 조선중앙전기, 히다치제작소 인천공장 등이 있던 자리로 해방 이후 동부한농(옛 일본농약), 청구화공, 강원아스콘, 동일레나운이 들어섰다.

 

 - 사라진 낙섬을 찾아서

1961년 4월 고시에 낙섬은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는 섬(지명종류)으로 나온다. 표기 지명은 낙섬으로 낙도의 한글표기다.

낙섬은 1861년 대동여지도에 능허대 앞 원도(猿島)로 표기돼 있다. 이후 1903년 지도에는 납도(納島)로 다시 1935년 지도에는 원도로 복귀해 등장한다. 1963년 도시계획도(초안)부터 낙도(落島), 소원도(小遠島)로 병기됐다.

현재 낙섬과 연결되는 미추홀구 용현5동 금호2차아파트 앞 용현갯골 상부(육지부)는 매립 공사가 진행중이다. 1967년 항공사진까지 낙섬은 그 모습을 갖추고 있으나 이후 매립지로 둘러싸여 흔적을 찾기 힘들어 진다.

1930년대만 해도 미추홀구 중 숭의동, 용현동, 학익동은 해안선을 끼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된 해안 매립으로 미추홀구 안에서는 이곳 용현갯골만이 바다와 인접한 곳이 되고 말았다.

 

미추홀구와 해안 - 인천 지도 포털 자료
미추홀구와 해안 - 왼쪽 신흥동3가 옆으로 용현갯골과 갯골 끝 낙섬 자리가 보인다.(인천 지도 포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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