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흰나비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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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흰나비 날다
  • 이정숙
  • 승인 2021.06.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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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속 동그라미들]
(6) 교실에서 부화한 나비 알 - 이정숙 / 구산초등학교 교사, 인천교육연구소

 

3학년이 되면 과학 교육과정에 배추흰나비 키우기가 나온다. 코로나 상황에 교실 환경은 열악하고 날씨도 그리 쉽게 더워지지 않아 교실에서 나비를 키우는 게 가능할지 의구심을 가지고 배추흰나비 알을 분양 받았다.

케일 화분에 망사를 씌운 상태에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지만 김샘은 이 안에 알과 애벌레가 있음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며 돋보기를 나눠주었다. 김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데 아이들은 용캐도 애벌레를 찾아낸다.

이전에 실물보다 수십 배 크고, 움직임까지 포착한 멋진 영상으로 알과 애벌레를 실감나게 보여주었었지만 아이들은 이미 너무나 영상에 익숙했던지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수업시간 활동 중 하나였다.

하지만 케일 화분을 교실에 갖다 놓으면서 망사에 달라붙은 아이들은 돋보기를 들고 초록과 같은 색으로 붙어있는 아주 조그마한 애벌레를 찾아내는 수고를 마다 않았다. 며칠 후 애벌레는 무서운 속도로 케일 잎에 커다란 구멍을 내며 먹어치우곤 통통하게 커져만 갔다.

 

 

은결: 선생님, 여기도 있어요

김샘: 어디?

용희: 안 보이는데?

은결: (답답한 듯) 저기 저기요. 저깃잖아.

김샘: 그렇네. 꾸부러진 잎사귀 옆에.

아이1: 어!

아이2: 아!

창민: 와, 징그럽다.

진서: 신기하다!

신재: 옆에 똥 있어요. 똥. 아주 많이.

주연: 이게 똥이야?

유리: 저 똥그란게 똥인가봐.

주연: 어? 또 똥싸요.

아이1: 지저분해

윤진: 난 예쁜데. 히히

신재: 예뻐?

윤진: 귀엽잖아. 나 이거 본 적 있어. 엄마랑 주말농장 텃밭 가꾸는데 갔었어.

유리: 어? 저기저기. 도망가요.

김샘: 애벌레가 탈출했구나. 화분에 넣어주자. 자 애벌레야 이리 온! (옆에 있는 막대기로 화분 안에 넣어준다)

아이들: 꺅! 왁자지껄 (난리난리)

주말을 지나 며칠 만에 교실에 온 아이들은 아침부터 화분에 몰려들어 며칠 새 몰라보게 자란 애벌레를 보며 난리법석이다. 사흘을 오고 또 주말을 보내고 아이들이 교실에 왔다.

 

신재: 선생님, 저기 번데기가 생겼어요!

아이들: 어디? 어디?

정윤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케일 화분 쪽으로 와르르 몰려든다.

진서: 번데기가 초록색인데?

신재: 주변이 초록이니까 그렇지.

용희: 와, 애벌레가 저 속에 있나봐. 흐음, 정말 잘했어. 애벌레야.

진서: 난 세 개 찾았어

연우: 난 다섯 개.

정우: 어디? 난 안 보여. 저건 애벌레 아냐?

가은: 이제 번데기가 될거야.

아이들: 와글와글

신재: 쉿! 조용히 해!

아이들: ??

신재: 번데기가 되었을 때 시끄럽게 해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아이들: 그래, 맞아. 맞아. 쉿!

아이들은 애벌레가 몇 마리인지 번데기가 어디에 있는지 세다가 제법 과학시간에 배운 내용을 떠올리며 누구랄 것 없이 입을 손으로 가리고는 금세 교실이 조용해진다. 다른 수업들이 진행되고 쉬는 시간이 찾아오면 틈틈이, 그리고 부지런히 케일 줄기에 집을 지은 번데기와 애벌레를 세어본다. 또 한 주가 지나 주말이 찾아왔다.

 

 

연우: 어? 나비가 나왔어요.

김샘: 아까까지만 해도 번데기였는데 언제 나왔지?

아이들: 와! 나비야 나비 (나두나두.. 모여든다)

김샘: 쉿 조용히 해! 나비가 나오는데 시끄럽게 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신재: 왜 가만히 있지?

연우: 날개를 말리는 거야. 어제 배웠잖아.

아이들: 나두 알아

아이들: 어어?

윤빈: 날개가 움직여요.

연지: 에이 또 가만히 있네

윤진: 너무 쳐다봐서 부끄러운 거야.

김샘: 점심먹고 와서 날려주자.

신재: 날개를 말리는데 얼만큼 걸려요?

김샘: 글쎄 한 두 시간 쯤 걸리려나? 우리가 수업하고 점심 먹고 오면 날개를 다 말릴거야.

연지: 어어? 조금씩 움직여요.

아이들: 와글와글 어어?

점심을 먹고 집에 가기 전 창문을 열고 망사 안에서 이미 날개를 퍼득이는 나비를 꺼내 주었다.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순간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고 또 안녕을 고했다.

용희: 나비야 안녕!

신재: 어? 근데 왜 쟤는 왜 안 날아?(나비가 건물 벽을 맴돌다가 창문 위에 붙어 날아가지를 않고 있었다.)

연우: 왜 그러지? 날개가 아직 안 말랐나?

원정: 아냐, 딴 나비는 날아갔잖아. 똑같이 나비로 됐었어.

수빈: 쟤는 안 말랐을 수도 있잖아.

유리: 힘이 없나보다.

윤진: 우리랑 더 있고 싶었나?

다들 제각기 자기 취향대로 있는 지식과 상상을 동원해 나비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한다. 실제의 힘, 생생함의 힘, 생활 속에서의 힘이 멋진 영상과 값비싼 자료들 못지 않은 힘을 발휘한다. 며칠 동안 이렇게 작은 배추흰나비 한살이가 한 동안 아이들 마음에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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