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 사람이 만들거나, 사회가 변화시킨
상태바
장소 - 사람이 만들거나, 사회가 변화시킨
  • 편집부
  • 승인 2021.06.10 17: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추홀 시민로드 역사를 거닐다]
(6) 장소가 만드는 미추홀의 생태 - 김민수 / 도시상공업연구자네트워크(준) 연구원

 

- 장소 정의하기

장소는 세가지 특징이 있다. △어딘가에 실제 위치해야하고(객관적 지표) △물질적인 시각 형태를 띨 뿐 아니라, 인간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하며(사회적 관계를 위한 물리적 배경) △사람들이 그 장소에 가지는 주관적, 감정적 애착이 있어 의미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어야한다.(장소감)

장소와 대립적인 개념으로 공간이란 말도 쓰인다. 이는 추상적 개념으로 재개발 업자들이 텅빈 용기를 계량화, 표준화하듯 용적율이나 이익을 측정하여 수치화 한 것으로 합리성의 공간으로 규정할 수 있다.

또 경관이란 말은 외부자의 시선에서 한 지점에서 바라보는 지표면의 어떤 부분을 말한다. 내부 거주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장소’와 대비된다.

 

- 장소의 계보학

1970년대까지 지역 지리학과 실증주의 지리학이 유행했다. 지역 지리학은 사회과 부도(社會科附圖)처럼 각각의 지역(국가)을 경계선을 따라 차이점과 특수성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기술했다. 이는 모든 요인을 환경으로 귀속해 환경결정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증주의 지리학은 이에대한 반동으로 국지적이 아닌 어디나 적용되는 보편성을 강조했다. 공간 관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탐구하여 기업(의 이윤)을 위해 산업입지론, 중심지 이론 등을 제공했다. 장소를 특수적인 것, 단순 기술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실증주의의 반동으로 1970년대 후반 인본주의 지리학이 나왔다. 실증주의에는 사람이 없고, 있더라도 노동력으로서의 사람 뿐이었다. 인본주의에는 법칙과 수치뿐인 공간과학의 논리가 아니라 주관성과 경험이 강조된 장소가 중심으로 등장했다.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장소를 연구하자는 것이다. 장소(거주)는 실존의 조건이자 사고, 개념, 세계 내 존재 방식이다.

 

- 인본주의 지리학의 ‘장소’

인본주의 지리학의 이푸 투안(Yi-Fu Tuan)은 장소의 근간으로 ‘장소애’(토포폴리아)란 말로 사람과 장소간의 정서적 유대를 강조했다. 여기서 장소란 멈춰서 쉬고, 관계를 맺는 곳이다. 행동하고 움직이는 개방적 무대가 아니다. 추상과 경제성 합리성을 추구하지 않는, 가치가 있고 소속감을 주는 곳이다. 지리학은 인간의 감정, 의미, 경험 그리고 존재를 이해해야하며 이 연구를 통해 공간과학과 투쟁한다.

우리의 일상은 장소에서 장소로 이동하며 구성된다. 집에서 동료가 있는 회사로, 또 동호회로, 단골술집을 들렀다 다시 집으로 향하는 일상이다. 외부인의 침입에 우리의 장소를 보호하려 하며, 떠나온 장소에 향수를 느낀다. 인간의 실존에서 장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이데거는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존재의 조건은 거주(장소)이며, 거주는 인간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으로 존재의 본질이며, 거주로서의 장소는 자연적인 것과 인간 세계를 매개한다고 하였다.

인본주의 지리학에서 ‘집’은 장소의 전형이다. 애착과 뿌리내림의 가장 전형적인 장소이다. 거주, 실존, 정체성의 본질로서 집은 장소의 상징이다.

 

- 인본주의의 장소 개념의 의의와 한계

그러나 집에 대해 페미니스트의 비판적 해석도 있다. 이들에게 집은 남성중심적인 집으로 억압의 장소로서 집이다. 여성에게 집은 학대의 장소와 무시의 장소로 경험될 수 있는데, 인본주의 지리학의 장소 개념이 이 여성의 경험을 배제한 것이다. 본질을 찾다보니 정작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흑인 페미니스트인 벨훅스에게 ‘집은 저항의 장소’였다. 백인 여성보다 중층적(성별+인종)인 차별로 인해 그에게 집은 안전을 보장하는 장소, 차별이 미치지 않는 장소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특권의 장소로 기능했다.

인본주의 지리학은 장소의 개념을 진정성 개념에 토대한 본질주의와 배제적인 장소로 개념을 구축했다. 그러나 이는 장소의 농촌화, 이상화, 낭만화로 전근대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세계화로 자본과 사람의 이동이 심화되고 모든 장소가 동질화되면서 진정성이 상실되고 있다. 고속도로나 쇼핑센터 등 스쳐 지나가는 곳(무장소성)과 공항, 백화점, 가상공간 등은 일시성을 갖는 장소(비장소)로, 퇴색하는 우리 일상 중 하나가 되버렸다.

 

사람들이 만들어간 공간
사람들이 만들어간 장소
사회가 변화시킨 장소
사회가 변화시킨 장소

 

-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장소’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시공간의 압축(자본과 사람의 유동성 증가)으로 장소가 사회적으로 재구축된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 장소가 상실위기에 처했다는 말도 나왔다.

장소는 위반을 만든다. 제자리를 벗어난 행위를 했을 때 위반으로 간주한다. 이제 장소는 본질적이거나 자연적이지 않고, '위반'을 규정하는 권력이 작동하는 곳으로 변화한다.

캐나다 뱅쿠버시의 차이나타운은 백인들에 의해 '장소성을 위반한' 오염, 질병, 위험한 곳으로 규정됐었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늘자 인식의 변화(재구성)이 일어났다. 돈을 벌게해주는 곳, 이색적인 곳, 명소가 됐다.

폴란드 나치강제수용소는 소련 지배하에서는 유대인들의 참상은 가려진 채, 서유럽 파시스트의 호전성을 강조하는 장소로 꾸며졌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르 교황은 수용소에 큰 십자가를 두고 가톨릭적 화해와 용서의 장소로 기억되게 했다. 역시 유대인의 참상은 가려졌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엔젤섬은 1882년 미국 연방의회가 중국인 배제법을 통과시켜 중국인들을 추방하고 검문검색할 때 중국인 이민자 수용소가 만들어진 곳이다. 2000년, 미국은 이곳을 청나라나 중국 공산당의 위험에서 벗어나 미국을 열망하는 중국인들의 자유공간으로 그 의미를 둔갑시켰다.

탑골공원은 3.1운동의 역사를 성소화 하기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노인들의 문화, 일상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변화했다. 장소의 위반이다. 질서를 개인이 위반하면서 다른 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 '장소'의 새로운 이해

인본주의자의 역할은 장소의 개념을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인본주의자의 '장소'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바뀌고 재구성한다. 사회적으로 구성되거나, 권력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되거나 개인의 실천에 의해 규정되며 또한 역동적으로 바뀐다.

장소는 또한 사회적 과정의 결과만이 아니라 권력, 위계, 규범 등을 재배치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자본, 국가권력 등 구조적 힘과 개인들의 실천 등 미시적 힘에 의해 생성, 재구성된다. 장소는 이러한 힘들에 의해 의미가 새겨지고 물질성(물질적인 힘)을 생산한다.

장소 없이는 사회적 행위뿐 아니라 실존 조차 가능하지 않다. 장소는 사회적인 것, 경제적인 것, 문화적인 것 등을 주조한다.

그래서, ‘장소’를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나. 인본주의자의 세계 장소로 이해해야 하나, 사회적 장소 이해해야 하나. 

두가지 특성이 다 있지 않을까. 이제 이 둘을 통합적으로 사고하여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두 가지 개념을 변증법으로 바라보며.

 

 

- 장소로 미추홀 읽기

2018년 남구는 미추홀구로 명칭 변경을 통해 신화적 역사 이미지로 미추홀구가 인천의 구심점이라는 지역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

문학산은 미추홀 왕국의 발상지다. 비류의 신화적 역사를 소환하며 지역에 의미와 감정을 부여한 것이다.

최근 둘레길을 만들었다. 문화재를 연결하여 둘레 마실길을 조성했다. 벽화도 많이 조성했다.

장소가 사람들에 의해 재구성되는데, 둘레길이나 벽화들이 어느지역이나 많은데, 모방에 그쳐서는 안되겠다. 다양한 이야기, 장소감 있는, 재미있는 장소들 소개해 공감을 얻어야 한다.

주민들의 이야기, 주민들의 이상이 담겨 있으면 그 이상의 장소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추홀구에서 있는 애향심이 있는 분들이, 소속감을 갖고 활동한다면 정체성의 본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