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자유로워 진 날-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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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자유로워 진 날-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 허회숙 시민기자
  • 승인 2021.07.0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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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허회숙 / 시민기자

 

 

촉촉한 비가 내리는 아침에 길을 나선다. 소리 없이 옷깃을 적시던 비가 친구와의 약속 장소에 이를 때쯤 개인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어느 결에 저 멀리 높아지고 한결 푸르다. 뭉게구름까지 둥둥 떠가는 모습이 어린 시절 바라 본 어느 가을 하늘 같다.

오늘은 64년 전 인천여중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두 명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찾기로 한 날이다. 나는 수십 년간 감리교회를 다녔다. 그러나 교회를 나가도 마음의 평화와 은혜 보다는 무언가 비판할 거리만 눈에 뜨이곤 해 오히려 불편해지기 일쑤였다. 아마도 신앙심에서 우러나와 교회를 찾은 것이 아니고 교회 장로이신 은사님께 대한 효도 차원에서 다닌 것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많은 주저와 괴로움 속에 드디어 단안을 내리고 재작년 부활절부터 천주교 교리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 해 크리스마스에는 세례를 받고 ‘베네딕타’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러나 일 년도 못되는 사이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어느 사이 성당의 미사 참여도 흐지부지 되어버린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천주교로 개종하겠다며 평생의 멘토이신 어머님 같은 은사님을 버리고 떠난 것도 마음에 걸리는데 그나마 내가 천주교로 귀의하겠다는 말을 듣고는 잠을 못 이루고 기뻐했다며 대모가 되어 준 친구도 볼 낯이 없다. 어느 날 무심결에 동창들 단톡방에서 내 불편한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지난 달 어느 날,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살아왔던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성지 순례의 첫걸음으로 함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 가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선뜻 좋다고 대답하여 오늘의 모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5호선 충정로역에서 내려 길을 건너자 마주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붉은 벽돌로 지은 조촐한 외관이었다. 함초롬히 비에 젖은 흰 수국과 범부채꽃, 초롱꽃이 어우러진 화단이 눈인사로 우리를 반겨 준다. 노송(老松)과 꽃이 조화로운 뜨락을 거닐다가 처음으로 마주한 것이 회색 벤치에 회색 모포를 감싸고 누운 시체 같은 형상이었다. 가슴이 섬뜩하게 내려앉는다. ‘저게 뭐지?’하고 물으니 친구는 자신이 이 성지박물관을 찾으면 반드시 들리곤 하는 곳이란다. ‘노숙자 예수’(티모시 슈말츠, 2013)라는 작품이다. 이 노숙자 모습의 모포에 싸인 예수상은 작가가 마태복음을 묵상하는 가운데 이 세상에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이 단 한사람도 없기를 기원하며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깊은 감동의 여운을 안고 실내로 향한다.

비탈져 내려가는 출입구 길 옆으로는 수로가 있어 물이 졸졸 흐르고 한 곳에서는 샘물이 퐁퐁 솟아오른다. 회랑에 들어서서 처음 마주한 커다란 조각품은 ‘피에타’이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연민, 자비, 동정심을 표하는 용어로 성모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떠안고 비통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우리는 미켈란젤로가 로마 산피에트로 대성당 입구에 제작한 대리석 조각상을 대표적인 피에타 상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 마주하고 있는 작품은 흰 로봇 같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 올라타 앉아 목을 조이고 주먹으로 내리치고 있는 형상이다. 이것이 무슨 피에타란 말인가? 이 작품은 마리아의 철저한 자기연민과 자기 증오를 표현한 것이라는데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피에타: 자기증오(이용백, 2014, 피에타 3부 연작 중)

마침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개관 2주년기념 특별기획전으로 공(空)이라는 현대불교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불교에서의 공(空)은 인간을 비롯한 우주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의존하고 인연에 따라 생멸하며 늘 변화하기 때문에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다는 것으로 무아(無我), 무자성(無自性)등으로 풀이된다.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거나 끄달리지 말라는 뜻이다. 순교성인 다섯분의 위패가 모셔진 성스러운 콘솔레이션 홀에 들어서니 마침 4면 벽면에 ‘장님-서로 다른 길’(김기라, 2018)이 3채널 영상으로 상영되고 있다. 장님인양 어두운 속을 더듬어 검은 나무판 자리를 찾아 앉는다. 절규하며 싸우는 인물들을 통해 갈등과 대립, 부조리를 역동적으로 표현한 작품임을 실감한다. 사찰의 대웅전 안팎을 다양한 영상 기법으로 담아낸 명상적인 작품인데 문득 제주도 벙커에서 마주했던 고흐와 고갱전(展)의 감동이 되살아난다. 앞으로의 전시회는 이처럼 오감을 이용한 입체적 감상으로 나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천주교 성지역사박물관에서 불교미술 전시회를 여는 모습이 아름다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유(思惟)-생‧노‧병‧사(이종구, 2020-2021)
사유(思惟)-생‧노‧병‧사(이종구, 2020-2021)

지하 3층부터 시작하여 모든 전시실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으며 다니다 보니 점심시간이 지나 길 건너 조촐한 음식점으로 향했다. 오늘은 모임을 주선한 친구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감성이 풋풋했던 시절의 옛 친구들이어서인지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바로 어제 헤어진 것 같이 재미있는 이야기가 술술 풀린다.

옛날 중 1때 음악선생님이셨던 담임선생님과 남자무용 선생님이 친하셔서 종례도 안 해주러 오시고 두 분이 함께 계시곤 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재미있게 하였다. 그 당시 나는 남몰래 남자 무용선생님을 사모했는데 담임선생님께 종례 해달라고 가서 두 분이 계신 걸 보면 종례해 달라는 말을 일부러 심통스럽게 하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담임선생님이 ‘얘, 나는 네가 그렇게 말하면 무서워’ 하셨다는 이야기까지 그 시절에 얽힌 달콤 쌉싸름한 이야기들을 하며 깔깔 대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저녁나절이 된다.

신앙심 깊은 한 친구가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떼이아르 드 샤르뎅)라는 책을 내게 선물로 준다. “베네딕타, 네가 요즈음 성당을 못 나가는 것에 대해 조금도 죄책감 가질 것 없어, 이 책은 고고학자인 신부님이 전 세계로 발굴 여행을 다니다 보니 성당에서 미사를 올릴 수 없어 세계 어느 곳에서나 그 자리에서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 미사라고 쓰신 책이야. 너는 종교의 한 부분인 전례에만 빠지고 있는 거야. 성경에 대한 이해나 타인에 대한 태도가 신앙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고자 애쓰며 사는 것 아니니? 이 책 읽고 마음 편해지기 바란다. 종교는 인간을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지 억압하는 것이 아니잖아” 아직도 소녀같이 해맑은 모습의 친구가 조근 조근 말하는 목소리에 어느새 내 마음이 편안히 가라앉는다.

10여년 이상 만나지도 못하고 살았던 두 친구가 마음에 촉촉하게 스며든다.

‘그래,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낸다(一切唯心造)는 원효대사의 말씀이나 떼이아르 신부님의 말씀(세계위에서 드리는 미사)은 하나로 통하는 것이로구나.‘

노을이 곱게 물든 석양을 등지고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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