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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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
  • 김호림
  • 승인 2021.07.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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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김호림 /자유기고가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명령과 ‘땅을 정복하여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명을 다스리라‘는, 피조물에 대한 대리통치 권한을 부여하신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대리통치 위임을 받았을지라도, 인간은 자연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을 무절제하게 파괴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는 일에 대하여도 언젠가는 창조주 앞에서 수탁자로서의 잘잘못을 따져볼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을 잘 보살피고 보존하여 필요 이상의 파괴는 절대로 하지 않는 선한 관리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해석이다.

그러함에도 인간은 지구의 숲과 물과 대기를 오염시키고 지구환경을 파괴하였다. ‘문명화’와 ‘개발’이란 인간의 탐욕이 ‘자연정복’의 명분으로 정당하게 합리화되었다. 그러더니 환경론자들은 지구가 곧 종말이라도 할 듯, 뒤늦게 ‘기후 온난화’, ‘기후변화’의 ‘불편한 진실’로 연일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얼마 전 국내 어느 일간지는 ‘지구재앙을 막을 시간 30년 남았다’라는 제목의 불편한 기사로 거의 신문 전면을 할애하였다. 그 주범은 인간이 만드는 이산화탄소라는 것이다.

이제 세계는 그 공적(公敵)을 없애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동하여 고비용 저효율로 싸우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선의의 노력이, 인간의 무지와 오만으로, 오히려 환경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불편한 경우가 너무 많다. 이를 시사하는 역설적인 우화 두 편이 생각났다.

첫째는 ‘장자(莊子)의 내편(內篇) 7 응제왕’(應帝王)편의 혼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대략은 이러하다. 남쪽 바다에는 숙(儵)임금이, 북쪽에는 홀(忽)임금이, 중앙에는 혼돈이 있었다. 이 두 임금은 가끔 중앙의 혼돈을 찾아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하여 혼돈에게 뭔가 은혜를 갚으려고 두 임금이 의논한 결과, 인간의 얼굴에 있는 7곱 개의 구멍을 혼돈의 몸에 뚫어 그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먹을 수 있도록, 하루에 한 개씩 그 몸을 뚫어나가자 이레가 되던 날 혼돈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둘째 ‘걸리버 여행기’이다.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유명한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 1726)에는 ‘발니바르비’라는 나라의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국가운영방식을 일체 부정하고, 새로운 기반 위에 나라를 세우려 했다. 도시 곳곳에 학사원을 설립하여, 거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획기적인 시도와 개발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들이 손댄 어느 것 하나 성공적으로 완성된 것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나라는 비참하리만치 황폐해졌으나,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이다.

이제 그러한 예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인류가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화학비료를 포기하고 유기농으로 바꿀 경우, 저 수확 농작물로 식량을 공급해야 하므로, 지구 산림의 절반이 농경지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야생동물이 사라지는 등 지구환경 파괴를 가져오고, 인류도 1/4이 영양부족으로 쓰러지게 된다고 한다.

미국의 기후 물리학자인 프레드 싱거(Fred Singer)와 허드슨 연구원의 데니스 에이버리(Dennis Every)의 공저인 「지구온난화에 속지 말라」(Unstoppable Global Warming)에서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지구를 위한 미래 에너지> 부분을 소개하면 이러하다. ‘오늘날 지구의 동력 소비는 1년에 12조 와트에 달하고, 화석연료가 그중 85%를 충당한다. 2052년까지 세계는 1년에 10조에서 30조 와트를 소비할 것으로 본다. 이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를 사용하여 충당하려면 엄청난 양의 산림녹지가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1년간 시간당 10조 와트를 ’생물 연료‘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1,500만 평방미터의 땅이 야생지대에서 작물재배지로 개조되어야 하고, ’태양열‘로 생산하려면 22만 제곱킬로미터의 부지가 필요할 뿐 아니라 발전에 따른 부지와 전송선과 전송도로와 유지를 위한 부지가 필요하다. ’풍력발전‘을 하려면 60만 제곱킬로미터가 필요하다. 따라서 ’녹색 동력‘에 소요되는 부지를 감당하려면 남미의 평지지대에 맞먹는 2,200 백만 제곱킬로미터의 녹지가 정리되어야 하고, 중국의 1,000만 제곱킬로미터의 평야 지대와 인도의 300만 제곱킬로미터의 평지지대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한다. 과연 이것이 자연보호 정책이라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생물 연료의 경우 병충이나 질병의 위험이 있고, 태양열의 경우 날씨가 흐린 지역은 전기를 만들지 못하며, 풍력발전의 경우 바람이 없거나 바람이 너무 지나친 지역도 문제가 된다. 그리하여 추가로 수천 개의 발전소를 지어야 하고, 만일의 정전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화석연료나 원자력발전의 보조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재생에너지에는 이런 한계와 제약이 있고, 자연파괴의 위험이 따르게 된다고 한다. 장자(莊子)의 ’혼돈을 죽인 우화‘가 연상되는 경우이다.

여기에서,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실제로 지구기후 온난화와 기후변화의 원인인지에 대한 논쟁과 관련하여, 우리는 많은 ’기후회의학자‘의 반론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자연의 현상과 같이 기후도 변하는 것이 사실이다. 남극 빙핵에서 나온 80만 년 동안 중수소 데이터 온도 추정치를 조사한 고(古)기후학자들은 지구에서 빙하기와 온난기가 주기적으로 이어 왔다고 한다. 이 주기는 지구 축의 기울기와 궤도 모양의 변화인 공전과 자전, 세차운동에 따라, 그리고 지구 대기 중으로 우주 광선이 통과하는 정도와 구름의 양 사이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빙하기 사이의 간빙기(間氷期)는 1만 년에서 1만5천 년 지속하는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간빙기는 1만1천 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4천 년 후이면 지구는 오히려 빙하기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사실은 이산화탄소가 온실가스의 주범이 아니며, 기후 온난화는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기 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하다면 재생에너지 생산이란, 곧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발니바르비’라는 나라의 기상천외의 불행하고 허무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난 5월 산림청이 무모하게 숲을 밀어버린 산림정책도 그러할 것이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탄소 중립을 위해 향후 30년간 3억 그루를 베어낼 계획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30년 이상 늙은 나무들의 탄소흡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014년 영국의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30명의 과학자가 쓴 ‘나무 크기에 따라 탄소흡수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라는 제목의 논문 내용은 산림청의 주장과 상반된다. 극단적인 경우, 오래된 큰 나무 한 그루가 축적한 탄소의 양은 숲 전체의 중간 크기 나무의 탄소량과 같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조사도 2018년 산림청 산하 연구기관인 국립수목원에서 나왔다.

왜 이런 무모한 조치는 감행되었을까? 이는 숲을 탄소흡수원으로 인정하여 산림을 온실가스 저감수단으로 관리하도록 명시한 교토의정서 규정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정부는 2018년, ‘2030년까지 온실가스감축 목표 37% 중’ 기존 수단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38.3백만 톤을 산림 흡수원을 통해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최근, 미국 이산화탄소연맹 회장이며 기후변화부문의 전문가인, 그레고리 라이트스톤(Gregory Wrightstone)의 저서 「불편한 사실」 (Inconvenient Facts) 이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적 근거로 제시한 ‘60개 항목의 불편한 사실’을 통해 종말론적인 기후변화 주장이 허구임을 밝혔다. 그는 앨 고어가,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자들의 ’합의‘문서를 만들려는 시도로, 쓴 「불편한 진실」 (An Inconvenient Truth)이라는 책을 역설적으로 빗대어 책 제목을 「불편한 사실」이라 했다. 이 책 외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출간된 기후회의론자들의 책과 논문은 숱하게 많다. 그러나 기후변화 담론은 거대 미디어와 글로벌세력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소중한 도구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역설은, 이산화탄소의 농도증가는 단위농도에 따른 온실효과를 감소시킬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폭염·가뭄의 감소, 식량 생산 증가를 가져왔고, 북극곰 개체 수는 오히려 증가했고, 해수면은 북극 만년설이 녹아도 높아지지 않으며, 남극대륙 대부분은 냉각화되어 얼음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지구가 사막화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녹색지대가 증가한다는 역설이다. 온난화 관련, 기억해야 할 것은 약 12만 년 전의 마지막 간빙기는 지금보다 8℃가 더 높았다는 것이며, IPCC(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의 모델은 온난화를 최대 3배까지 지나치게 과대 예측했다는 불편한 사실 등이다.

「불편한 사실」의 저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정책이며, ’바른 정책이란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는 어떤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라 결론을 맺었다. 이 같은 「불편한 진실」과 「사실」을 보며, ’진실은 실제로 우리가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라고 한 어느 철학자의 말이 기억났다. 또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결과적으로 자연을 파괴하게 됨을 경고하는 노장(老莊)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의 지혜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이제 더는 자연을 정복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과 ‘정복’은 곧 인간의 무지와 오만에서 나온 것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창조주께서 만드신 이 하늘과 땅 그리고 온갖 피조물을 우리가 어떻게 보존하여, 누리고, 다스리고, 지혜롭게 관리해야 하는지의 신성한 의무와 무거운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도 재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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