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림동에 앉아 지구와 세계 지리를 연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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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동에 앉아 지구와 세계 지리를 연구하다
  • 허경진
  • 승인 2021.07.13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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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르는 소남 윤동규]
(14) 소남과 '곤여도설' - 허경진 / 연세대 명예교수
 [인천in]은 잊혀진 인천의 실학자 소남 윤동규의 삶과 업적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기획해 격주로 연재합니다. 특집 기획기사는 허경진 연세대 명예교수,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원재연 박사, 송성섭 박사(동양철학) 3분이 집필합니다.

 

곤여도설
곤여도설

 

소남 윤동규 종가에 다양한 책이 전해져 오는데, 그 가운데 『곤여도설(坤輿圖說)』은 벨기에 신부 페르비스트(Verbiest, F., 南懷人)가 1672년에 한문으로 지은 세계지리 책이다. 곤여(坤輿)는 수레처럼 모든 것을 싣고 있는 큰 땅이라는 뜻인데, 서양 지리학이 들어오면서 이 땅이 둥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지구(地球)라는 뜻으로 쓰였다. 도설(圖說)은 그림을 넣어서 설명한 책이니, 『곤여도설』은 지도를 비롯한 다양한 그림을 편집하여 지구를 설명한 책이다. 서양에 가보지 못한 동양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페르비스트가 흥미로운 서양 문물들을 그려서 넣었다.

성호학파가 중화(中華) 중심의 성리학만 연구하던 노론 학자들과 달랐던 가장 큰 차이는 서학(西學)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성호가 긍정적으로 천주교를 비롯한 서양 서적에 관심을 가지자 제자들도 관심을 가졌는데, 권철신은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여 순교하고, 소남은 비교적 긍정적으로 검토하였다. 순암 안정복은 비판적으로 대응하여 『천학고(天學考)』와 『천학문답(天學問答)』을 저술하였으며, 하빈 신후담은 적극적으로 비판하여 『서학변(西學辨)』을 저술하였다. 성호학파를 좌파와 우파로 나누어 분류하는 학설에 따르면 권철신이나 정약용, 이가환은 좌파, 안정복이나 신후담은 우파, 윤동규는 중도파이다.

성호학파가 서양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물론 성호의 사고 체계가 열려 있었기 때문이지만, 성호의 서재에 천주교나 서양에 관한 책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호의 아버지 이하진이 1678년 청나라에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로 다녀오면서 청나라 황제가 하사한 은으로 수천 권의 책을 사 가지고 왔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천주교 및 서양에 관한 책이었다. 성호의 서재에 가장 자주 드나들며 이 책들을 빌려보고 필사한 제자가 바로 소남 윤동규이다.

 

곤여도설
곤여도설

 

사대양 오대주에 다양한 인종이 흩어져 사는 지구

1659년 중국에 들어온 페르비스트 신부는 천주교 선교만 한 것이 아니라 천문대 일을 보면서 그 동안 잘못 만들어졌던 시헌력(時憲曆)의 오류를 바로잡았으며, 세계 지리와 지도, 천주교 등 다양한 유럽 문화를 소개한 20여 종의 저술을 남겼다. 페르비스트 신부가 『곤여도설』 첫 장에서 이 책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지형、지진、산악、해조(海潮)、해동(海動)、강하(江河)、인물、풍속、각 지방의 생산 등에 대해서는 모두 동학인 서양 학자 이마두(利瑪竇 마테오 리치)、예유략(艾儒略 알레니)、고일지(高一志 알폰소 바뇨니)、웅삼발(熊三拔 사바틴 데 우르시스) 등의 여러 학자들이 천지(天地) 경위(經緯)의 이치에 대하여 환히 알았으므로 예전에 상세한 논의를 거쳤다. 『공제격치(空際格致)』、『직방외기(職方外紀)』、『표도설(表度說)』과 같은 책들이 이미 세상에 간행된 지 오래 되었다. 이제 이 책의 내용들을 간략하게 모으고 후학들의 새로운 논의를 많이 더하여, 선현들이 찾아내지 못했던 대지(大地)의 진리를 밝혀내고자 한다.

땅과 바다는 본래 둥근 형상으로 합하여 하나의 구(球)를 이루었다. 지구(地球)는 천구(天球)의 가운데에 있으니, 비유하자면 달걀의 노른자가 푸른 껍질 안에 있는 것과 같다. ‘땅이 네모나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하늘이 둥글고 땅이 네모나다는 말은) ‘일정한 곳에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성질을 말한 것이지, ‘그 형체가 네모나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天圓地方]”는 말은 『주역』 〈설괘전(說卦傳)〉 본의(本義)에서 나왔다. 성호는 『성호사설』 권2 〈천지문(天地門)〉에서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주역』에, ‘땅의 도는 지극히 고요하며 덕이 방정하다[坤道至靜而德方]’ 했으므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설[天圓地方說]’이 생기게 된 것이다. 방(方)은 평(平)과 같으므로 네 면이 네모로 되어 있다면 한 면이 한 모가 되는 것인데, 사람이 땅을 밟고 하늘을 이고 보니, 지면은 평평하고 하늘은 둥글게 덮고 있는 듯하므로 이런 말이 있게 된 것이다.”

페르비스트는 우주 속의 지구를 설명하기 위해 중국의 옛 학자 갈홍(葛洪)의 달걀 노른자 비유를 들고, 유학자들의 천원지방(天圓地方) 설을 재해석하였다. 성호도 이를 받아들여 천원지방과 둥근 지구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설명한 것이다.

『곤여도설』은 『직방외기』를 넘어선 당대 최신의 한문 세계지리서인데, 소남도 예전에는 알레니(Giulio Alleni, 艾儒略)가 지은 『직방외기』를 읽고 세계지리를 이해하였다. 소남이 『직방외기』에서 설명한 조수(潮水)에 관해 스승에게 질문하자, 성호가 그보다 발전된 『곤여도설』의 내용을 들어서 설명하였다.

“천하 (각국의) 조수 시간의 차이는 달에 의하여 발생하고, 힘이 크고 작은 것은 태양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이 땅 위에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니 남회인(南懷仁)의 『곤여도설(坤輿圖說)』에서도 증명된다.”

소남이 이 말을 듣고 성호에게서 『곤여도설』을 빌려다가 필사한 책이 지금 종손의 집에 전하는 필사본이다. 『곤여도설』 상권에는 곤여(坤輿 지구)에서 각국의 인물에 이르기까지 15조항에 달하는 지리 통론의 내용이 서술되어 있고, 하권에는 오대주(五大洲) 각국의 풍토·인정·명승 등에 관한 인문지리 내용과 사해총설(四海總說), 해상(海狀)·해족(海族)·해산(海産)·해선(海船) 등 해양지리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소남이 이 책 마지막 장에 「서양 천문 책명(西洋天文冊名)」으로 『기하원본(幾何原本)』, 『천지의해(天地義解)』, 『건곤체의(乾坤體義)』, 『간평의(簡平儀)』,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 『측량의(測量義)』, 『천문략(天文略)』 등의 서양 천문서적을 적었고, 「산법 부 잡서(算法付 雜書)」에 『동문산지(同文算指)』, 『태서수법(泰西水法)』 등의 산법서(算法書)와 『천주실의(天主實義)』, 『칠극(七克)』 등의 본격적인 천주교 교리서 제목들이 적혀 있다. 소남과 순암이 주고받은 편지에 이 책들에 관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곤여도설』은 현재 소남 종가에 상권, 규장각에 하권만 남아 있는 국내 유일본이다.

남동문화원에서는 올해 여러 전공의 학자들이 『소남선생문집』을 8권 번역하고, 필자가 『소남선생이 필사한 곤여도설』이라는 제목으로 『곤여도설』을 번역하고 있다. 여름방학 중에 번역을 끝내고 가을에 「소남윤동규총서」 제2권으로 출판하면, 인천시민들이 둥근 지구를 연구하며 서학(西學)에 전념하였던 소남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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