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만으로 된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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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만으로 된 게 아니야!
  • 이정숙
  • 승인 2021.08.05 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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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속 동그라미]
(8) 2학년2학기 '동네탐험' - 이정숙 /인천구산초, 인천교육연구소

 

2학년 2학기에는 ‘동네탐험’ 이라는 단원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돌아보며 지리적 감각을 익히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어떤 가게가 있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단원이다. 김샘 아이들은 아직 여름 끝자락이 저만치 남아 찌는 듯한 볕이 따가운데 학교밖을 나가 동네 탐험을 시작한다. 조별로 깃발도 만들고 이름도 써서 붙이곤 학교 주변을 살피며 다닌다. 마을을 본격적으로 돌기 전 김샘은 아이들과 우리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며 동네탐험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김샘: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여러 가지 가게들도 있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단체나 관공서 등이 있지요.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많은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어요. 어떤 분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지 살펴볼까요? 자 누가 말해 볼까? 어떤 분들이 있는지?

아이들: ?!??

아이들: 음....

너무 막연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한 김샘이 이것저것 예를 들어가며 질문을 구체화시켜가고 있는데 보다 못한 지혜가 한참을 망설이다 답한다.

지혜: 의사선생님이요.

김샘: 그렇군요. 우리가 아프면 찾는 병원도 있고 그 병원에 의사선생님이 있지요. 또? 의사선생님만 있나요?

아이들: 소방서 아저씨요. 경찰이요....

김샘: 그래요. 그럼 우리 동네에서 우리가 직접 만났던 분을들 생각하면서 찾아볼까요?

성민: 김밥천국 아저씨요,

아이1: 나 어제 거기 갔었어.

아이2: 나도. 오늘도 갈 거야.

용희: 빠리빵 아줌마요,

아이들: 빠리빵이 뭐야?

석구: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은 뭐라 하지?

 

지혜의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혹은 실마리를 얻었는지 갑자기 몇몇이 답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혹은 ‘도움을 주시는 분들’ 이라는 말이 어색했는지 아마도 직업을 얘기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나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도 자신의 삶으로 가져와 조금만 접근을 달리하면 대답을 망설이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스스로들 가지를 쳐내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사회적 의미구성’이 이루어지는 순간들이다.

모둠별로 탐험 깃발을 만들어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자니 초가을 뜨거운 볕이 아직도 따갑다. 그래도 아이들은 연신 즐거운 나들이를 하며 신기한 감탄을 쏟아낸다. 마치 새로운 곳에 여행을 떠난 듯이 신기해 하며 두리번거린다.

연수: 와 저기봐. 여기!

경인: 우와! 여기 경찰서가 있어.

영민: 저기봐 저기. 빵집이.....

소희: 허, 나두 아이크림 먹고 싶다.

세희: 야아, 여기 시장이 있었어? 첨보는 거 같애!

늘 다니는 길일텐데도 아이들은 새삼 감탄을 해댄다. 일상이 수업으로 들어올 때 색다르게 접하게 되는 지점이다. 수업이란 어쩌면 일상들을 낯설고 신비롭게 느끼는 과정 어딘가에서 성장하게 되는 행위들인지도 모르겠다.

유빈: 저기가 우리 엄마가 일하는 식당이야.

송이: 어디?

아이들: 어디어디?

유빈: 저기 저 .... 어? 엄마다. (멀리 유빈 엄마가 손을 흔들고 있다)

유빈 이는 모둠 줄을 이탈하며 쪼르르 반갑게 달려가 마치 이산가족 상봉 마냥 엄마와 손을 잡고 반가워한다. 매일 보고 좀 전에 본 엄마도 뜻밖의 상황 속에서 보면 너무나 반가운 법이다. 엄마를 못 만난 아이들은 “우리 엄마는 서울에 일하러 갔어”, “ 나도 아침에 엄마 봤는데.” “저기 우리 집 있는 데로 가면 엄마 볼 수 있는데.” 라며 제각기 부러움을 쏟아놓는다. 동네를 돌다보니 지나가는 동네 어른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와 말을 건네기도 하고 또 아는 동네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지나가는 아주머니: 너네는 뭐하는거니? 소풍가니?

유빈: 어? 안녕하세요. 동네 탐험해요. 여기 깃발에 ......

상민: (유빈이를 툭치며) 어? 누구야?

유빈: 엄마 친구야. 저기 빵집에서......

아이들은 동네 길을 돌며 늘 만나던 사람들을 새삼스럽게 만나고 마을 사람들도 아이들을 새삼 만나 반가움을 더한다.

아이들: 선생님 더워요. 힘들어요. 물 먹고 싶어요.

김샘: 그래그래. 요기 공원에서 잠깐 쉴까? 자 쉬면서 우리가 본 조별로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본 가게들이나 건물들, 간판 이름들을 좀 적어보자.

 

 

김샘은 동네탐험을 마친 후 며칠이 지나 아이들에게 좀 더 조사하고 싶은 곳을 직접 방문하고 그 곳에 일하시는 분들과 인터뷰하는 과제를 안내했다. 아이들은 열심히 다니며 조사를 하고 인터뷰한 사진을 찍어 학급SNS에 올렸다.

김샘: 인터뷰한 내용을 보니 우리 동네에는 참 여러 가지 일들을 하시는 분들이 살고 계시지요? 이분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예요. 이제 여러분들을 위해 인터뷰를 해 주시고 사진도 기꺼이 찍어 주신 분들께 감사의 편지를 써 볼까?

인호: 의사선생님께

제가 어려서부터 침도 놔주시고 제 병을 고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돌봐주셔서 이렇게 잘 크게 되었어요. 제 동생도 이 병원을 다니는데 계속 저희들을 치료해 주시고 수고해 주셔요.

주연: 빵집 아주머니

저는 빵을 참 좋아하는데 이 빵집에 와서 빵을 많이 먹게 되어서 좋아요. 들를 때마다 맛있는 빵도 많이 주시고 덤으로도 주셔서 참 맛있게 먹었어요.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맛있는 빵집이 있어서 참 즐겁고 아주머니가 자랑스러워요.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진료해 주신 의사 선생님, 매일 들른 슈퍼마켓 아주머니, 빵집 아저씨, 아파트 경비아저씨, 화장품 가게 사장님, 마을 도서관 사서 선생님, 경찰아저씨 등등께 열심히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했다. 마음을 전한 아이들과 함께 사진 속 동네 분들은 활짝 웃고 있었다. 처음 인터뷰 때에는 사진을 안 찍으시겠다고 했던 분들이 아이들 편지를 들고 기꺼이 찍어주셨다고 한다. 편지 속 ‘동네를 체험’한 아이들의 ‘감사합니다’에는 일을 하시는 분들에 대한 그저 그런 관용표현의 ‘감사함’에 그치지 않은, 수고로움에 대한 체험의 흔적들이 묻어 있었다.

김샘은 문득 얼마 전 읽은 책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슬며시 마음 속으로 말을 건넨다. 너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야. 너를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태어나고 학교를 잘 다닐 수 있는 좋은 유전자와 노력을 하려는 의지도 있으니. 그리고 기억하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살고 있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있단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혼자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훗날 어른이 되어 네 삶을 열심히 살고 있을 때에도 ‘혼자의 노력과 실력으로 성공한 게 아니야.’ 라는 생각을 놓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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