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안 양탄자와 다섯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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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안 양탄자와 다섯 가지 질문
  • 최원영
  • 승인 2021.08.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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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12화

 

삶이란 우리 스스로가 정답을 만들어가는 여정입니다. 그런데 그 여정이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때로는 참혹할 정도로 아픈 일도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답 찾기를 포기하고 세상이 정해준 정답에 맞춰 사는지도 모릅니다.

힘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슬플 때마다 이렇게 묻곤 합니다.

“사는 게 뭔지?”

“인생이 뭐길래?”라고 말입니다.

이런 질문이 떠오를 때는 힘겨운 일로 길을 찾지 못할 때입니다. 이렇게 삶은 고통스러운 일로 나를 에워쌀 때가 있습니다. 혹자는 이것을 ‘고통’이라고 하고, 혹자는 이것을 ‘굴레’라고도 합니다.

학창시절에 한 번쯤 읽어본 소설 중에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가 있을 겁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고뇌를 짊어진 필립이라는 한 젊은이가 인생과 사회에 눈을 떠가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간략히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을 잃은 필립은 목사인 큰아버지 집에서 성장합니다.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진 필립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곤 합니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필립은 무척 힘들어합니다.

큰아버지는 그가 옥스퍼드대학 신학과에 들어가 성직자의 길을 가기를 바랐지만 거절하고, 독일 유학을 마치고 공인회계사 사무실에서 잠시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가족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파리로 그림 공부를 하러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예술인들과 사귀며 보헤미안처럼 생활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만난 크론쇼와 친해졌고, 그에게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크론쇼는 대답 대신에 페르시안 양탄자를 필립에게 선물합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필립은 의학공부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카페 여종업원 밀드레드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사악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필립을 이용만 하고 그의 주위를 오가며 그의 영혼까지 흐려놓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모든 돈과 정성까지 바치고 맙니다.

심한 배신감과 절망감에 빠져 살던 어느 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려 깊은 노라의 사랑이 그리워 그녀를 찾아가지만 노라는 이미 다른 남자와 약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학비가 없어 학업까지 그만두고, 하숙비조차 없어 어쩔 수 없이 노숙자로 전락한 그를 받아준 사람은 필립이 실습하던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애설리와 그녀의 가족들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큰아버지로부터 약간의 유산이 들어와 무사히 학업은 마칠 수 있었습니다. 졸업 후 어느 시골병원에서 근무했는데, 필립의 실력을 인정한 그곳 원장이 동업을 제안하지만 필립은 여행을 다니고 싶어서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 후에야 병원에서 환자로 있었던 애설리의 딸인 샐 리가 자신을 오래 전부터 좋아했다는 점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 진실한 사랑을 키워나간 끝에 결혼합니다. 그때 필립은 깨닫습니다. 그동안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무늬를 짜고 싶어 안달을 부렸지만, 정말 아름다운 무늬는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공부하고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죽어가는 이 지극히 평범한 삶이 최고의 삶이라는 점을 깨달은 것입니다.

드디어 필립은 병원 원장에게 아내와 함께 이제 떠나겠다고 통보를 합니다.

긴 소설을 이렇게 짧게 요약해놓으니 궁금한 점이 있을 겁니다.

특히 파리에서 알게 된 크론쇼에게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가 대답 대신에 왜 페르시안 양탄자를 선물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명작에게 길을 묻다》(송정림)에서 저자는 이 궁금증을 이렇게 풀어냅니다.

“나중에야 그 양탄자의 의미를 안다. 인생이란 페르시안 융단 같은 것으로 아무 의미도 없는 것,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심미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양탄자의 무늬를 짜는 직조공처럼 사람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 태어나 성장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먹고 살기 위해 일하다 죽는 무늬, 그게 인생임을 깨닫는 것을 말이다.”

더 가지려고 애쓰고, 더 오르려고 애쓰며 살았지만 결국에는 지극히 단순한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임을 깨닫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요?

그걸 깨닫게 해주려고 크론쇼는 필립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직접 말해주는 대신 양탄자를 선물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제 나 자신이 필립이라고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필립에게 있어 굴레, 즉 장애는 무엇이었을까요?

태어나면서부터 고아가 된 필립은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불구인 몸 때문에 받은 놀림으로 얼마나 큰 상처를 입고 살았을까요. 어쩌면 그것이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예술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져 파리로 떠난 것은 아니었을까요?

다시 말씀드리면, 그런 트라우마가 오히려 그를 소생시킨 힘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밀드레드라는 카페 직원에게 집착할 정도로 맹목적인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불행하게도 퇴폐적인 여인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은 그녀를 소유하고 싶은 집착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이 아픔과 절망으로 인해 필립은 순수하고 성실하고 가장 평범한 여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여인임을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화려하고 찬란한 빛깔만이 최고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그가 지극히 소박하고 평범한 단색이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 남들로부터 박수와 갈채를 받는 삶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들과 진실한 우정을 쌓으며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해나가는 지극히 평범한 삶이 가장 위대한 삶이란 점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필립은 다리는 저는 불구의 몸이어서 놀림감이 되었고, 그것이 자신의 트라우마가 되었을 겁니다. 자신이 성장하는데 커다란 장애라고 여겼을 겁니다. 그러나 자신이 불구라는 신체적 결함을 받아들이자 미적 감수성은 오히려 예민해졌고 정교해졌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트라우마가 있었기에 그림을 배우겠다며 파리행을 결심하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크로숀로부터 페르시안 양탄자를 얻게 되고, 이것이 훗날 필립의 깨달음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의 굴레 때문에 절망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깨달음을 얻게 되고, 새로운 기회를 손에 쥐기도 합니다. 이것이 삶입니다. 삶은 이렇게 굴레 굴레마다 고통과 즐거움, 그리고 즐거움과 고통을 오가며 우리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합니다.

엄청난 시련을 모두 겪은 후 필립은 이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필립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순수하고 소박한 여인인 샐리에게 청혼합니다. “나와 결혼해주겠소, 샐리?”

필립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숱한 욕망과 그 욕망을 이루지 못해 처절한 아픔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한 삶이 가장 행복한 삶임을 깨달은 겁니다. 그리고 필립은 샐리와 함께 지극히 평범한 삶을 그때부터는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겁니다. 페르시안 양탄자가 가르쳐준 대로 말입니다.

《명작에게 길을 묻다》에서 저자는 자신의 깨달음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굴레에 얽매이지 않은 삶이 있을까. 우리 모두도 굴레, 족쇄를 갖고 산다. 푸른 창공을 날아가고 싶지만 나를 묶는 족쇄들이 있다. 자유의지가 꿈이라면 내 발목을 묶는 굴레는 현실이다. 하지만 강석경의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족쇄가 있기에 나 비상할 수 있고,

슬픔이 있기에 나 고양될 수 있고,

패배가 있기에 나 달릴 수 있고,

눈물이 있기에 나 여행할 수 있으면.’

어느 날,

오래 품은 꿈이 실현되어 정말 푸른 하늘을 날 때,

그때 족쇄로 묶였던 시절이 있었기에

자유를 절감하게 되리라.

그래서 더 높이 더 멀리 더 자유롭게 날아가리라.

결국 굴레가 없다면 비상도 없다.

슬픈 시절이 있었기에 그 후에 오는 기쁨이 더 크고,

패배의 시간이 있었기에 승리하기 위해 더 달리게 되고,

눈물의 세월이 있었기에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래서 굴레의 슬픔, 패배와 눈물은 곧 인생 수업료다.

인생의 길목마다 수많은 만남이 있고, 그 만남이 즐거움과 성장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통과 슬픔을 주기도 합니다. 이것이 굴레입니다. 필립에게 슬픔은 신체장애이었고, 부모님을 일찍 여윈 것이었으며 사악한 여인에게 영혼까지 잃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절망이 있었기에 깨달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몰랐던 지극히 평범한 삶이 최고의 삶임을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이제 조용히 생각에 잠겨 다음의 다섯 가지 질문에 답을 찾아볼 시간입니다.

혹시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아침에 눈을 뜨면 나갈 곳이 지금 있나요?

힘겨울 때 내 말을 들어줄 친구가 지금 있나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나요?

일이 끝나면 돌아갈 집이 지금 있나요?

만약 이 다섯 가지 질문에 ‘있다’라는 답을 하시는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은 행복하신 분들이고,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작가가 말하는 인생의 의미, 즉 페르시안 양탄자가 던지는 의미를 이미 깨닫고 계신 겁니다. 그저 양탄자의 한 올 한 올처럼 서로 인연을 맺고, 그 인연에서 사랑을 나누는 지극히 평범한 삶이 최고의 삶이고,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행복하려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삶이란 점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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