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남, 동양 음악의 깊이를 깨치다
상태바
소남, 동양 음악의 깊이를 깨치다
  • 송성섭
  • 승인 2021.09.14 07: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7) 소남의 음악 논설(1) - 송성섭 박사(동양철학)
[인천in]은 잊혀진 인천의 실학자 소남 윤동규의 삶과 업적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기획해 격주로 연재합니다. 특집 기획기사는 송성섭 박사(동양철학)와 허경진 연세대 명예교수가 집필합니다.

 

선궁구변동의변1
음악에 관한 소남의 글 '선궁구변동의변(旋宮九變同異辨)‘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소남 윤동규 선생은 사후에 『소남선생문집』을 남겼는데, 이 가운데 특이하게 음악에 관한 글들이 들어있다. 「잡저(雜著)」에 수록되어 있는 ‘종률합변의(鍾律合變疑)’, ‘종률변(鍾律辨)’, ‘선궁구변동이변(旋宮九變同異辨)’이 바로 그것인데, 음악에 관한 전문적 식견이 없으면 도저히 쓸 수 없는 글들이다.

소남 선생이 이러한 글들을 쓸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아마 두 가지 사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나는 성호 선생과의 관계이다. 성호는 과거와 출세에 뜻이 없었으므로,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그래서 전기(傳記)ㆍ자집(子集)ㆍ시가(詩家)ㆍ회해(詼諧)나 혹은 웃고 즐길 만한 것을 붓가는 대로 적은 것이 많았으며, 이를 책으로 묶었는데 이것이 바로 『성호사설(星湖僿說)』이다. 백화점식의 자질구레한 글이라는 의미인데, 매우 겸손한 표현이다. 『성호사설(星湖僿說)』은 천지문(天地門), 만물문(萬物門), 인사문(人事門), 경사문(經史門), 시문문(詩文門)으로 편집되어 있으며, 여기에 음악에 관한 글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속악에 낙시조(樂時調)로 하림(河臨)ㆍ최자(嗺子)ㆍ탁목(啄木) 등 곡조가 있다. 신라사(新羅史)에 ‘왕이 가야(伽倻) 사람 우륵(于勒)을 하림궁(河臨宮)으로 불러보고 하림(河臨)ㆍ수죽(潄竹) 두 곡조를 연주하게 했다.’ 하였으니, 이것이 동방 악조(樂調)의 시초이다. 지금의 《악범(樂範(『악학궤범』을 말함)》에는 일명 청풍체(淸風體)라고 하며, 탁목(啄木)을 또한 하림이라고 일컬으니, 모두 우륵의 여류(餘流)이다. 오늘날의 정과정(鄭瓜亭) 계면조(界面調)는 애상에 젖어서 사대부로서 배워 익히지 않는 이가 없다.”

위의 글을 통하여 우리는 성호 선생이 『악학궤범』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악학궤범』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하림조(河臨調)ㆍ수죽조(潄竹調)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성호사설』에는 신라금(新羅琴), 필률(觱栗), 생(笙) 등의 악기에 관한 글도 있고, 『고려사』 악지(樂志)에 등장하는 무애(無㝵), 동동곡(動動曲), 무고(舞鼓) 등에 관한 설(說)도 있으며, 조선 시대에 사용되었던 몽금척(夢金尺)ㆍ수보록(受寶籙)ㆍ근천정(覲天庭)ㆍ수명명(受明命)ㆍ하황은(荷皇恩)ㆍ하성명(賀聖明)ㆍ성택(聖澤)ㆍ육화대(六花隊)ㆍ곡파(曲破) 등의 악곡도 등장한다. 이를 통해 성호의 음악에 관한 식견이 매우 광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채원정이 지은 음악이론서인 『율려신서』도 『성호사설』에서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율려신서』는 세종 시대에 악론을 정비하거나 악기를 제작할 때 중요하게 참고하였던 서적 중 하나인데, 이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어려운 서적이었다. 그 때문일까? 『성호사설』에는 음악 이론에 해당하는 악률(樂律)에 관한 글도 있다.

“악학(樂學)은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 한 곡조 일곱 가지 소리에 오로지 서로 범릉(犯陵)함을 금지하며, 감하는 것은 있고 보태는 것은 없으나, 율(律)로 성(聲)을 조화하는 데 이르러서는, 뒤죽박죽 흐트러지니 범릉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부득이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또 반성(半聲)을 쓰는데, 황종(黃鍾)의 수가 81이라면 거기서 반을 쓰는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반을 쓰고서 억지로 이름하여 황종이라 하면 되겠는가? 이밖에도 범릉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많은데, 따로 저서(著書)가 있으니 더 말하지 않겠다.(중략)”

성호가 음악에 관해 다양한 글을 남겼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소남 또한 음악에 관해 정통하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호 선생이 쓴 글을 원문과 대조하고, 취할 만한 점이 있는지 평가하였으며, 착오가 있는 부분이 있으면 증거를 제시하고 수정하여 성호 선생의 글을 완성하였던 이가 바로 소남이었기 때문이다.

소남이 음악에 관한 글을 쓸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으로 『태현경(太玄經)』을 들 수 있다. 소남의 스승인 성호도 물론 『태현경(太玄經)』에 관한 글을 『성호사설』에 남긴 바 있지만, 대부분 729찬(贊)에 대해 해석하는 글이었다.

“어린아이는 울어도 사흘 동안은 목이 쉬지 않는다[嬰兒于號 三日不嗄].”는 것은 마음이 화평하다는 뜻이요, “거미는 아무리 힘써도 누에가 만드는 비단만 못하다[蜘蛛其務 不如蠶緰].”는 것은 사람에게 유익이 없다는 뜻이요, “소는 뿔이 없고 말에 뿔이 났다는 것은 고금에 없는 일이다[童牛角馬 不今不古].”라는 것은 하늘의 떳떳한 이치가 변해진다는 뜻이요, “잘 달리던 말이 머뭇거리면 그 마부(馬夫)를 다시 바꿔야 한다[駟馬跙跙 而更其御].”는 것은 마부를 바꿔야 좋다는 뜻이다.

당대에 『태현경(太玄經)』에 관한 한 소남보다 앞선 사람은 없었다. 『태현경(太玄經)』은 기본적으로 천문학에 기반하여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동시에, 음악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관시켜 서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현수(玄數)」라는 곳에서는 “소리(聲)는 10간(干)에서 생기고, 율(律)은 12지(支)에서 생긴다.(聲生於日, 律生於辰)”고 말하고 있다. 10간(干) 중에서 갑을(甲乙)은 각(角, 서양의 미에 해당)이 되고, 병정(丙丁)은 치(徴, 솔에 해당)가 되고, 경신(庚辛)은 상(商, 레에 해당)이 되고, 임계(壬癸)는 우(羽, 라에 해당)가 되고, 무기(戊己)는 궁(宫, 도에 해당)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12율려(律呂)에 대해서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황종(黃鍾)은 임종(林鍾)을 낳고, 임종은 태주(太蔟)를 낳고, 태주는 남려(南呂)를 낳고, 남려는 고선(姑洗)을 낳고, 고선은 응종(應鍾)을 낳고, 응종은 유빈(蕤賓)을 낳고, 유빈은 대려(大呂)를 낳고, 대려는 이칙(夷則)을 낳고, 이칙은 협종(夾鍾)을 낳고, 협종은 무역(無射)을 낳고, 무역은 중려(仲呂)를 낳는다.”

동양의 음악론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에게는 매우 난해한 문장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소남선생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음악에 관한 글들은 동양 음악론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알아야 비로소 접근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소간 긴 우회로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종률합변의1
소남의 ‘종률합변의(鍾律合變疑)’
종률의1
종률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