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림동에 앉아서 하늘과 땅의 지도를 꼼꼼이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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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림동에 앉아서 하늘과 땅의 지도를 꼼꼼이 그리다
  • 허경진
  • 승인 2021.11.02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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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르는 소남 윤동규]
(20) 윤동규의 지도 - 허경진 / 연세대 명예교수
[인천in]은 잊혀진 인천의 실학자 소남 윤동규의 삶과 업적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기획해 격주로 연재합니다. 특집 기획기사는 허경진 연세대 명예교수와 송성섭 박사(동양철학)가 집필합니다. 

 

실학자 소남 윤동규의 대표적인 저술 가운데 하나가 「사수변(四水辨)」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역사에 어두운 현실을 탄식하여, 고대사에 등장하는 자수(紫水), 패수(浿水), 열수(冽水), 대수(帶水)의 위치를 고증하여 우리의 옛 영토를 밝혀내려고 「사수변(四水辨)」을 저술하였던 것이다. 소남 종가에 북계도(北界圖)라고 명명한 지도가 있는데, 수많은 산줄기와 강줄기를 그리고 공백에는 자세한 고증을 덧붙였다.

 

북계도, 75x110cm. 많이 훼손된 상태인데, 하루빨리 복원하여 연구할 필요가 있다.
북계도, 75x110cm. 많이 훼손된 상태인데, 하루빨리 복원하여 연구할 필요가 있다.

 

성호 이익의 실학적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성호사설』은 분량이 방대하여 20세기초까지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일부 유통되었는데, 뒷날 연희전문학교 교수가 된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가 이본들과 교감(校勘)하여 1929년 문광서림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다. 정인보가 이 책의 서문에서 

 

선생이 돌아가신 뒤에 뛰어난 분들이 그 궤범을 이어받았다. 안순암(安順菴)은 『동사강목』을 지어 열조의 일을 꿰어 기록하였는데 의법(義法)에 가장 엄정하였고, 윤소남(尹邵南)은 「사수변(四水辨)」을 지어 실제를 징험하고 진리를 구하였는데, 모두 선생의 가르침에 근원을 둔 것이다.

 

라고 소개하여, 순암과 소남의 학문이 『성호사설』의 궤범을 이어받았다고 평가하였다. 소남의 문집이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정인보는 아마 문집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을텐데, 성호나 순암의 문집에서 소남이 「사수변(四水辨)」을 완성하기 위하여 이들과 주고받은 편지만 읽어보고도 “실제를 징험하고 진리를 구하는[徵實求是]” 학자적인 태도를 인정한 것이다. 소남의 “징실구시(徵實求是)”야말로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학문하는 목적인 실사구시(實事求是)와 같은 뜻이다.

 

별자리 지도를 입체적으로 그리다

실제를 징험하고 진리를 구하는[徵實求是] 연구방법 가운데 하나가 추상적 이론이나 탁상공론보다 지도를 그려서 시각적으로 설명하고 입증하는 방법이다. 그가 필사하여 연구한 페르비스트 신부의 세계지리서 『곤여도설(坤輿圖說)』도 도설(圖說)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도를 비롯한 다양한 그림을 편집하여 지구를 설명한 책이거니와, 소남 종가에 다양한 지도가 아직도 남아 전하고 있다.

하늘의 별자리는 지상에서의 거리가 서로 다른 우주 공간에 펼쳐져 있기 때문에, 종이 한 장에 정확하게 그릴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점과 해결책을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지적하였다.

 

지금 서양에서 나온 방성도(方星圖)를 보면 중국의 것과 다르다. 더러는 연결한 선만 있고 별은 없는데 이는 그곳에서 망원경으로 본 것이다. 금성(金星)이 달보다 크다든가 태양이 지구보다 더 크다든가, 은하는 별의 빛이라든가 금성과 목성(木星)에 귀가 달렸다든가 하는 따위는 눈만 가지고는 알 수 없는 것이며, 터무니없는 말이 아닌즉 그대로 따라야 한다. ... 인간은 대지의 한쪽 구석에 살고 있으니 전체를 다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아래쪽에 또 한 폭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이렇게 견문이 좁았다. 천체는 원형인데 그림은 평면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평면도는 어쩔 수 없이 중간 부분은 촘촘하고 바깥 부분은 엉성하게 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방도(方圖)는 여섯 폭으로 나누었다. 대체로 일반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란 사방의 일면에 불과하다. 하늘 동서의 적도(赤道)가 3백 60도라면 남북도 마찬가지인데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상하ㆍ좌우로 90도에 불과하다. 이를 분리하여 90도씩 나누어서 방도는 상하를 두 폭, 사방을 네 폭으로 만들어 거리에 따라 촘촘한 상태가 일정하고 틀리지 않게 하였으니, 그 착상이 매우 세밀하다.-『성호사설』 권2 「천지문」

 

소남이 필사한 『곤여도설』 마지막 장에 자신이 성호에게 빌려서 필사하여 소장하고 있던 양마락(陽瑪諾, Emmanuel Diaz. Junior)의 『천문략(天問略)』과 민명아(閔明我, Philippus Maria Grimardi)의 『방성도(方星圖)』 목록이 실려 있는데, 페르비스트 신부의 조수인 민명아 신부가 제작한 방성도에 모두 1,876개의 별이 실려 있다. 소남 종가에는 방성도 여섯 장이 다 남아 있어서 사방과 상하를 다 이어주면 주사위 모양의 우주공간을 재구성할 수 있다. 성호가 1755년 정현로에게 보낸 편지에 “방성도(方星圖)는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지도이니 찾아서 돌려주기 바랍니다.”라고 재촉한 것을 보면, 성호의 방성도는 이때 없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방성도
윤동규가 그린 방성도 6장

 

바깥 세상에 관심을 가져 천하의 지도를 그리다

소남의 서재에 전하는 지도들은 모두 그가 다른 책들을 보고 베낀 것이다. 『천하총도(天下總圖)』라는 뭉치에는 중국 전역 지도인 「천하총도」를 비롯해 북경을 중심으로 한 하북 지역의 「북직예도(北直隸圖)」, 남경을 중심으로 한 강남 지역의 「남직예도」에서 운남성, 귀주성의 지도에 이르기까지 19매의 지도가 한데 묶어져 있다.

 

사진3. 천하총도 외 지도일괄, 26x24cm
사진3. 천하총도 외 지도일괄, 26x24cm

 

윤동규가 보던 책들을 들치다보면 편지나 제문, 방문 등이 끼어 있기도 한데, 『서경(書傳)』 속에 20여 매나 되는 만주와 일본 지도가 끼어 있는 것은 특별한 경우이다. 구겨지지 않게 잘 보관하려고 두툼함 책에 넣어두었던 듯한데, 그 덕분에 다른 지도들과는 달리 마치 어제 그린 듯 글씨 한 자 선 하나가 또렷하다.

2매로 구성된 『왜국지도(倭國地圖)』에는 “강항(姜沆)의 수은집(睡隱集) 간양록(看羊錄) 도본(圖本)”이라고 써서 출전을 밝혔는데, 같은 형태이지만 원본보다 훨씬 자세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왜국지도』 일부분
『왜국지도』 일부분

 

나머지 20여 매는 동쪽 두만강과 백두산부터 서쪽 산해관(山海關)까지 만주와 요동반도 일대의 행정구역과 군사 요새들을 그린 지도인데, 「장백산도(長白山圖)」, 「봉천장군 소속형세도」, 「영고탑장군 소속형세도」, 「흑룡강장군 소속형세도」, 「천산도(千山圖)」 등의 제목에 보이듯이 백두산과 압록강, 두만강 주변의 지도들이 중심이다. 두세 장에 나누어 그렸기 때문에, 일련번호를 확인하여 짝을 맞춰 보아야 한다. 원본을 사진이라도 찍은 듯 꼼꼼하게 베껴낸 이 지도들을 다 연구하면 자수(紫水), 패수(浿水), 열수(冽水), 대수(帶水)의 위치를 고증한 그의 논문 성과가 구체적으로 입증되리라 기대된다.

 

『장백산도』에 토문강, 혼돈강 등의 강줄기가 보인다.)
『장백산도』. 토문강, 혼돈강 등의 강줄기가 보인다.)

 

봉천장군 소속형세도. 상단에 사방 거리를 기록하고, 우측 하단에 조선까지의 거리를 기록했다. 강줄기 열 개의 이름이 보인다.
봉천장군 소속형세도. 상단에 사방 거리를 기록하고, 우측 하단에 조선까지의 거리를 기록했다. 강줄기 열 개의 이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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