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봉도 꼬꼬닭 흰돌이의 시한부 이야기
상태바
장봉도 꼬꼬닭 흰돌이의 시한부 이야기
  • 문미정
  • 승인 2021.11.18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봉도에서 아이들과 생활하기](32)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순한 닭 - 흰돌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부부가 인천 앞바다 장봉도로 이사하여 두 아이를 키웁니다. 이들 가족이 작은 섬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인천in]에 솔직하게 풀어 놓습니다. 섬마을 이야기와 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일상을 이야기로 만들어 갑니다. 아내 문미정은 장봉도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가끔 글을 쓰고, 남편 송석영은 사진을 찍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흰돌이를 위해 별도로 먹이를 먹이는 모습
앞이 보이지 않는 흰돌이를 위해 별도로 먹이를 먹이는 모습

 

장봉도에 와서 살면서 생긴 동물가족들로 인해 매일 매일 에피소드가 새롭다. 지금 여기 장봉도엔 유산양 한쌍과 애완토끼와 몇 마리의 닭이 있는데... 요즘 나를 제일 재미있게도 하고 힘들게도 하는 건 닭들이다. 작년에도 닭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그만큼 닭을 키우면 만나는 경험은 새롭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암탉 세 마리가 전부였다. 세 마리밖에 안 되기에 이름도 지어주고 보듬어주고, 안아주며 교감으로 키웠다. 그중 흰돌이라는 닭은 세 마리 중 제일 조용하여 소리를 내지 못하나보다 생각할 정도였다. 장애인 시설에 근무하는 지라 소리 내지 못하는 흰돌이에게 더욱 애착이 갔었고 성격도 가장 순하고 사람을 잘 따라서 제일 예뻐하던 닭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순둥이 흰돌이가 관상 가치가 있는 스플레쉬 아메라우카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번식을 해보자는 욕심이 생겼고, 품종이 좋은 종란을 구해 흰돌이를 상자 안에 가두어두고 강제로 알을 품게 했다. 그러다가 결국 실패하여 이번에는 다른 숫컷 종계를 데려와서 신랑을 만들어 주었다. 흰돌이의 남편은 블랙 아메라우카나라는 종으로 굉장히 우람하고 좋은 닭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흰돌이가 봄부터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남편이 이상한 말을 한다.

흰돌이가 앞이 안 보이는 것 같아

맙소사! 언어장애는 그렇다 치지만 시각장애라니!

그래도 먹기만이라도 잘 먹으면 그리 걱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점점 기력이 쇠한 흰돌이는 입 벌려 숨쉬기를 하며 힘겹게 여름을 보냈다. 양계장을 운영했던 친구에게 전화하였더니 닭의 가치가 사라졌으니 조용히 묻어주라 했다. 나는 도저히 그냥 죽게 놔둘 수는 없어서 가지고 있는 가축용 약품을 사용해 보기도 하고 사람 약이 효과가 좋다고도 하여 사람 약을 먹여보기도 했다. 그래도 호전이 되지 않아 급하게 운서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진료를 거부당해 병원 앞에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

결국은 미추홀구에 있는 조류전문 병원을 찾아 한 달 식비를 내고 엑스레이와 피검사를 하고 약을 받아왔다. 병원에서는 상태가 좋지 않아 갑자기 죽어도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라면서 늘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당부를 해주셨다.

 

많이 힘들었을 땐, 이리 닭을 안고 먹이를 주기도 했다.
많이 힘들었을 땐, 이리 닭을 안고 먹이를 주기도 했다.

 

흰돌이는 그렇게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하여 5월부터 8월까지 긴긴 치료기를 보냈다. 나는 그 사이 닭을 간호하는 것이 힘들었는지 살이 5키로나 빠졌다. 9월이 되면서 약간 서늘한 바람이 불자 입 벌려 숨쉬기도 없어지고 살도 조금씩 찌기 시작한 흰돌이는 11월인 지금까지 살아있다. 몸무게도 많이 늘어서 우리 집의 닭 중에서는 제일 무겁고 닭장을 갈 때마다 모이를 먹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대견하다. 앞도 보이지 않는 닭이 모이 자리, 물자리, 잘자리를 기가막히게 찾아서 생명을 이어간다. TV동물농장에서도 관심을 갖고 취재를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불사신에 가까운 꼬꼬닭이다.

 

스스로 먹는 법을 연습하는 흰돌이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지인이
스스로 먹는 법을 연습하는 흰돌이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지인이

 

수묵화로 국화를 그려놓은 듯한 모습을 하는 흰돌이는 봄부터 아팠지만, 국화의 계절 가을을 넘어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내년 봄에는 부디 마당을 맘껏 뛰어다니길…….

좋아하는 꽃이며 블루베리며 앵두를 맘껏 따먹기를.

그렇게 또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우리와 같은 시간 속에 지내주기를.

 

한송이 국화꽃 처럼 곱디고운 닭, 흰돌이
한송이 국화꽃 처럼 곱디고운 닭, 흰돌이

 

점점 차가워지는 겨울바람이 우리 집 근처에서는 조금 누그러들기를 바라며 겨울 바람에게 작은 부탁 하나 해보는 그런 겨울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