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슈퍼스타 감사용 : 함께 시작할 줄 아는 용기 - 장한섬 / 홍예門문화연구소 대표
패배주의 아닌 패배를 수용하는 슈퍼스타
인천을 연고로 한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꼴찌를 한다. 승패가 갈리면 패배 원인을 찾기보다 희생양을 찾는 게 집단광기의 습성이다(영화 [파이란]은 조직의 생존을 위해서 이강제를 살해한다). 그런데 영화 속 삼미 슈퍼스타즈는 꼴찌를 했음에도 희생양 만들기 대신 패배를 받아들이고, 다음 시즌 승리를 위해서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인천 바닷가를 팀원들이 함께 웃으면서 달린다.
‘인천, 영화로 읽다’ 연재(영화 8편) 중 [슈퍼스타 감사용]만이 유일하게 긍정적인 물(雨: 하늘에서 내리는 물)의 이미지를 창조한다.
나르시스 넘어 자기극복을 하는 보통 사람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한 나머지 물속에 빠져 죽는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는 나르시스와 같은 장면이 연출되나 감사용은 물에 비친 삼미 슈퍼스타즈 마스코트 발견 후 몸을 돌려 선수 선발 광고를 읽고 도전한다.
영화 개봉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로부터) 2001년 IMF체제 졸업(차관 조기상환)과 2002년 월드컵 개최 성공(4강 신화)으로 국내 정치는 안정과 함께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다. 부연하면,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반세기 만의 정권교체는 변화와 모험의 시기였고,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은 진보정권의 연장과 함께 탈권위주의를 내세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폭력성은 신자유주의로 탈색하면서 부드럽고 세련된 (노동유연화와 글로벌스탠다드)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노숙자로 내몰았고, ‘루저’라는 단어가 이 즈음 등장한다(상대적으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MBC 다큐멘터리 ‘성공시대’가 방영된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성공의 세계관을 대박과 패권이 아닌 도전과 모험이 가능한 자기극복의 세계관으로 전환시킨다. 그래서 성장주의와 성공신화를 위한 주인공과 조력자를 조명하는 대신 경기의 패배가 인생의 패배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승자독식의 패권주의 대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보여준다(아들이자 동생이 패전투수 전담이 되어도 감사용의 어머니와 형은 가족으로서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보낸다).
인천을 배경으로 하는 대부분의 영화가 어둡고, 음습하고, 파괴적인 경향이 강한데 비해, [슈퍼스타 감사용]은 인천 자유공원에서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맥아더 동상(반공주의의 증오와 혐오)을 비추지 않고 연인의 인연이 생성되는 곳으로 장소의 의미를 다르게 구성한다. 그리고 밤에 내리는 비 또한 두 연인을 맺어주는 촉매로 배치한다(영화 [차이나타운]은 정반대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슈퍼스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자기 삶으로부터 자기소외를 시키지 않는다. 즉, 그들은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최고의 프로 대신 최선을 다하는 프로를 위하여
영화는 서울 연고팀 OB베어스와 인천 연고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패전전담 투수 감사용은 생애 첫 1승에 도전하지만 패전투수로 남고, 당대 최고 스포츠 스타 박철순 투수는 승리한다(프로야구 원년 22승을 달성한다). 그렇지만 [슈퍼스타 감사용]은 선악의 대결구도 대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프로’를 보여준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보다 1년 전 출간한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2003)은 ‘프로’를 다른 차원으로 해석한다. 여성의류 광고처럼 “그녀는 여자라서 아름다운 게 아니라 프로라서 아름답다”는 식으로, 자본은 생산성을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서 ‘프로’라는 미명으로 자기착취와 경쟁을 유도하고, 그 속에서 인간은 인간성을 상실하고 더욱더 조직과 시스템에 길들여지면서 소속감이 곧 정체성이라는 환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류대학을 나온 소설 속 아버지는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에게 교복을 사주며 말한다. “명심해라,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소속이 인간의 삶을 바꾼다.”는 것을 아들도 깨닫는다. 그래서 아들은 일류대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입사하나 이혼과 구조조정 속에서 프로의 세계를 환멸하게 된다. 소설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 1988년 서울올림픽, 1998년 외환위기로 나뉘어 구성되었다(모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시기이다).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가장 큰 차이는 소설 속 주인공은 주류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주류에 들어가지만 그럴수록 주변부 출신의 한계와 촌스러움으로 괴로워하고 어느 때에는 자학한다. 그러나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도전’함으로써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마주하며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마운드에 서서 공동체 앞에 자기를 드러나게 한다.
[실미도]에서는 죄수들이 군번과 계급장을 얻기 위해서, [북경반점]에서는 아버지 같은 스승(한사장)에게 인정받고자, [파이란]에서는 돈을 위해서 위장결혼을 하고,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는 기존 관계와 관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비행기를 타고 떠난다. 하지만 삼미 슈퍼스타즈 감사용은 (패전전담 투수라는) 자기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무엇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닌 ‘무엇으로 향한 자유’를 위해서 분투한다.
함께 시작할 줄 아는 용기
야구선수 감사용은 앞에서 말한 내용(장면)처럼, (1980년대 데모와 최루탄으로 혼란스럽고 앞이 보이지 않는 정국 속에서) 샐러리맨 감사용은 탁한 물속에서 삼미 슈퍼스타즈(선수 공개모집)를 발견하고 돌아서서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했기에, 자기 삶 속에서 슈퍼스타 감사용으로 거듭난다.
영화 [라따뚜이](2007)에서 보잘 것 없고 흉할 수 있는 생쥐 ‘레미’는 일류 요리사를 꿈꾸고, 실제로 도전해서 마침내 맛좋은 음식을 만든다. 홀로 도전하는 것도 어렵지만 주위에서 이를 인정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저승사자로 불리는 음식비평가 안톤 이고는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는 없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어디서든 나올 수 있다.” 공동체는 이렇게 타자를 인정하고 동행할 때 창조된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저기, 멀리” 떨어진 행복을 좇는 것보다 “지금, 이곳”에서 행복을 창조하는 게 더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록 패배한다고 할지라도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시작’과 ‘행동’할 줄 아는 인간임을 나와 내 공동체에게 증명하고, 패배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패배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보여준다. 그 용기 때문에 패배할지라도 팀원은 그를 신뢰하고 비 내리는 인천 바닷가를 함께 뛰는 공동체로서 동행하는 것이다.
인천, 영화로 읽다 - 연재순서
① 들어가는 말 : 인천 없는 인천영화제(10/22)
② 북경반점 : 가부장을 위한 디즈니랜드(10/29)
③ 파이란 : 인천바다의 탁함과 동해바다의 색조(11/5)
④ 고양이를 부탁해 : 인천여상 소녀들의 표류기(11/12)
⑤ 슈퍼스타 감사용 : 함께 시작할 줄 아는 용기(11/19)
⑥ 천하장사 마돈나 : 프로씨름단 해체기와 노동자 아버지의 소멸(11/26)
⑦ 차이나타운 : 신자유주의 속 가족의 재편(12/3)
⑧ 인천상륙작전 : 반공주의의 (재)생산기지 인천(12/10)
⑨ 오늘도 평화로운 : 장소의 재발견과 일상의 재미(12/17)
⑩ 맺음말 : 인천, 영화롭다(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