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검사 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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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변검사 하는 날
  • 이정숙
  • 승인 2021.12.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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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속 동그라미]
(12) 이정숙 / 구산초교 교사, 인천교육연구소

 

아이들에게 학교는 언제나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 있나 보다. 별거 아닌 것에도 ‘와아!’ 하고 신기 해 하는 아이들을 보면 김샘은 갑자기 스스로 굉장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코로나로 과학실조차 마음대로 못가 교실에서 대표 실험을 할 때에 촛불만 켜도 ‘우와!’탄성을 자아내는 아이들이니 말이다.

오늘은 소변검사를 하는 날이다. 검사하는 분이 와서 소변검사종이를 나눠 주며 오줌을 묻혀 오라고 설명을 한다. 아이들은 화장실에 냅다 뛰어가서는 소변을 묻혀 오곤 복도에 줄을 서며 하나씩 검사지를 비교하며 신기한 듯 관찰을 시작한다.

 

민재: 야 묻혔냐?

용기: 응 이거.

민재: 아무것도 없는데?

용기: 그런 거 같애.

재원: 들고 있으면 조금 이따 뭐가 나오나 봐.

용기: ???

양희: 뭘 보는 거지?

재원: 그냥 그런 건가?

승원: 이게 뭐야?

용기: 그냥 이렇게 하고 넘어가나 봐.

 

검사지에서 뭔가 변화가 나타나기를 기대했던 아이들은 아무 변화가 없는 실험(?)이 영 심심했었는지 각자 한 마디씩 했다.

뒤늦게 상우가 소변검사지를 흔들며 교실 복도로 뛰어온다.

상우: (흔들며~) 이거 어떻게 해요?

아이들: 야, 흔들면 어떡해? 오줌 떨어지잖아.

아이들은 행여 검사지에 묻은 소변이 닿을까 봐 손끝으로 겨우 잡고 다른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조심하고 있어, 검사지를 달랑거리며 오는 상우의 행동에 질색을 한다. 머쓱해진 상우는 얼른 행동을 멈추고 검사하는 선생님께 조심스레 보인다.

 

검사 선생님: 자, 모두 버리세요.

용이: 벌써 버려?

동현: 아무것도 없는데?

교희: 나도 몰라.

아이들마다 검사지의 반응이 궁금하다. 그런데 아무 변화가 없자 한마디씩 한다. 그런데 그 검사지를 ‘저기’ 버리라는 말에 동민이가 냉큼 담임 선생님 앞으로 와 건넨다.

동민: (선생님에게 건네며) 여기요.

김샘: (아니 이걸 왜 나한테?) 이거 선생님 주지 말고 저기 검사하시는 선생님께 보이고 그 앞에 있는 깡통에 버려요.

승민: 어따가요?

김샘: 아까 설명할 때 뭐했어? 저기다가.....

혜민: 선생님! 용이 교실 쓰레기 통에 버렸어요.

아이들: 아이 드러! (드러워)

동이: 야, 거기다 버리면 어떡해! 저기다 버리랬잖아. 저 깡통에.

 

자기 검사지를 신경쓰느라 또 친구들 검사지를 신경쓰느라 선생님의 안내를 미처 못 들은 아이들은 제각기 행동을 하다 또 다른 아이들 원성을 사고 말았다. 김샘이 다시 일일이 안내를 하고 있는 그 와중에 얼굴이 빨간 연이가 울상이 되어 미적미적 뛰어왔다.

연이: 선생님 안 나와요.

김샘: (뭐가? 아!) 그래? 조금 있다가 물을 좀 더 먹고 기다려 보자. 물통 있지?

연이: 아뇨.

김샘: 흠! 이리 와. 선생님이 물을 줄테니까 요즘 코로나라 아무 데서나 벌컥벌컥하면서 먹으면 안 되는 거 알지?

수정: 마스크 살짝 밑으로 한 모금 먹고 마스크 쓰고 다시 마스크 밑으로 살짝 이렇게 먹는 거야.

김샘: 그으래. 수정이가 아주 요령을 아주 잘 알고 있네. 그렇게 조심조심 먹어보자. 자 한 컵 주욱 먹는 거야. 자 물을 한 컵 들이키고, 화장실 가지 말고 참고 있다가 검사하시는 선생님이 다시 오시면 그때 화장실 가고 검사해요.

 

아이들은 물을 먹는 연주가 부러운지 너도 나도 물을 먹겠단다. 태원이가 “야, 연이는 안 나와서 그런 거지 너넨 왜 먹냐? 하고 일러주지 않았으면 교실에 온통 물먹는 소동이 날 뻔 했다.

아주 짧은 소변검사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은 뭔가 신기하고 궁금했던 시간이었다. 김샘은 옛 시절 대변 검사로 구충제를 나눠 주던 시절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우리의 학교는 보건소도 되고 식당도 되고 여행사도 된다. 영화관이 되기도 하고 콘서트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학교는 마냥 신기하고 즐거움들이 가득 찬 곳이다. 아마도 작은 것들에도 신기해하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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