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청소년들, 단편소설집을 내다 - 시인 기형도의 고향 연평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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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청소년들, 단편소설집을 내다 - 시인 기형도의 고향 연평도에서
  • 연평도=김정형 시민기자
  • 승인 2021.12.03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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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중고등 학생 5명 단편소설집 '출발' 펴내
/ 연평도에서 김정형 시민기자

 

연평도는 기형도 시인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의 고향이다.

어린시절을 섬에서 보낸 소년 기형도의 고향 집 생가터는 바다가 보이는 해변에 있다.

 

기형도 시인 생가터에서 떠오르는 아침해
기형도 시인 생가터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이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깍아주신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저 울음소리, 어머니...

-기형도 시집 바람의 집중에서-

 

기형도 시인 생가터 공원사진
기형도 시인 생가터 공원사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시인의 대표 시 중 하나인 '빈집'-

 

이곳 연평 문학의 터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있다. 연평 중고 학생들 동아리이다.

5명의 학생이 모여 출발이라는 단편 소설집을 만들어냈다.

 

연평중고생 단편소설집
연평중고생 단편소설집

 

< 제목과 지은이 >

무너지지 않는 나만의 모래성 - (2) 노유빈

희망 박지연 (2)

두 가문의 이야기 - 김예진 (1)

Merry Bad Ending - 손효수 (2)

우리의 그 시간 속 노수빈 (2)

 

이 글을 쓴 작가들은 연평도에서 나서 자란 학생들이다. 한강에도 가보지 못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 소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단편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소설동아리에서 선생님의 과제에서 시작되었다. 갈등이 심화 되는 과정의 글을 쓰라는 과제였다. 소설의 중요한 요소인 갈등을 공부하는 과정이었다.

쓰다가 보니 소설이 되고 있었다. 남매 간의 갈등, 백년 후 우주선에서 일어나는 갈등, 남녀 집안의 혼약 과정에서의 갈등, 죽은 동생을 잊지못하는 자의 갈등, 죽음으로 끝난 친구와 우정의 갈등. 청소년들이 생각하기 힘든 많은 갈등을 상상하며 써 내려갔다.

이들은 많은 시간을 글 쓰는데 투자했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고, 방과 후에는 학교 컴퓨터 실에 남아서 소설을 썼다. 가족, 친구들과 소설을 이야기하고 내용을 다듬었다. 본인이 다른 소설을 읽을 때 상상의 나래를 피며 읽었던 것 처럼 읽는 이들도 그러리라는 모습을 상상 하며 글을 썼다고 한다.

 

전교생 54명의 연평중고등학교
전교생 54명의 연평중고등학교

 

이곳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도교사 (박기범)의 말을 들어본다.

연평도에 와서 학생들과 만나며 느낀 것은 학생들이 여유가 있고 생각을 깊이 한다는 점입니다. 학생들의 재미있는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소설 창작 특기 적성반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글쓰기에 흥미가 있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각자가 지닌 개성이 뚜렷했습니다. 소설 창작반 수업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글을 읽어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장단점을 배워가는 활동을 위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의 장점을 배워가는 부분도 있지만, 자신의 강점을 명확히 알고 강화해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평도에 와서 글쓰기에 진심인 친구들을 만나 한 학기 동안 행복했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친구들이 어엿한 작가가 되어 책을 출판하는 경험을 한 것을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글쓰기를 즐기는 작가가 되길 바라고 또 믿습니다.

 

동아리 활동중 박기범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동아리 활동 중 박기범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동아리시간에 발표한 시 (연평고 손효수 작)

필통이 입을 열었다.

바글 바글 얽힌 필기구들

 

.

 

연평 중고교전교생이 54명인 아담한 학교에 학생들. 기형도 시인의 후예임이 엿보인다.

그들의 앞날을 주목한다.

 

짝꿍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

힘없이 떨어지는 필통하나

 

필통이 뱉었다.

하나하나 바닥에 흩어진 필기구들

 

필통이 입을 닫았다.

토옥토옥 먼지로 더렵혀진 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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