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보다 ‘왜’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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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보다 ‘왜’를 물어야 한다.
  • 임승관
  • 승인 2021.12.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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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
임승관 /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대표

연말이면 많은 생활문화 지원기관들은 진지하게 사업평가를 진행한다. 내년 지원 방향을 수정하고 보완하기 위해서다. 덕분에 필자도 전국을 다니며 현장 활동가들을 만나 지역 상황에 공감하는 소중한 영광을 누린다. 생활문화 공동체 관련 지원 사업들은 벌써 10년 정도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신규단체와 함께 지원 단체들은 줄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지역은 오래 반복해서 만나게 된다. 수년간 한 단체의 변화 과정과 성장을 보는 것은 역으로 지원제도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을 알려준다.

시골에 작은 마을은 주민이 줄고 있다. 초등학교 전교생도 50명으로 줄어 위태롭다. 7년 전 이곳에 이사 온 예술인 부부는 생활문화 공동체 사업을 통해 학부모들과 만났다. 힘들지만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희망을 만들고 싶었다.

도시에 사는 부모들이 힘과 마음을 모았다.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부모들이라 절실했다. 우선 마을 인근에 적당한 공간을 구해 월세도 함께 해결했다. 생활문화 공동체 사업을 받아 아이들을 위해 안전하고 좋은 문화교육을 진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이룬 벅찬 성취감을 부모들과 충분히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싶으나 오늘도 보고서 때문에 시간이 없다.

요즘 고급 아파트 단지에는 다양한 주민 편의 공간과 시설이 많다. 그중에는 몇 년간 사용하지 않는 공간도 있었다. 어린 자녀를 둔 세 명의 엄마가 모여 이 공간을 활용한 생활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었다. 입주자대표와 몇몇 주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반대 했다. 1년간 싸우고 설득해 결국, 생활문화 공동체 사업을 진행했다. 그동안 침묵했던 다수 주민이 호응하며 참여했다. 프로그램 참여 주민들과 친하게 지내며 자유롭게 아파트 현안도 논의하고 민주적으로 해결을 모색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낯선 행정용어를 해석하며 보고서 작성하느라 마음만 바쁘다.

뭔가 지원 사업에 문제가 있다? 지원 공모사업 요강들을 다시 봤다. 지원 목적이 있다. “생활문화 주체 간 교류, 협력 활동을 통한 창의적이고 다양한 활동을 활성화” 또 “생활문화를 매개로 일상적인 만남의 기회를 마련하여 지역사회 공동체 관계를 넓혀 사회적 가치 실현”도 있다. ‘무엇’을 하라는 것과 ‘어떻게’ 하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왜’가 없다. ‘왜’는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하도록 마음을 열어주어 실천할 만한 동기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다. 생활문화, 교류, 협력, 공동체는 ‘무엇’에 해당한다. 일상에서 만남의 기회를 만들라는 것은 ‘어떻게’다. 그리고 이 ‘어떻게’를 참신하게 잘 기획해야 지원 사업에 선정된다. 결국 ‘어떻게’가 사업의 동기 부여 이유가 되었다. 사업이 재미없는 ‘일’이 되고 만 이유다.

2009년 TED 강연에서 사이먼 시넥(simon sinet)은 이 ‘WHY’ 개념을 기업 경영에 적용하며 유명해졌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만 설명하며 잘나가는 컴퓨터 회사가 있다. ‘델Dell’ ‘도시바Toshiba’ ‘HP’ ‘게이트웨이Gateway’다. 하지만 이들 제품과 큰 성능 차이가 없는데 ‘애플’은 이들과 비교할 수 없는 성공을 했다. 그 이유를 ‘WHY’에서 찾았다. ‘애플’은 유일하게 컴퓨터를 ‘왜’ 만들었는지 그 의미를 설명했다. 사람들은 그 목적에 공감했고 독보적인 충성도 높은 소비자를 갖게 됐다. 생활문화 지원 사업에서도 ‘왜’가 중요하다. ‘왜’를 ‘어떻게’로 대신하면 재미가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왜’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지만 ‘어떻게“는 숫자로 측정 할 수 있다. 또 ‘어떻게’가 목적이 되면 정산도 까다롭게 증명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위에 소개한 운영자들은 올해 사업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던 마음과 감정을 호소했다. 너무 자주 반복하는 보고서 작성과 10원도 틀리면 안 되는 예산 집행과 증명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고 한다. 보고 내용에도 관계나 신뢰의 변화, 갈등이 일어난 이유와 해결 과정, 참여 주민은 무엇에 호응하고 하고 싶어 하는지, 뜻밖의 미담 사례가 있다면 그 의미는 무엇 인지. 등 공유하고 평가받고 싶은 내용은 보고서에서 물어보지 않는다. 첫 지원 사업이라 서류작성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있다. 어느 날은 지원기관 담당자와 질문과 확인을 하느라 지역 주민과 나누는 대화를 피하는 것을 보며 정작 이 사업을 ‘왜’ 시작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생활문화 지원 사업은 다른 문화 사업과 달리 사업 목적인 ‘왜’라는 의미를 제시해야 한다. 지방분권과 함께 시도하는 문화자치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자치는 문화정책과 자원이 중앙 통제에서 벗어나 지역 자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생활문화를 통해 풀뿌리 지역 공동체들의 협력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의사소통 문화가 익숙해지기 전 기존 질서에 의해 문화자치가 시행되는 것을 우려한다면 이제는 생활문화 지원 사업을 ‘왜’ 하는지 먼저 의미를 밝혀야 한다.

 

https://invitroinnovation.files.wordpress.com/2010/06/the-branding-trinity.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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