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남의 시헌력, 오랜 잠에서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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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남의 시헌력, 오랜 잠에서 깨어나다.
  • 송성섭
  • 승인 2021.12.2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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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르는 소남 윤동규]
(23) 소남의 시헌력- 남은 다섯권
[인천in]은 잊혀진 인천의 실학자 소남 윤동규의 삶과 업적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특집기사를 기획해 격주로 연재합니다. 특집 기획기사는 송성섭 박사(동양철학)와 허경진 연세대 명예교수가 집필합니다. 

 

올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이 찾는 것이 있는데, 바로 달력이다. 이제 올해의 달력 옆에 내년의 달력을 같이 걸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소남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소남에게 있어서 달력은 일상적인 의미를 넘어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 당시 술가들이 길흉을 점칠 때 사용하던 책력은 대통력(大統曆)이었다. 대통력은 명나라에서 사용하던 역법으로서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을 토대로 만들어진 역법이다.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 의하면, 대통력은 1년을 평범하게 24절기로 나누어 날짜를 추산하기 때문에, 그것이 오래되어 달과 날이 맞지 않게 되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던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하여 순치(順治) 연간에 와서는 탕약망(Adam Shall)이 그것을 고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서양 학술의 14개 항목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착오가 없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시헌력(時憲曆)이다. 시헌력에서는 “해와 달이 교차하는 것이나 일식과 월식이 하나의 착오도 없으니 성인이 다시 태어나도 반드시 이것을 따를 것이다.”라고 성호는 평가하였다.

소남의 종가에는 지금까지 몇 권의 시헌력이 전해지고 있다. 달력의 시효는 당해 년도에 국한된다. 해가 지난 묵은 달력은 불쏘시개가 되기 십상인데, 지금까지 목숨을 이어온 것은 특별한 사유가 있기 때문이니, 허투루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소남의 종가에서 보관하고 있는 시헌력 중에서 맨 처음의 것은 대청건륭14년, 즉 1749년 세차 기사(己巳) 시헌서이다. 그런데 이 시헌서에는 뜻밖에도 소남의 글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소남에게는 종이가 매우 귀했기 때문에, 달력과 달력 사이를 도려내고, 그 이면에다 자신에게 필요한 글들을 채워넣었다. 소남에게 시헌서는 일종의 필기 노트였던 셈이다.

 

소남의 시헌력

 

1749년의 시헌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 의성(宜城) 출신 매문정(梅文鼎, 1633년~1721년)이 쓴 『역학의문(曆學疑問)』으로 가득차 있다. 매문정의 자(字)는 정구(定九)이고, 호는 물암(勿庵)이다. 청나라 초기의 천문학자이자, 수학가, 역산학가로서 “역산제일명가”로 불리웠다. 성호도 사설의 「삼원갑자(三元甲子)」에서 “이제 매문정의 역학의문을 보니, 그 학설이 같지 않은 곳이 있다. 다시 상세히 고찰하려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소남이 성호로부터 서적을 빌려 베껴 쓴 것으로 보인다. 소남 또한 매문정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정축년인 1757년 정월, 안백순, 즉 안정복에게 답한 편지에서 매물암의 천문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소남은 성호의 뒤를 이어 천문학에 대해 정통하였다. 그는 방성도(方星圖)에 대한 글을 남기기도 하였으며, 1771년 이제임(李齊任)에게 답한 편지에서는 세차(歲次)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세차가 70년에 1도의 차이가 난다는 설은 차이가 매년 28수가 서쪽으로부터 이동하여 차이가 조금 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할 뿐입니다. 그런데 세월의 차이가 있는데, 하늘이 점점 차이나서 동쪽으로 간다면 옳지만, 서쪽이라고 한다면 편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이 점점 차이난다면, 아마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개 세월은 즉 매년의 동지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분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제요(帝堯)의 때 동지에 해는 28수 중에서 허수(虛宿)에 있었는데, 지금은 기수(箕宿)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소남 종가에 보존되어 있는 두 번째 시헌력은 1756년 세차 병자(丙子)의 시헌서이다. 소남은 여기에서도 물론 시헌서의 이면에다 자신에게 필요한 서적을 필사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놀랍게도 후한서의 동이열전, 전한서, 김부식의 삼국사기, 정인지가 편찬한 고려사 등의 역사서를 베껴 썼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성경통지(盛京通志)』도 베껴 넣었다. 『성경통지』는 청 왕조에서 편찬한 성경((盛京), 즉 지금의 심양에 해당하는 만주 지역에 관한 지리지이다. 이 서적이 편찬된 이후 군사적인 이유로 외부에 반출되는 것이 제한되었으나, 조선은 17세기 말에 『성경통지』를 확보함으로써 비로소 당시 만주 지역의 지리 정보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성호도 사설에서 『성경통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천지문」에서는 이를 인용하여 패수(浿水), 곧 압록강은 취수(溴水)인 대동강인 것 같고, 살수(薩水)는 청천강이고, 열수(洌水)는 대동강인 것 같고, 대수(帶水)는 한강인 듯싶다고 하면서, 고구려의 비류가 남으로 도망하여 패수와 대수를 건너 미추홀에 이르러 살았는데, 미추홀은 지금의 인천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소남도 자수, 열수, 패수, 대수에 대한 변론에 의문을 제기한 글(訾列浿帶四水辨疑)을 남겼는데, 『소남문집』잡저(雜著)에 실려 있다.

소남 종가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서적 중 『서경(書經)』속에는 20여 매가 되는 지도가 끼어 있다. 여기에 장백산도를 비롯하여 왜국지도, 봉천장군 소속형세도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아마 『성경통지』에서 베낀 것이 여기에 들어가 있는 것이리라. 왜냐하면 『성경통지』1권에 이러한 지도가 다수 수록되어 있으며, 소남은 이미 1756년의 시헌서에서 이를 필사한 바 있기 때문이다. 소남 또한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성경통지』를 언급한 바 있는데, 안백순에게 보낸 기묘년(1759년) 2월, 3월의 편지, 병자년(1756년)의 편지에서 『성경통지』를 인용하여 우리의 강역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성경통지
소남소장본

 

1767년의 시헌서에는 소남 사후에 편찬된 『소남문집』경설(經說)에 수록된‘주례치전야공부고의(周禮治田野貢賦考疑)’,‘독주례고의(讀周禮考疑)’,‘복서삼점의(卜筮三占疑)’등의 초고가 실려 있으며, 예설(禮說)에 수록된 ‘위처연불연가부의(爲妻練不練可否議)’, ‘독의례상복주소기의(讀儀禮喪服註疏記疑)’등의 초고가 실려 있다. 그리고 여기에 성호선생 행장의 초고에 해당하는, 상당히 긴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점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先生姓李氏, 諱瀷, 字新. 居廣州之瞻星. 故自號星湖”로 시작하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발간된 『성호전집』과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글자 수에 있어서는 초고 행장과 전집 행장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고, 내용에 있어서도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경협 이병휴와 소남과의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성호 사후에 소남과 경협은 공정한 칠정에 대해 상당한 논쟁을 벌인 바 있는데, 이에 대해 소남이 신묘(1771년) 11월 이제임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로소 경협이 병을 얻은 근원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知景恊受病之源在此也).”라고 말하기도 하였고, 신묘년의 또 다른 편지에서는 행장의 초고와 관련된 경협과의 논의를 중지하고, 모든 글들은 잠시 보류하여 보내지 않았으며, 모든 글들에 대해 안백순과 다시 논의할 예정이기에, 그것을 그대로 놓아둘 뿐이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이 뜻하는 바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글을 지운 흔적이 역력한 소남의 성호행장 초고
글을 지운 흔적이 역력한 소남의 성호행장 초고

 

36년 세차 신묘(1771년) 시헌서와 대청건륭37년 세차 임진(1772년) 시헌서에도 향후 『소남문집』에 수록될 경설과 예설 그리고 잡저에 실릴 초고들로 가득차 있다. 이로부터 보면, 소남의 시헌력은 비단 달력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밝힌 초고의 수장고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소남 생전에 해마다 시헌서가 있었을 터이고, 거기에다 오롯이 자신의 견해를 밝혔을 텐데, 남은 것이 다섯 권 뿐이라는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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