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속 물고기가 행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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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 속 물고기가 행복한 이유
  • 최원영
  • 승인 2021.12.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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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33화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원합니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결정하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보면 자유라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다’라는 것은 ‘욕망’입니다. 이 욕망이 이루어졌을 때는 행복해하고, 이 욕망이 장애물을 만나 이루어지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지면 행복을 느끼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행을 느낀다는 말은 옳은 말일까요? 만약 옳지 못하다면,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하나의 욕망은 반드시 상반된 두 개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이루고 싶어 하는 욕망이 절반의 욕망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아잔 브라흐마)에서 저자는 자유를 욕망과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욕망의 자유’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가 그것이다. 현대 서구문화는 첫 번째 자유, 즉 ‘욕망의 자유’만을 인정한다. 그런 자유를 헌법이나 인간권리헌장 앞에 모셔두고 숭배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본 신조는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로 국민이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자유를 보호하는 거다. 하지만 그런 나라에 사는 국민이 그다지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는 건 특이하다.”

“두 번째 자유인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는 몇몇 종교적인 공동체 안에서만 찬미를 받는다. 그들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에서 오는 만족과 평화를 궁극의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훨씬 더 자유롭게 느껴지는 것도 특이하다.”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저는 여러분에게 ‘욕망의 자유’가 있고, 동시에 ‘욕망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자유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이미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냐고 묻고 싶습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면 저자의 다음 글을 음미해보세요.

“두 명의 승려가 신도 집 아침 식사에 초대받았다. 응접실에서 기다리는데 장식용 어항을 보았다. 후배 승려가 물고기를 수조에 가두어두는 것은 불교의 자비 원리에 어긋난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것은 물고기를 감옥에 가둔 것과 같으니까. 그들이 감옥에 수감 될 만큼 잘못한 일이 뭐냐고. 마땅히 강에서 헤엄치며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고.

선배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 물고기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따를 자유가 없는 것은 맞지만, 어항 속에서 사는 것이 수많은 위험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들에게 준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 물고기들의 자유를 열거했다.”

어항 속 물고기에게는 과연 어떤 자유가 있을까요? 선배 스님의 말씀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첫째, 어항 속에 낚시꾼이 낚시를 드리울 수 없으니 낚시꾼의 위험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

둘째, 야생 물고기로 살면 지렁이나 파리를 발견한다고 해서 그걸 먹는 게 안전할지 아닌지 모른다. 야생물고기에게 먹는 것은 곧 위험이 따르는 일이고 종종 비극으로 마친다. 따라서 식사는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 그러나 어항 속 물고기는 이런 위험에서 벗어난다.

셋째, 야생 물고기는 더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 그런데 어항 속 물고기는 그런 걱정이 없다.

넷째, 야생 물고기는 먹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항 속 물고기는 하루 두 번, 영양분이 고루 함유된 식사가 배달된다.

다섯째,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강은 극심한 온도변화를 겪는다. 겨울엔 너무 춥고 여름엔 너무 뜨겁다. 때로는 강바닥이 말라붙기도 한다. 하지만 어항 속 물고기는 그런 걱정이 없다.

여섯째, 야생 물고기는 병에 걸려도 치료해 줄 존재가 없다. 하지만 어항 속 물고기는 병원비 걱정으로부터 자유롭다.”

듣고 보면 선배 스님의 말씀이 구구절절 맞습니다. 만약 어항 속 물고기들이 이런 자유가 자신에게 이미 있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간다면 틀림없이 어항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어항 속에서 살든 바다에서 살든 우리 모두는 행복한 물고기가 될 수 있다는 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유에는 두 가지 상반된 자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상황에 따라 그 상황에 따른 자유를 선택해 구가할 줄 아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는 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에게는 공부할 자유도 있지만 공부하지 않고 노는 자유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부해야 할 때는 공부할 자유를 선택해 집중해서 공부하면 되고, 쉬는 시간에는 노는 자유를 선택해 신나게 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자유를 반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겁니다. 공부해야 할 시간에 공부할 자유를 선택하지 않고 노는 자유를 선택했기 때문에 짜증을 냈던 겁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주어진 두 개의 자유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꺼내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운입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 우리는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진정한 주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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